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스턴 (온타리오) Kingston | ||
1. 개요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도시. 인구는 12~13만명 수준으로 그 중 퀸스 대학교 재학생만 3만명이 넘는 전형적인 대학도시이다. 학생들이 빠져나가는 방학 시즌이 되면 도시 전체의 분위기가 가라앉을 정도.2. 상세
그다지 인지도는 없지만 의외로 캐나다의 자치령 승격 당시 수도가 될 뻔한 도시이다. 영국 식민지일 당시의 캐나다는 수도를 온타리오 주[1]의 토론토, 킹스턴과 퀘벡주[2]의 몬트리올, 퀘벡 4곳을 옮겨다니고 있어서 어느 한 곳을 수도로 정하기 위한 작업을 했으나, 이들 4개 도시가 수도 후보로 나오면서 대립을 했다.[3] 사족이지만 이 로테이션을 처음 시작했을 때 첫 타자가 킹스턴이어서, 캐나다 학생들은 역사 시간에 킹스턴을 캐나다 최초의 수도라고 배운다.이 도시들은 캐나다 수도로 지정받기 위해 영국 빅토리아 여왕에게 정치적 로비를 하는 등 엄청난 경쟁을 벌였으나, 빅토리아 여왕은 이들 4개 도시 중에서 하나를 선정하지 않고 온타리오 주와 퀘벡 주의 경계에 있는 오타와를 수도로 지정했다. 4개 도시 중 어느 하나를 지정한 후 생길 후유증을 차단하기 위한 측면도 있고, 영국계와 프랑스계의 대립을 중재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또 캐나다 이스트(Canada East)의 극동인 퀘벡과 캐나다 웨스트(Canada West)의 극서인 토론토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점도 선정의 한 이유가 되었다.
다만 킹스턴이 수도가 될 가능성이 없던 것은 아닌게, 이 도시가 토론토와 몬트리올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 그리고 수도 경쟁에서도 앞서 나가던 도시가 토론토와 몬트리올 둘이었기에 이 둘 중에 수도가 나올 가능성이 커서, 양 도시와 주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지리적 이점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었다. 사실 지금이야 캐나다 최대 도시가 된 토론토지만, 빅토리아 여왕이 수도를 고르던 1857년만 해도 토론토의 인구는 3만에 불과했다. 같은 시기 킹스턴은 1만 정도로, 토론토보단 적지만 크게 꿇릴 정도는 아니었고 오타와보다는 많았다. 현대인의 기준으로 보면 일견 황당하지만, 킹스턴이 수도 경쟁에서 탈락한 이유 중 하나로는 미국과의 국경과 너무 가까워서 공격에 취약하다는 것도 있었다. 실제로 1812년 전쟁 때 토론토는 미국에 점령당해 불바다가 됐었다(...). 오타와도 국경까지 직선 거리로는 100km가 채 안 되지만, 강 하나만 건너면 미국인 킹스턴보다는 훨씬 안전하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1] 당시에는 어퍼 캐나다(Upper Canada)였다가 캐나다 웨스트(Canada West)가 됨.[2] 당시에는 로어 캐나다(Lower Canada)였다가 캐나다 이스트(Canada East)가 됨.[3] 각 도시는 토론토-킹스턴-(오타와)-몬트리올-퀘벡 순으로 위치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