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의 사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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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년
1. 개요
후한 말의 인물이며 자는 영백(穎伯)으로 충소의 아버지, 충고의 아들. 사례 하남윤 낙양현 사람.2. 생애
사례종사, 완의 현령 등을 역임했고 남양군의 관리가 휴가를 좋아해 마을에 놀러다니자 백성들이 근심했으며, 충불은 나와서 그 관리를 만나면 수레에서 내려 그 마음을 고치게 했다. 시기는 알 수 없으나 하남태수를 지내 유익을 불러들여 기용하기도 했다.유능한 정치를 한다는 평판을 받았고 여러 차례 옮기다가 190년에 광록대부가 되었으며, 6월에 사공이 되었다가 191년 7월에 면직되어 태상이 되었다.
192년 6월에 이각, 곽사 등이 장안을 공격하면서 백관 대부분은 이를 피해 달아났지만 충불은 장안에 남아서 노욱, 주환, 최열, 왕기 등과 함께 싸우다가 전사했으며, 이 때 《후한서》 <효헌제기>에서는 관직이 태상, 《후한서》 <동탁전>에서는 위위로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