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프 다움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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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대 | 54대 |
독일의 축구감독 | ||
이름 | 크리스토프 다움 Christoph Daum | |
출생 | 1953년 10월 24일 | |
동독 작센 주 츠비카우 | ||
사망 | 2024년 8월 24일 (향년 [age(1953-10-24)]세) | |
국적 | [[독일|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180cm | |
직업 | 축구선수(미드필더 / 은퇴) 축구 감독 | |
소속 | 선수 | 아인트라흐트 뒤스부르크 (1972~1975) 1. FC 쾰른 (1975~1981) |
감독 | 1. FC 쾰른 (1981~1985 / 2군 코치) 1. FC 쾰른 (1985~1986 / 수석 코치) 1. FC 쾰른 (1986~1990) VfB 슈투트가르트 (1990~1993) 베식타스 JK (1994~1996) 바이어 04 레버쿠젠 (1996~2000) 베식타스 JK (2001~2002) FK 아우스트리아 빈 (2002~2003) 페네르바흐체 SK (2003~2006) 1. FC 쾰른 (2006~2009) 페네르바흐체 SK (2009~2010)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2011) 클뤼프 브뤼허 KV (2011~2012) 부르사스포르 (2013~2014) 루마니아 대표팀 (2016~2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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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의 전 축구선수이자 축구감독이다. VfB 슈투트가르트를 분데스리가 챔피언으로 만들어 명장의 반열에 올랐다.2. 선수 경력
1953년 10월 24일 동독의 작센 주 츠비카우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서독으로 넘어와 뒤스부르크에서 성장하였으며 아인트라흐트 뒤스부르크와 1. FC 쾰른에서 미드필더로 선수생활을 보냈다.3. 지도자 경력
3.1. 지도자 경력 초기
1981년 선수생활을 은퇴한 뒤 FC 쾰른의 2군 코치로 부임했고, 1985년 수석코치로 승격했으며, 1986년 FC 쾰른의 정식 감독으로 부임했다. 4시즌간 쾰른을 지휘하다가 1990년 11월 VfB 슈투트가르트의 감독으로 부임했고 1992년 팀을 분데스리가 우승팀으로 만들며 명성을 떨쳤다. 1994년 1월 터키의 베식타스 JK로 자리를 옮겨 1993-94 시즌 터키의 FA컵인 튀르키예 쿠파스 우승을 차지했고, 94-95 시즌 리그 우승을 따냈다. 그러나 1996년 성적부진으로 경질되었다.3.2. 바이어 04 레버쿠젠
베식타스에서 경질된 다움은 1996년 7월 독일로 돌아와 바이어 레버쿠젠의 감독직을 맡았다. 그리고 그는 레버쿠젠을 3시즌 연속으로 분데스리가에서 준우승시킴으로써 다시 성공적인 시즌을 보내는 듯 했다. 유로 2000에서 독일이 부진한 성적을 내며 에리히 리베크가 경질되자 다움은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의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그러나 코카인을 복용하고 있다는 의혹에 휩싸이며 독일축구협회는 루디 푈러를 감독으로 선임했고,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2000년 레버쿠젠으로부터도 해임되었다.3.3. 베식타스 2기
2001년 다움은 터키로 돌아가 한 때 지휘봉을 잡았던 베식타스의 감독직을 2002년 5월까지 맡았으나 리그 3위에 그치는 등 성적은 신통치 않았고, 2001-02 시즌이 끝나자 경질됐다.3.4. FK 아우스트리아 빈
2002년 10월 오스트리아의 FK 아우스트리아 빈의 감독 자리를 맡은 다움은 FK 아우스트리아 빈을 2002-03 시즌 오스트리아 리그 우승팀으로 이끌었고, 이로 인해 어느정도 명예를 회복할 수 있었다.3.5. 페네르바흐체 SK
이러한 공로로 그는 터키로 1년만에 다시 돌아가 2003년 6월 이스탄불의 명문팀이자 한 때 몸담았던 베식타스의 라이벌팀인 페네르바흐체 SK의 감독을 맡게 되었고, 페네르바흐체를 2003-04 시즌과 2004-05 시즌 터키 쉬페르리가 연속 우승팀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2005-06 시즌 말미, 라이벌 갈라타사라이에게 패배하자 감독직에서 물러났다.3.6. FC 쾰른 2기
페네르바체에서 물러난 뒤 몇달 간 휴식을 취하던 다움은 2006년 10월 분데스리가 2부리그에 있던 친정팀 FC 쾰른의 감독으로 재부임했다. 2007-08 시즌 팀을 분데스리가로 승격시켰고 2008-09 시즌 12위로 기록시키며 팀을 분데스리가에 안정적으로 잔류시켰다.3.7. 페네르바흐체 SK 2기
2009년 다시 페네르바흐체의 지휘봉을 잡았다. 터키 슈퍼 컵 우승을 이끌었으나 당해 시즌 돌풍의 팀 부르사스포르에게 우승을 내주며 2010년 6월 페네르바흐체를 떠났다.3.8. 페네르바흐체 이후
2011년 3월 강등 위기에 직면하자 미하엘 스키베를 경질한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의 감독직을 맡았으나 프랑크푸르트를 잔류시키는데 실패하며 사임했고, 2011년 말 벨기에의 클럽 브뤼헤 감독직을 맡았다. 브뤼헤에서 수비조직력을 강화해 팀의 연승 행진을 이끌었고, UEFA 유로파 리그에서는 NK 마리보르를 상대로 0-3으로 끌려가고 있다가 4-3으로 대역전승을 기록해 각광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2012년 벨기에에서의 상시거주에 부담을 느껴 시즌을 2위로 마친 뒤 사임했다. 그 뒤 2013년부터 2014년까지 부르사스포르의 감독직을 맡았으나 중도에 성적저조로 경질됐다.3.9. 루마니아 축구 국가대표팀
2016년 7월 7일, 루마니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외국인으로서 80년만에 루마니아 국가대표 감독으로 임명된 케이스였다. 다움 자신도 처음으로 대표팀 감독으로 활약할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독일 대표팀 감독 부임을 향한 9부능선을 넘었다 낙마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더욱 의미 있는 행보였다.하지만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하며 2017년에 조기 경질되고 말았다. 2021년 3월 28일, 독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축구 토크쇼 Doppelpass에 출연해 루마니아 감독으로서 여러모로 고초를 겪었다는 사실을 털어 놓았다. 먼저 국가대표 선수라는 자각이 강하지 않아서 선수간의 하모니와 응집력을 고조시키기가 매우 어려웠다고 한다. 워낙 자국에 대한 혐오가 심해서 나라와 국민을 대표한다기보단 자신들의 가족을 위해서 국대 선수로서 뛴다는 의식이 강했다고 한다. 게다가 루마니아의 90년대 황금세대 출신들이 선수 선발 및 기용에 시종 간섭했다고 한다. 갑질을 한 왕년의 스타가 누구였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루마니아 입국 거부를 당하고 싶지 않다"며 이름을 대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