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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8년 일본 경마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으로 천황상 가을 대회에서 경주마 사일런스 스즈카가 경기 중 골절로 이송 후 안락사된 사건이다.침묵의 일요일(沈黙の日曜日)이란 명칭은 당시 경기 실황자인 시오바라 츠네오[1]의 중계에서 발췌되었고, 이후 사일런스 스즈카의 최후 및 1998년 천황상 가을을 다룰 때 주로 쓰이는 이름으로 자리잡았다.
2. 상세
2.1. 사일런스 스즈카는 어떤 존재였나
1997년 말, 타케 유타카와의 만남으로 자신의 소질을 발휘할 수 있게 된 사일런스 스즈카는 홍콩 국제 컵(GII, 현 GI 홍콩 컵)에 입착하면서 그 재능을 드러내게 된다. 이후 1998년에 사일런스 스즈카는 중상 5연승, 코쿠라대상전(GIII)과 킨코상(GII)의 레코드, 특히 킨코상에서 대차승 등등 가공할 기록들을 새기고 있었다. 타카라즈카 기념(GI)에서는 자신에게 불리한 우회전 및 2200m라는 거리에도 불구, 스테이 골드나 메지로 브라이트, 에어 그루브 등의 강자들을 떨쳐내며 승리를 가져갔고, 마이니치 왕관에서는 황금세대에서 손꼽히는 강자인 엘 콘도르 파사와 그래스 원더로부터 압승을 거둬내는 등, 그 강함을 의심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사일런스 스즈카는 그 특유의 도주 전략으로 많은 인기를 누리기도 하였다. 일반적으로 경마에서는 시작부터 끝까지 상대를 억누르는 도주나, 가장 뒤에서 말도 안되는 스퍼트로 몰고 들어오는 추입 전략의 인기가 상당하다. 그것에 강함을 겸비하면 무조건 적으로 인기가 좋을 수 밖에 없다. 압도적인 무패 2관의 도주마 미호노 부르봉이나, 추입 스퍼트에 날개를 달았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무패 3관마 딥 임팩트 또한 맥락을 같이한다.
시기는 연말로 접어들면서, 좌회전 2000m, 사일런스 스즈카 최고의 퍼포먼스였던 킨코상과 거의 동일한 조건인 천황상 가을에서는 사실상의 낙승이 예고되었었다. 기껏 라이벌이라고 해봐야 2,3착 전문인 스테이 골드, 장거리 전문인 메지로 브라이트, 97년 아리마 기념을 따냈지만 98년 한 해 내내 무승인 실크 저스티스 정도 밖에 없었으므로, 스즈카가 얼마나 압도적으로 이기느냐가 관전 포인트라 해도 무방했다. 단승 배율은 1.2배, 총 61.8%의 지지율로 1번 인기를 사수한 채, 심지어 도주마로써는 최고의 위치인 1번 게이트에 배정되었다. 이는 자신의 첫 경기이자 주전 기수 타케 유타카와의 첫 조우였던 4세(현 3세) 신마전, 그리고 타케 유타카와 함께 달리기 시작하며 자신의 커리어를 뒤바꾼 계기인 홍콩 국제 컵과 같은 게이트 번호로서, 사일런스 스즈카가 이 경기에서 이기는 것은 마치 운명과도 같음을 시사하고 있었다.
2.2. 침묵의 일요일
1998년 천황상 가을에서 발목골절부상을 당하는 사일런스 스즈카[2] |
사람의 시각에서 골절 정도가 뭐가 대수냐 싶겠지만, 말에 있어서 다리에 발생한 분쇄골절은 예후불량의 판정을 받기 십상이다. 물론 거의 100% 안락사되는 개방골절보다는 형편이 나으나 그 정도가 심하면 예외는 없다. 수술을 감행하더라도 인간과 달리 별다른 보조기구를 사용할 수 없어 나머지 다리에 수백킬로그램에 달하는 하중이 전가되기 때문에, 제엽염(발굽 염증) 등 합병증이 연쇄적으로 발생하기도 하며 이로 인한 감염이나 장기부전 등으로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실제로 다리의 하중을 줄이기 위해 말을 지탱하는 여러 기구를 사용한 사례가 존재했으나 치료에 실패하고 죽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이는 텐 포인트 등의 사례에도 잘 나와있으니 참조해보아도 좋다.
코스 외각으로 빠져나와 조치를 받던 사일런스 스즈카는 머잖아 구급차로 실려갔으나 회복불능 판정을 받고 그대로 안락사되었다. 겨우내 빛나기 시작한 커리어는 채 1년도 가지 못한 채, 만 4세의 나이로 삶을 마친 것이다. 기수 타케 유타카를 짊어지고 안전히 정지했던 만큼 외견으로는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던 팬들은 그의 죽음에 충격을 금치 못했다. 한편 사일런스 스즈카의 관계자들은 모두가 울었다고 한다. 담당 조교사인 하시다 미츠루는 주인 잃은 마방에서 통곡했다고 전해지며, 스즈카가 평소 아버지처럼 따랐던 담당 구무원 카모 츠토무는 스즈카의 임종 당시 스즈카의 머리를 껴안고 오열한 뒤 다른 말을 맡지 못하고 끝내 구무원 일을 그만두고 만다. 스즈카의 마주였던 나가이 케이지에게 경마 팬들의 많은 격려 편지가 도착했으나, 그 중에는 "더는 경마 못 보겠다", "후츄에는 당분간 못 갈 것 같다"는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내용도 있었다고 한다.
사일런스 스즈카의 주전 기수로 오랜 시간을 함께했던 타케 유타카는 레이스 직후 "악몽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다"라는 코멘트를 남기고는 너무 충격을 받은 나머지 그날 밤 울면서 미친 듯이 술을 퍼마셨다. 평소 자기 관리에 철저해 다른 기수들에게 '기수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지를 보여주는 교과서 같은 사람'이라 평가받았던 그의 인생에 있어 만취하도록 술을 마신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을 정도로, 그의 충격과 상처는 깊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18년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사일런스 스즈카를 생각하면 아직도 찌릿한 아픔을 가슴 속에서 느낀다고 말했다. 사일런스 스즈카에 대한 추억과 말해야 할 내용도 아직 많다고 하면서도, 아직도 그 상처는 겨우 딱지가 생긴 곪은 상처와 같아 뜯어내면 피가 뿜어져 나올 것 같다고 비유하며 언젠가 상처가 아물면 사일런스 스즈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5]
사일런스 스즈카(1994.5.1)의 출생 1년 뒤 태어난 같은 선데이 사일런스 산구마인 스페셜 위크(1995.5.2)는 이듬해 1999년 10월 31일 가을 천황상 우승을 차지했다. 이때 해설은 "1년 전에 맡겨 놓았던 우승 트로피를 되찾아 간다"라고 평한바 있고, 스페셜 위크의 기수인 타케 유타카는 "사일런스 스즈카가 밀어줬습니다"라는 말을 남겼다.[6] 타케 유타카는 공식 석상이나 카메라 앞에서 절대 눈물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지만, 유일하게 이 경기의 위닝 런 때에 고글을 들춰 눈물을 닦는 모습을 보였다. 스페셜 위크의 우승의 기쁨을 느낌과 동시에 사일런스 스즈카가 떠올라 감정이 복받친 것으로 보인다. 그 후로도 타케 유타카는 사일런스 스즈카를 다시 타고 싶은 말로 자주 언급하고 있다. 짧은 전성기였지만 그 퍼포먼스로 인하여 현재까지도 JRA 최고의 도주마로 불리는 마필로 기억되고 있다.
24년 후 판탈라사가 2022년 천황상 가을에서 사일런스 스즈카와 동일한 1000m 랩타임 57.4를 기록하는 대도주를 보이며, 격전 끝에 2착으로 골인하였다.[7] 이에 스즈카를 기억하는 팬들은 스즈카가 지나지 못한 4코너를 대도주를 하며 무사히 통과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고마웠다는 반응을 보였다.
2.3. 책임론
대도주 위주의 전략을 비판하는 의견도 있다. 이런 주장을 펼치는 쪽에서는 서러브레드 특유의 내구성 한계를 의식하지 않고 무리하게 페이스를 올리도록 부추겨서 결국 물리적인 부하가 걸리도록 했다고 본다. 특히나 사일런스 스즈카는 제자리에서 계속해서 맴도는 회전벽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무리한 경주를 벌일 때의 위험 부담이 컸다.타케 유타카는 스즈카를 통해 2000m 경기에서 전반 58초, 후반 58초라는 꿈의 페이스를 기록하길 바라고 있었다. # 1분 56초는 1000m 57.4초 페이스를 마지막 3펄롱 직전까지 유지한다고 가정해도, 마지막 3펄롱을 35.6초 안으로 버텨야 하는 강도 높은 페이스이다. 하지만 타케 유타카 기수는 마이니치 왕관에서 이 페이스에 거의 근접했기에[8] 2000m에서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한 듯하다. 참고로 전년도 우승마 에어 그루브의 기록은 1분 59초였다.
일본 중앙 경마에서 레코드를 달성하는 말들은 수도 없이 나오고, 또한 특정 말이 무조건 이길 것이란 확신도 많이 나온다. 그러나 대놓고 레코드 갱신을 목표로 했던 말은 사일런스 스즈카 외에는 찾기 어렵다. 레코드는 경쟁마들의 동태와 전반적인 페이스에 따라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완전히 선두에 위치하는 사일런스 스즈카는 달리 영향을 받지 않았겠지만, 어지간한 서양의 최강마들에게도 걸지 못 할 기대치는 어찌 보면 로망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오만함으로 받아들여질 여지가 있다.
일본에서 2000m 1분 56초의 벽은 이퀴녹스가 2023년 천황상(가을)에서 1분 55초 2의 기록과 함께 세계 신기록을 경신하면서 깨졌다. 해당 경기에서 저스틴 팰리스, 프로그노시스, 다논 벨루가 역시 1분 56초 이내로 들어오는데 성공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기록은 타케 유타카가 이날 천황상(가을) 경기 전, 검량실에서 말에 차여 부상당해 출전하지 못한 상태에서 갱신되었다.
3. 우승마, 오프사이드 트랩
당시 우승마인 오프사이드 트랩은 불치병인 굴건염을 세 번이나 겪는 바람에 7세라는 고령이 되고 나서야 겨우내 GI을 우승할 수 있었다. 결국 해당 경기에서 최고령 G1 제패의 기록을 달성했고, 이 기록은 컴퍼니가 갱신하기 이전까지 깨지지 않았다. 이렇게 나름의 굴곡진 스토리가 있지만, 역시나 사건의 여파로 잘 회자되지 않는다.[9]기수였던 시바타 요시토미가 인터뷰에서 얼마 안 되는 팬들에게 감사하다며 사일런스 스즈카의 안위를 염려하는 말과 함께 짧은 소감을 남겼던 것 또한 세월의 뒤안길로 저물어가다가, 별 얼토당토 않는 이유로 발굴되게 된다.[10][11] 당시 인터뷰 전문과 이후 이야기는 문서 참조.
2024년 10월 24일에 발행된 스포츠 잡지 Number에는 당시 오프사이드 트랩의 기수였던 시바타 요시토미의 인터뷰가 실렸는데 27년전 침묵의 일요일 사건에 대한 기억을 털어놓는 인터뷰를 가졌다. 인터뷰 기사 한글 번역
4. 창작물에서
이 일화는 20년 후 경마를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에서 해당 경주마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로 똑같이 재현되었고, 작중에서도 상당히 큰 사건으로 다루어졌다.[12] 원본 말의 비극적인 최후를 알던 팬들은 애니 역시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부상과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완벽하게 복귀에 성공하는 것으로 전개되었다. "만약 사일런스 스즈카가 부상을 이겨내고 다시 레이스를 했다면?"이라는 팬들의 염원을 후대의 창작물을 통해서나마 성취한 것이다.[13]게임에서는 육성 스토리든 메인 스토리든 아예 사일런스 스즈카가 부상당하지 않고 천황상 가을을 우승하는 if 전개로 진행된다. 육성 스토리에서는 천황상 가을을 우승할 경우 제3코너 언저리에서 발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라고 간접적으로 언급하는 정도이며, 메인 스토리에서는 이 시점에서 다른 동료들의 응원으로 덮쳐오는 어둠을 극복해내는 스토리.
라이트 노벨 아마기 브릴리언트 파크 4권에서 작중 인물이 이때의 우승마를 맞춰야 하는 사지선다 퀴즈가 등장한다. 선택지는 오프사이드 트랩과 사일런스 스즈카, 메지로 브라이트, 스테이 골드.
[1] 당시 후지 테레비 아나운서, 현 BS 후지 편성국 홍보담당 국장.[2] 격렬히 달리던 레이스 도중 발생한 발목 부상에서 기수를 내동댕이치지 않고 고통을 참으며 서서히 속도를 줄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원래 발목이 부러지자 마자 말과 말을 탄 기수와 뒤에 따라오던 말들 모두 고꾸라지는 것이 정상이지만, 사일런스 스즈카가 워낙 비정상적으로 빨리 달리고 고통을 견딘 덕분에 2차 충돌이 일어나지 않았으며, 기수도 낙마해서 중상을 입을 수 있는 위험을 잘 지나갈 수 있었다.[3] 왼쪽 앞다리.[4] 발목에 있는 길이가 짧은 뼈.[5] 일반적으로 경주 중에 분쇄골절이 발생하면 달리던 반동으로 마체가 앞으로 쏠리면서 머리부터 고꾸라지면서 바닥에 부딛치게 되어 있고, 기수는 높은 확률로 낙마하여 큰 부상을 입으며 심하면 기수 역시 목숨을 잃기도 한다. 한 예로, 2010년 더 타이키의 전지 분쇄골절로 인해 타케 유타카는 낙마 사고를 당해 중상을 입고 지금도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당연히 더 타이키 역시 그 자리에서 안락사되었다. 그러나 침묵의 일요일 때 사일런스 스즈카는 어떻게든 기수만은 지키겠다는 듯이 서서히 속력을 낮추어 타케 유타카의 낙마를 막아주었다. 스즈카는 타케 유타카에게 생명의 은인이기도 한 셈이다.[6] 죽은 말이 밀어주었다는 언급은 경마계에서 두루 쓰이는 표현이다. 가령 2018년 타카라즈카 기념 당시 미키 로켓을 타고 우승한 와다 류지 기수는 해당 경기 1달 전에 죽은 그의 애마 티엠 오페라 오가 밀어주었다고 말한 바 있었다.[7] 우승마는 이퀴녹스. 이퀴녹스 또한 모계의 댄싱 브레이브와 외조부 킹 헤일로를 연상케 하는 엄청난 라스트 스퍼트로 판탈라사를 따라잡은 점이 회자되기도 하였다.[8] 전반 1000m 57.7, 라스트 3펄롱 35.1을 기록했다. 이게 어느 정도인지 감이 안 온다면 2착인 엘 콘도르 파사가 35.0초였다. 0.1초 차이면 대략 목에서 반마신 가량의 차이이므로, 실상 거의 따라잡지 못했던 것이다.[9] 95년 타카라즈카 기념의 단츠 시애틀과도 유사점이 있다. 잔부상으로 오랜 공백기를 가지다가, 막 포커스를 받고 중상으로 올라나와 생애 첫 G1에서 레코드 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루고, 그 때의 부상으로 커리어를 마감하는 드라마를 이뤄냈지만...[10] "(오프사이드 트랩이 잘 달렸고, 성적도 좋아서)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라는 말 한 마디가 2021년의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 런칭 이후로 유입된 많은 스즈카 팬들에게 이 발언만 주목받아 질타를 받으며 대단히 부적절한 방향으로 회자된 것이다. 이후에도 황금세대와 스즈카에 대한 각종 구설수와 하이프가 돌았고, 이에 우마무스메 유입을 바라보는 경마 올드 팬들의 시선은 대단히 부정적으로 변하였다.[11] 사실상 실언으로 볼 여지가 전혀 없다. 우승 직후에는 사일런스 스즈카의 예후를 알 리가 없었고, 더욱이 유력마 하나가 경기에서 나갔을 뿐이지 결국 남은 일은 오프사이드 트랩 스스로가 달성했기 때문이다. 매 경기마다 크고 작은 부상이 일어나는 경마 판에서 굉장한 행운을 맞이했음에도 불구, 그것을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고 오프사이드 트랩의 강함과 사일런스 스즈카에 대한 유감으로 풀어내는 것은 관록 있는 기수로서의 적절한 대처라고 보는 것이 옳다. 애시당초 막된 사람이었으면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긴 기수 생활에서 많은 후배들의 존경을 받는 고참 기수로 받들어질 턱이 없다.[12] 당시 우승마는 우마무스메 애니메이션 1기에서는 스즈카와 라이벌 기믹이 있고 오프사이드 트랩과 마주가 같은 엘 콘도르 파사 우승으로 변경되었는데, 이는 단순히 미구현된 경주마에 대한 조치에 불과하므로 딱히 큰 의미는 없다. 현재 우마무스메에 버젓이 등장한 메지로 브라이트 또한 과거에 메지로 라이언으로 대체되었던 만큼 캐릭터성의 공백을 만들지 않기 위함일 뿐이다.[13] 이에 대해 침묵의 일요일을 직접 목격하고, 그 충격으로 경마를 한 번 떠났던 일본의 한 경마 팬의 회고록이 있다.#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