1. 개요
泰山 羊氏후한 중기부터 서진 시대까지 명망을 떨친 중국의 가문이다. 태산 양씨는 실질적인 시조부터 양호가 등장하는 9세대까지 2천 석 이상의 관리를 역임하고 모두 청렴하다는 평판을 받은 명문가였다. 남북조시대 이후로도 명성있는 이들이 있었으나, 서진 이후로는 두각을 드러낸 유명 인사가 다른 가문에 비해 소수인 등 가문이 쇠락했다고 보이는 편이다. 주로 본관으로 표기한 연주(兗州) 태산군(泰山郡)[1] 내의 신태현, 양보현, 거평현, 남성현 등에 거주하였다.
2. 본론
태산 양씨는 이 당시 다른 문벌들도 그랬지만 많은 혼맥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중 대성(大姓)으로 노국 공씨, 진류 채씨, 초국 하후씨(조위 종실), 영천 신씨, 동해 왕씨, 하내 사마씨(양진 황실), 낭야 왕씨, 진군 사씨, 하내 산씨를 들 수 있다. 영가의 난으로 동진이 성립하여 남북조시대가 되자, 양씨 일족도 남북조로 나뉘어 출사하게 되었는데, 각 조정에서도 예전 만큼은 아니지만 명망을 떨쳤고, 박릉 최씨, 조군 이씨, 청하 최씨 등 신흥 명문과도 혼맥을 가지고 있었다.3. 유명 인물
- 양수: 양탐과 신헌영의 아들이자, 양호의 사촌동생이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고관 청요직을 역임하였는데, 석숭, 왕개, 왕제처럼 엄청난 부자라 이에 대한 일화로 유명하다. 해당 페이지 참조.
- 양호: 서진의 천하통일에 기여한 1등 공신이자 덕장, 명장이다. 서진 건국 이후 천하통일을 위한 전쟁에서 많은 전공을 세웠으며, 사후 태부로 추증되었다. 죽으면서 두예를 천거하여 오를 멸망시키는데에도 기여했고, 육항과 약을 교환한 일화가 있으며, 어진 정치로 형주 백성들이 타루비를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그렇지만 후손은 남기지 못해서 직계 후손은 없다.
- 양휘유: 사마사의 두 번째 부인으로, 양호의 누나이다. 서진이 건국되고 사마사가 추존되자 역시 황후로 격상되었으며, 홍훈궁(弘訓宮)에 거처하였기에 홍훈태후로 존숭되었다. 시호는 경헌황후(景獻皇后).
- 양헌용: 서진 혜제의 두 번째 황후이자, 전조 유요의 황후이다. 가남풍이 난중에 죽고 나서 황후가 되었다. 하지만 계속되는 정난의 여파로 6번 폐위되고, 다시 6번 복위한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두 나라, 두 황제의 황후가 된 진기록도 있다.
4. 참고문헌
- 『한서』, 『후한서』, 『진서』, 모두 중화서국 표점교감본
- 유석위 저, 『양진태산양씨가족문화연구』, 북경:중화서국, 2013
[1] 후한 중기 기준의 행정구역이다. 이후 산하의 현이 군으로 독립되는 경우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