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 루이스 칠라베르트의 수상 이력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둘러보기 틀 모음 | |||
개인 수상 | ||||
| 1995 · 1997 · 1998 | |||
| ||||
베스트팀 | ||||
|
파라과이의 前 축구 선수 | ||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 호세 루이스 칠라베르트 José Luis Chilavert | |
본명 | 호세 루이스 펠릭스 칠라베르트 곤살레스 José Luis Félix Chilavert González | |
출생 | 1965년 7월 27일 ([age(1965-07-27)]세) | |
파라과이 센트랄주 루케 | ||
국적 | [[파라과이|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키 188cm | 체중 92kg | |
포지션 | 골키퍼 | |
소속 | 선수 | 스포르티보 루케뇨 (1982~1984) 클루브 과라니 (1984) CA 산 로렌소 (1984~1988) 레알 사라고사 (1988~1991) CA 벨레스 사르스필드 (1991~2000) RC 스트라스부르 알자스 (2000~2002) CA 페냐롤 (2002~2003) CA 벨레스 사르스필드 (2003~2004) |
국가대표 | 74경기 8골[1] (파라과이 / 1989~2003) | |
통산 득점 | 54골 |
[clearfix]
1. 개요
파라과이의 전 축구 선수. 선수 시절 포지션은 골키퍼.특유의 킥력으로 득점을 곧잘 기록해 '골 넣는 골키퍼'라는 별칭으로도 유명했다.
2. 클럽 경력
마라도나와 악수하는 칠라베르트 |
칠라베르트는 1995년, 1997년, 1998년 IFFHS 선정 최고의 골키퍼에 이름을 올렸으며, 1996년에는 남미 올해의 선수상까지 받았다. 특히 1999년 페로 카릴 오에스테를 상대로 세 번의 페널티킥을 모두 성공시키며 골키퍼 역사상 최초로 해트트릭을 성공한다.
2000년 칠라베르트는 RC 스트라스부르 알자스로 이적하며 유럽무대로 진출하여 2001년 쿠프 드 프랑스 우승을 이끌었고, 2003년 칠라베르트는 페냐롤로 이적한 뒤 벨레스로 돌아와 2004년에 은퇴를 선언한다.
3. 국가대표 경력
파라과이의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끈 칠라베르트는 불가리아,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클린시트를 달성하며 무승부를 이끌었고 나이지리아를 3:1로 격파하여 16강에 진출한다.
칠라베르트의 선방 장면 |
1999년에는 자국에서 코파 아메리카가 열렸지만 후술할 내용으로 불참을 선언한다.
그 후에도 국가대표에서 활약하던 칠라베르트는 2002 한일 월드컵 남미 예선에서 호베르투 카를로스와 마찰을 벌이며 카를로스에게 침을 뱉었고 칠라베르트는 4경기 출장 정지를 먹는다.[2] 어쨌든 2002 한일 월드컵에 출전해 팀의 16강 진출을 이끌었고, 16강전에서 미로슬라프 클로제-미하엘 발락-올리버 칸이 이끄는 독일을 만났으며 후반 88분에 올리버 뇌빌에게 결승골을 허용하여 0:1로 패배해 탈락하고 만다. 이 경기에서는 공격에 가담해서 슛도 날렸으나 올리버 칸이 잘 막아냈다. 이후 2003년에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한다.
여담으로 코파 아메리카에 세 번 출전했으나,[3]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는데 1997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조별리그를 통과하여 토너먼트에 진출했으나 호나우두가 이끄는 브라질에게 패했다.
4. 플레이 스타일
뛰어난 반사신경과 세이빙능력, 좋은 판단력을 지닌 골키퍼이면서 1대 1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뛰쳐나와 공격수를 제지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골키퍼다. 그리고 상술했듯이 킥력이 좋아 프리키커와 PK 전담키커를 맡아 골을 자주 터트렸다.
5. 기록
5.1. 대회 기록
- 클루브 과라니
- 프리메라 디비시온: 1984
- CA 벨레스 사르스필드
- 프리메라 디비시온: 1994 C[4], 1995 A[5], 1996 C, 1998 C
-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1994
- 인터컨티넨탈컵: 1994
- 코파 인테라메리카나: 1994
- 수페르코파 수다메리카나: 1996
- 레코파 수다메리카나: 1997
- RC 스트라스부르 알자스
- 쿠프 드 프랑스: 2000-01
5.2. 개인 수상
- FIFA 월드컵 올스타팀: 1998
- 에퀴포 이데알 데 아메리카: 1994, 1995, 1996, 1997, 1998, 1999
- 남아메리카 올해의 축구 선수: 1996
- 남아메리카 올해의 팀: 1994, 1995, 1996, 1997, 1998, 1999
- 아르헨티나 올해의 축구 선수: 1996
- FIFA XI: 2001
- IFFHS 세계 최고의 골키퍼: 1995, 1997, 1998
- IFFHS 레전드: 2016
- IFFHS 올타임 파라과이 드림팀: 2022
6. 여담
- 칠라베르트는 사회 활동에 적극적이며 경제적으로 취약한 아동이나 몸이 불편한 아동을 위해서 모금 활동과 자선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동참하면서 협력하고 있다. 그리고 정계 입문을 선언하였다.#
- 1999년 모국 파라과이에서 코파 아메리카 대회가 열렸는데 그는 대표팀 소집을 거부하면서 파라과이 정치계에다 각성을 촉구하는 발언을 남겼다.#
"경제적으로 혼란스럽고 어려운 파라과이에 지금 필요한 것은 코파 아메리카 같은 국제 대회가 아니라 학교와 병원이다."[6]
라는 말을 남겼다. 또한 오비에도 대통령을 비판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파라과이에는 미국 거지보다 못사는 550만 인구가 살고, 미국 부자보다 잘 사는 20만명 부자가 산다. 그런 부자들 이득을 대변하는 오비에도 정권을 찬양할 결과를 만들고 싶지 않다."
- 결국, 오비에도 대통령은 이 발언을 듣고 무척 불쾌하게 생각했지만 당시 파라과이 대학생들은 "칠라베르트를 대통령으로 추천하자" 라고 무척 칭송했었다. 하지만, 칠라베르트는 "내가 국회의원이 되면 정치인들을 의회에서 패버릴지도 모른다" 라면서 사양했다. 하지만, 훗날 칠라베르트는 정계에 입문하면서 대통령 선거까지 출마한다.
- 2002 한일 월드컵 남미 예선에서 브라질과의 경기를 마치고 나서 호베르투 카를로스가 자신을 놀린다며[7] 카메라를 통해 TV 생방송이 나오는데도 침을 뱉어 출장정지를 받았고 이 때문에 한국에서 열린 월드컵 경기 1차전 남아공과의 경기에서는 관중석에서 경기를 봐야 했다.
- 2002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마이클 오언, 에밀 헤스키, 제이미 레드냅, 에마뉘엘 프티 등 유럽 축구 선수들이 월드컵 공동개최국인 대한민국의 개고기 식용에 대해 반대하면서 압력을 넣는 서명을 했는데[8] 반면에 칠라베르트는 "한국의 개고기 식용은 한국의 전통 문화라며 100% 지지한다" 라고 말했고, 개고기를 반대하는 선수들이 있는 영국은 왜 개에게 각성제를 먹여가면서 벌이는 여우사냥을 그만두지 않느냐? 라고 일침을 가했다. 링크
- 2002년 한일 월드컵으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 갈비찜을 두 그릇이나 먹었는데 너무 맛있어서 잊을 수가 없었고 아욱국도 잘 먹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남미권 사람들은 아시아권의 식문화와 음식이 낯설고 입맛에 익숙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점을 잘 생각해보면 이례적인 사례다.링크 또한, 16강전에서 독일에게 종료 직전 아쉽게 골을 허용하여 패배한 다음 인터뷰에서 "파라과이 대표팀을 응원해줬던 한국 팬들에게 감사하다" 라는 말을 남겼는데, 한국에 대해서 좋은 추억을 가지고 돌아간 듯하다.
- 그에게는 친형 롤란도 칠라베르트(Rolando Chilavert)가 있으며 동생과 다르게 177cm로 비교적 작은 체구이며 1961년생으로 동생보다 4살이 많다. 대표팀 11경기를 뛰었으며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아쉽게도 벤치에만 있었다. 1974년 프로에 데뷔해서 1994년에 은퇴했고 대부분 커리어를 파라과이 자국 리그에서 보냈으며 은퇴 후에는 동생과 다르게 감독으로서 커리어를 유지하며 지금까지도 남미 대륙을 돌며 감독 생활을 하고 있으며 2003년에는 U-20 파라과이 대표팀을 이끌고 한국 대표팀과 상대한 인연도 있다. 결과는 한국 대표팀의 0-1 패배로 끝났다.
- 2020년 12월 2023년 파라과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를 선언하고 캠페인을 시작했다. 하지만, 고작 0.8% 득표에 그치면서 낙선하였다.#
- 그의 성씨 칠라베르트(Chilavert)는 성씨를 보면 알겠지만 독일인 혈통으로 추정된다. 파라과이에는 19세기에 독일 남부에서 이민자들이 꽤 많이 들어왔다. 부계가 독일계이고 모계가 과라니족과 스페인인의 혼혈이라서 과라니어를 구사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 골닷컴에서 시대별 최고의 골키퍼 5인을 선정했는데, 1990년대 최고의 골키퍼 3위에 이름을 올렸다.
[1] 이 정도만 해도 웬만한 수비수나 미드필더 뺨치는 수준인데 클럽에서 기록한 골까지 합하면 50골이 넘는다.[2] 이것 때문에 남아공과의 본선 첫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고 결국 그 경기에서 2:2로 비기고 만다. 만일 칠라베르트가 출전 정지를 먹지 않아 그 경기에 정상적으로 출전했다면 그 경기 결과는 아마 파라과이의 2:0 승리로 끝났을지도 모른다.[3] 1991 코파 아메리카와 1993 코파 아메리카, 1997 코파 아메리카[4] Clausura(클라우수라)[5] Apertura(아페르투라)[6] 이는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개최 반대 시위 때 펠레나 호나우두가 보여준 태도와는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이다. 물론 히바우두나 호마리우와 같이 월드컵 개최를 반대하며 비슷한 의견을 보인 선수도 있다.[7] 안 그래도 경기 전부터 브라질의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감독과 카를로스가 파라과이를 깔보며 신경을 건드리는 말을 했고 경기에 진 것도 화가 나는데 특히 자신이 실점당할 때 놀리기도 했고 경기중에 성기를 툭툭 건들면서 "일어나! 인디오~"(칠라베르트가 자신이 원주민 취급이 받는 것이 불쾌했다기보다는 카를로스가 파라과이에 많이 사는 과라니족을 비하하는 다분히 인종차별적인 발언에 분노했다고 보는 편이 맞다.)라고 놀리기까지 했다고 한다.[8] 당시 FIFA 회장인 제프 블라터가 반대파인 정몽준을 깎아내리기 위해서 월드컵 개최국인 한국에 개고기를 가지고 트집을 잡은 상황에서 생긴 일이라서 이들이 정말로 순수하게 동물보호의 뜻에서 동참했을지는 각자 판단하자. 그런데 웃기는 것은 1996년 당시 월드컵 개최 경쟁을 할 당시, "한국이 개고기 안 먹으면 더 유리할 것이다." 라는 망언을 했던 브리지트 바르도에게 당시 피파가 "그런 건 상관도 없다. 그리고 당신이 뭔데 이래라 저래라 하냐?" 라면서 비아냥거렸었다.
분류
- 1965년 출생
- 1982년 데뷔
- 2004년 은퇴
- 센트랄 주 출신 인물
- 독일계 파라과이인
- 파라과이의 남자 축구 선수
- 골키퍼
- 스포르티보 루케뇨/은퇴, 이적
- 클루브 과라니/은퇴, 이적
- CA 산 로렌소/은퇴, 이적
- 레알 사라고사/은퇴, 이적
- CA 벨레스 사르스필드/은퇴, 이적
- RC 스트라스부르/은퇴, 이적
- CA 페냐롤/은퇴, 이적
- 파라과이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
-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참가 선수
-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참가 선수
- 1991 코파 아메리카 칠레 참가 선수
- 1993 코파 아메리카 에콰도르 참가 선수
- 1997 코파 아메리카 볼리비아 참가 선수
- 득점 기록이 있는 골키퍼
- IFFHS 세계 최고의 골키퍼 다회 수상자
- 파라과이의 정치인
- 운동선수 출신 정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