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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4-15 14:16:41

코르틸레 델 벨베데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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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건축 배경3. 후대의 변화4. 구조

1. 개요

Cortile del Belvedere

'벨베데레 정원'이라고도 한다. 도나토 브라만테(Donato Bramante)가 1505년에 설계하여 작업을 시작했다.

로마의 바티칸 궁(Vatican Palace)과 빌라 벨베데레(Villa Belvedere)를 연결하는 주요 건축물로 르네상스 고전주의 건축의 걸작 중 하나로 평가된다. 현재는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으나, 본디 하나의 긴 직사각형 형태로 설계되어 바티칸 궁과 빌라 벨베데레를 테라스와 계단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주었다.

전망 좋은 정원이라는 뜻이며, 이 정원이 가장 잘 보이는 장소는 교황의 집무실과 서재가 있던 현재의 '라파엘로의 방'이라고 한다.

2. 건축 배경

1484년에 교황 인노첸시오 8세(Innocent VIII)가 구 성 베드로 대성당(old St. Peter’s Basilica)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지점에 별장을 건설했다. 이 별장이 빌라 벨베데레이다. 이 빌라는 피렌체의 건축가 안토니오 델 폴라이올로(Antonio del Pollaiuolo)가 처음으로 작은 여름 별장을 설계해 1487년에 완성했으며 로마 중심부와 산탄젤로 성 너머의 목축지 전망까지 보였다.

교황 율리오 2세는 바티칸 궁과 빌라 벨베데레 사이를 더 쉽게 연결하고 싶었다. 교황의 의뢰를 받은 브라만테는 구릉지의 경사면을 테라스와 계단으로 정교하게 연결하는 설계를 제안하며 1505년에 작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브라만테는 1514년에 사망하면서 이 프로젝트를 마무리하지는 못했고, 이후 피로 리고리오(Pirro Ligorio)가 피우스 4세(Pius IV)의 의뢰로 1562-65년에 작업을 마무리했다. 리고리오가 만든 것 중 하나가 거대 엑세드라인 니키오네이다.

3. 후대의 변화

하나의 통일된 공간으로 설계된 '코르틸레 델 벨베데레'는 16세기 말에 큰 변화를 겪었다. 1585-90년에 식스토 5세가 바티칸 도서관의 한 날개를 중간 테라스에 건설하며 안뜰이 두 개로 나뉘어졌다. 이로 인해 브라만테가 의도했던 극장성과 연속성은 상실된다. 현재 아래쪽 테라스는 여전히 '코르틸레 델 벨베데레'로 불리지만, 위쪽 테라스는 큰 청동 솔방울(Pigna) 조각상이 있는 니키오네(nicchione) 뒤로 '코르틸레 델라 피냐(Cortile della Pigna)'로 알려져 있다. 이 솔방울은 로마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무덤 꼭대기 장식으로 추정된다.[1]

벨베데레 정원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르네상스의 예술과 건축이 만난 상징적인 공간이며, 벨베데레의 아폴론(Apollo Belvedere) 같은 유명한 고대 조각상이 전시된 장소이기도 하다. 16세기에는 이런 스타일의 안뜰과 정원 설계가 유럽에 유행하게 되었다.

4.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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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곳에 바티칸 궁과 시스티나 예배당이 있고 높은 곳에 빌라 벨베데레가 있다.[2] 높은 곳은 한 층만 있고(3층에 해당), 낮은 쪽은 세 층이 있어서 이곳의 3층과 이어지는 구조이다. 솔방울 정원에서 바티칸 미술관의 피나코테카로 이어지게 된다.
[1] 리고리오가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무덤을 발굴하며 가져온 것이다.[2] 솔방울 뒤의 건물이 빌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