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 이니셔티브 Chiang Mai Initiative (CMI) | |
<colbgcolor=#0071bc><colcolor=#fff> 체결 | 2000년 5월 |
분류 | 다자간 통화 스와프 |
감독기구 | |
명칭 | 아세안 및 한중일 거시경제조사기구 (ASEAN+3 Macroeconomic Research Office) |
위치 | 10 Shenton Way, #15-08 MAS Building, Singapore 079117 |
링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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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역내 금융 협력의 필요성을 느낀 ASEAN+3 국가들이 체결한 통화 스와프. 2010년에는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다자화(Chiang Mai Initiative Multilateralisation, CMIM)로 확대되었다. 감독기구로 아세안 및 한중일 거시경제조사기구(AMRO)를 두고 있다.2. 역사
1997년 금융위기로 인해 아시아 국가들은 금융의 국제화로 인해 투기 자본이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며 외환 시장을 교란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기존의 IMF 등이 이 문제를 해결해 주기에는 부족하다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치앙마이 이니셔티브의 아이디어는 이 시기 일본 대장대신인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가 구상한 아시아통화기금(AMF)[1] 및 300억 달러 규모의 재정 지원 계획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2000년 5월 태국 치앙마이에서 개최된 아시아개발은행 총회에 모인 ASEAN+3 재무장관들은 양자간 통화 스와프 를 기반으로 한 긴급 유동성 지원 협정을 체결했는데, 이 협정은 지역 이름을 따서 '치앙마이 이니셔티브'라고 불리게 되었다.
2007년 교토에서 열린 ASEAN+3 재무장관회의에서는 치앙마이 이니셔티브의 다자화가 제안되었다. 그러나 회원국간 분담금 및 투표권 문제로 논의가 진전되지 못하다가 2008년 금융 위기를 계기로 2009년 발리에서 있었던 재무장관회의에서 다자화에 관한 합의에 이르렀다. 치앙마이 이니셔티브가 기존의 양자간 통화 스와프에 기반한 일종의 네트워크 체제에서 다자간 단일 기금 체제로 변화한 것이다.
3. 분담금과 수혜한도
<colbgcolor=#fff,#000> 구분 | 분담금 | 수혜한도 | |||
분담금(억 달러) | 비중(%) | 인출배수 | 최대수혜금액(억 달러) |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384.0 | 16.0 | 1.0 | 384.0 | |
[[중국| ]][[틀:국기| ]][[틀:국기| ]] | 768.0 | 32.0 | |||
<colbgcolor=#fff,#000> 중국(홍콩제외) | 684.0 | 28.5 | 0.5 | 342.0 | |
[[홍콩| ]][[틀:국기| ]][[틀:국기| ]] | 84.0 | 3.5 | 2.5 | 84.0 |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768.0 | 32.0 | 0.5 | 384.0 | |
한중일 합계 | 1,920.0 | 80.0 | - | 1,194.0 | |
Big | [[인도네시아| ]][[틀:국기| ]][[틀:국기| ]] | 91.04 | 3.79 | 2.5 | 227.6 |
[[말레이시아| ]][[틀:국기| ]][[틀:국기| ]] | 91.04 | 3.79 | 2.5 | 227.6 | |
[[태국| ]][[틀:국기| ]][[틀:국기| ]] | 91.04 | 3.79 | 2.5 | 227.6 | |
[[싱가포르| ]][[틀:국기| ]][[틀:국기| ]] | 91.04 | 3.79 | 2.5 | 227.6 | |
[[필리핀| ]][[틀:국기| ]][[틀:국기| ]] | 91.04 | 3.79 | 2.5 | 227.6 | |
계 | 455.2 | 19.0 | - | 1,138.0 | |
Small | [[브루나이| ]][[틀:국기| ]][[틀:국기| ]] | 0.6 | 0.02 | 5.0 | 3.0 |
[[캄보디아| ]][[틀:국기| ]][[틀:국기| ]] | 2.4 | 0.10 | 5.0 | 12.0 | |
[[라오스| ]][[틀:국기| ]][[틀:국기| ]] | 0.6 | 0.02 | 5.0 | 3.0 | |
[[미얀마| ]][[틀:국기| ]][[틀:국기| ]] | 1.2 | 0.05 | 5.0 | 6.0 | |
[[베트남| ]][[틀:국기| ]][[틀:국기| ]] | 20.0 | 0.83 | 5.0 | 100.0 | |
계 | 24.8 | 1.0 | - | 124.0 | |
ASEAN 합계 | 480.0 | 20.0 | - | 1,262.0 | |
총계 | 2,400.0 | 100.0 | - | 2,456.0 |
분담금 규모는 중국 = 일본 > 한국 > ASEAN Big 5개국 > ASEAN Small 5개국 순이다. 여기에 정해진 인출배수를 곱하면 최대수혜금액이 된다. 홍콩은 IMF에 가입하지 않았으므로 최대수혜금액이 분담금 x 인출배수의 40%에 그친다. 인출배수는 중국과 일본이 0.5, 한국이 1.0이며 경제규모가 작은 나라일 수록 높게 책정되었다.[2] CMIM의 투표권 역시 기본적으로 분담금 규모에 따라 분배되지만 소국들에게도 최소한의 투표권을 보장했으므로 전체적으로 ASEAN의 입장을 배려한 구조라고 볼 수 있다.
4. 문제점과 개선 논의
치앙마이 이니셔티브는 명확한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일단 긴급하게 동원할 수 있는 자금 자체가 적었다. 출범 당시 합의된 금액은 달랑 170억 달러였다. 한국이 금융 위기 당시 지원받은 금액이 총 550억 달러에 이르는 것을 고려하면 턱없이 적은 금액이었다. 여러 국가가 참여한 것은 좋았지만 설계 자체의 결함이 있어 신속한 대응이 어려웠다. 치앙마이 이니셔티브는 1대 1 통화 스와프의 집합이었기 때문에 어떤 가입국이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협약 대상국 전체와 각자 협상을 벌여야 했기 때문이다.게다가 수혜금액이 일시에 지급되지도 않았다. 가입국이 지원을 요청하면 일단 10%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원하고 나머지 90%는 IMF의 동의를 받고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금융 위기시 신속한 대응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자체적인 시장 감시 기구가 부재하여 IMF의 금융 시장 모니터링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이런 제한이 없으면 가입국이 아무 때고 달러를 꺼내 갈 위험도 있었다.
개선 논의가 이어져 CMIM 체제로 전환한 후에는 기금 규모도 1,200억 달러를 거쳐 2,400억 달러까지 늘어났다. 자체적인 감독기구인 AMRO가 설립되고 나서 IMF 비연계 비중도 40%로 확대되었다. 달러로만 지원하던 것을 지원국의 역내 통화인 중국 위안이나 일본 엔으로도 지원할 수 있게 바뀌었다.
CMIM의 재원 구조는 리저브 풀링(Reserve pooling) 방식으로, 분담금은 각국 중앙은행에 있는 외환보유고 중 목적을 명기한 자금으로 보관하여 관리한다. 최근 지원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납입자본(Paid-in capital)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검토되고 있다. 다자간 통화 스와프 형태인 CMIM을 아예 기금과 같이 바꾸겠다는 이야기다. 이 경우에는 아예 아시아통화기금(AMF)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가장 많은 분담금을 내는 중국과 일본 간의 주도권 다툼이 있어 정책 변화가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을 전망이다.
출범한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실제로 CMIM의 금융 안전망을 이용한 사례가 없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2010년 이후 팬데믹을 제외하고는 큰 충격이 없었고 아시아 국가들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안전망(safety net) 사용보다 외환보유액이나 거시경제정책을 쓰는 것을 더 선호한 측면도 있다"고 분석했다. #
5. 관련 국제기구
아세안 및 한중일 거시경제조사기구(AMRO)는 치앙마이 이니셔티브의 유동성 공급을 지원 및 감독하기 위해 설립된 국제기구다. 2011년에 싱가포르에서 유한회사로 출발했다가, 2016년 설립을 위한 조약이 발효됨에 따라 국제기구의 지위를 얻었다. 소장은 중국과 일본에서 번갈아 맡고 있다. 역대 소장 목록은 다음과 같다.대수 | 성명 | 국적 | 임기 | 경력 |
1대 | 웨이번화(魏本華) | [[중국| ]][[틀:국기| ]][[틀:국기| ]] | 2011년 5월 ~ 2012년 5월 | 중국 국가외회관리국 부국장 |
2대 | 네모토 요이치(根本洋一)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2012년 6월 ~ 2016년 5월 | 재무성 부재무관 |
3대 | 창쥔홍(常军红) | [[중국| ]][[틀:국기| ]][[틀:국기| ]] | 2016년 6월 ~ 2019년 5월 | 중국 재정부 국제경제관계사 부사장 |
4대 | 도이 도시노리(土井俊範)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2019년 6월 ~ 2022년 5월 | 재무성 산하 재무종합정책연구소 소장 |
5대 | 리커우칭(李扣庆) | [[중국| ]][[틀:국기| ]][[틀:국기| ]] | 2022년 6월 ~ 현재 | 상하이국가회계학원 원장 |
[1] 1997년 일본이 제안했지만 미국이 IMF와의 기능 중복, 도덕적 해이를 우려하여 반대함으로써 설립되지 못했다.[2] 조 단위의 달러를 보유한 중국과 일본, 역시 수천 억 달러를 쌓아둔 한국에게 치앙마이 이니셔티브의 수혜금액은 미미한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