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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13 17:50:05

캐서린 세들리

<colbgcolor=#CDBFB0><colcolor=#000000> 도체스터 여백작
캐서린 세들리
Catherine Sedley, Countess of Dorchester
파일:1675_Catherine_(Sedley),_Countess_of_Dorchester_by_Sir_Peter_Lely.jpg
이름 캐서린 세들리
(Catherine Sedley)
출생 1657년 12월 21일
사망 1717년 10월 26일 (향년 59세)
그레이트브리튼 왕국 서머싯 바스
배우자 제1대 포트모어 백작 데이비드 콜이어
(1696년 결혼)
자녀 캐서린, 데이비드, 찰스
아버지 찰스 세들리
어머니 캐서린 새비지
1. 개요2. 생애3. 일화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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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Good God, who would have thought that we three whores should have met here!
세상에, 우리 세 명의 창녀들이 여기서 만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
1714년 10월 20일, 조지 1세의 대관식장에서

잉글랜드 국왕 제임스 2세의 정부. 찰스 2세의 정부 넬 그윈 못지않은 재치와 독설로 유명하다.

2. 생애

1657년에 준남작이자 극작가인 찰스 세들리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캐서린의 어린 시절은 불행했다. 어머니는 정신질환으로 캐서린이 어렸을 때 병원에 갇혔으며 아버지는 아들을 얻기 위해 자신의 정부를 집에 들였다. 아버지의 첩과 이복남동생들에게 밀려 집에 있을 수 없게 된 캐서린은 15살의 나이에 집을 나와 궁에 들어갔다.

궁에서 캐서린은 당시 국왕 찰스 2세의 동생 요크 공작 제임스의 두번째 부인인 모데나의 마리아의 시녀가 되었다. 캐서린은 특유의 위트로 궁에서 인기인이 되었다. 그러나 캐서린이 요크 공작의 정부가 되었을 때 캐서린 본인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캐서린이 재치있게 말을 잘하긴 했지만 키가 크고 깡말랐으며 예쁘다고 하기 힘든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에 캐서린은 제임스 2세에게 가장 사랑받은 정부로 알려지게 되었다.

1685년에 찰스 2세가 사망하면서 동생인 요크 공작 제임스가 제임스 2세로 즉위했다. 왕이 된 제임스 2세는 자신의 상담역이었던 가톨릭 사제들의 압박에 정부들을 정리해갔다. 캐서린은 떠나기를 거절했지만 결국 아일랜드로 쫓겨났다. 아일랜드에서 캐서린은 화려하고 비싼 집에서 제임스 2세에게 받은 돈으로 호화롭게 살았다. 그런데 캐서린이 떠난지 약 반년이 되는 대관식 날 제임스 2세와 캐서린 사이에서 난 어린 아들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캐서린은 즉시 궁으로 돌아왔고 슬픔에 빠진 두 사람은 서로를 위로했다.

대관식 이후 제임스 2세는 캐서린을 도체스터 여백작과 달링턴 여남작에 봉했다. 많은 궁인들이 이 처사에 불만을 품었다. 그중 가장 분통을 터뜨린 사람은 왕비 모데나의 마리아였다. 메리는 제임스 2세에게 울분을 토하며 고향으로 돌아가 수녀가 되어버리겠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캐서린은 궁에서 나가게 되었지만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높은 작위를 누렸으며 계속해서 제임스 2세를 만났다.

1688년에 명예혁명이 발발해 제임스 2세는 프랑스로 망명했다. 1696년에 캐서린은 후에 포트모어 백작이 되는 데이비드 콜이어라는 장교와 결혼했다.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들 두명을 낳고 연금을 받으며 잘 살던 캐서린은 1717년 10월 26일에 바스에서 사망했다.

3. 일화

파일:1685_Catherine_Sedley_(1657–1717),_Countess_of_Dorchester_-_108811_-_National_Trust.jpg
도체스터 여백작 캐서린 세들리, 1685년

제임스 2세는 여성을 볼 때 외모를 그리 따지지 않는 편이었다. 정부가 된지 얼마 안 되어 다른 제임스 2세의 정부들을 본 캐서린은 "우리 중에 예쁜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우리가 재치가 있어서라고 해도 그이(제임스)는 그걸 알아볼 능력이 없으니 원."이라고 말했다.

캐서린은 언제 어디서든 큰 소리로 하고싶은 말을 전했다. 제임스 2세의 장녀이자 명예혁명으로 아버지를 내쫓고 왕위에 오른 메리 2세는 아버지의 정부였던 캐서린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 캐서린은 궁에서 다른 선왕의 정부들에 비해 현저하게 푸대접을 받았다. 어느날 메리 2세는 마지못해 캐서린의 알현을 허락했다. 캐서린은 여왕의 앞에서 "왜 그렇게 거만하게 구시죠, 부인? 내가 당신 아버지와 간음해 계명을 어겼지만 당신은 아버지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어겼다는 걸 기억하세요. 그 점에서 우린 동등하죠."라고 큰 소리로 말하는 대담함을 선보였다.

캐서린은 아들들이 처음 학교에 가는 날에 "만약 누가 너희를 창녀의 아들들이라고 부르면 그건 사실이니까 참으렴. 하지만 누가 너희를 사생아라고 부르면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한다. 너흰 정직한 너희 아버지의 아들들이니까."라고 말했다고 한다.

뭐니뭐니 해도 캐서린이 한 가장 유명한 말은 상술한 세 명의 창녀 발언이다. 조지 1세의 대관식이 시작되기 전 캐서린은 찰스 2세의 정부였던 루이즈 드 케루알윌리엄 3세의 정부였던 엘리자베스 해밀턴과 마주쳤다. 찰스 2세와 제임스 2세, 윌리엄 3세 모두 죽은 마당에 세 왕의 정부들이 모이는 진풍경이 펼쳐진 것. 이에 캐서린은 "세상에, 우리 세 명의 창녀들이 여기서 만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그리고 대관식이 시작된 뒤 캔터베리 대주교 토마스 테니슨이 사람들에게 새 왕을 받아들이겠냐고 묻자, 캐서린은 길게 늘어선 병사들을 가리키며 "저 늙은 멍청이는 이렇게 검이 많은데 아니라고 할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라고 다 들리게 말했다.

4. 여담


[1] 이 사라 제닝스는 후일 제임스 2세의 차녀 앤 여왕의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바로 영화 더 페이버릿에서 레이첼 바이스가 분한 '말버러 공작부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