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8-28 00:32:23

최치환(1875)

<colcolor=#fff><colbgcolor=#0047a0> 국빈(國彬)
본관 전주 최씨[1]
출생 1875년 9월 27일
경상도 경주부 죽장면 지동
(현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죽장면 지동리)
사망 1944년 9월 10일
경상북도 영일군
묘소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죽장면 지동리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독립유공자. 200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1875년 9월 27일 경상도 경주부 죽장면 지동(현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죽장면 지동리)에서 아버지 최응기(崔膺基, 1829 ~ 1926)와 어머니 밀양 박씨(? ~ 1928) 사이의 두 아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1906년 3월 정용기가 고종의 밀명을 받고 각지에 발송한 통유문(通諭文)과 권고문, 격문 등을 읽고 국권회복을 위해 활동할 것을 결심하고 정용기의 의병 모집에 응하여 그의 의진에 입대했다. 그리고 각 지역에 연락하고 무기를 수집하는 임무를 도맡아 활동했다.

그러다가 정용기 의병장이 관군의 모략으로 경주진위대에 체포되어 대구형무소에 투옥되자 잠시 고향으로 돌아가 은거했으며, 정용기가 출옥하여 1907년 각지에서 활동하던 의병들을 다시 소집하여 산남의진을 재결성하자 다시 참여하였다.

그 뒤 산남의진은 대한제국 군대 해산으로 갈 곳을 잃은 군인들을 포섭하여 병력을 보강하고, 군령을 정하여 장병들을 단속하면서 군세를 확장하고 또한 같은 해 8월 청하군 현내면(현 포항시 북구 청하면)을 습격하고 청송군 현북면 신성리(현 청송군 안덕면 신성리) 등지에서 일본군을 격파하였으며, 경주군 자양면(현 영천시 자양면)에서는 일본군 3명을 사로잡아 효수하는 등 위세를 떨쳤다.

그러다가 1907년 10월 청하군 죽남면 입암리(현 포항시 북구 죽장면 입암리)에서 일본군과 교전하던 중, 중과부적으로 의병장 정용기를 비롯해 손영각, 권규섭 등의 장수들이 전사하여 의진이 와해되자, 이때 일본군에 체포되어 수년 간 옥고를 치러야 했다.

출옥 후에는 고향 영일군으로 돌아와 은거하다가 1944년 9월 10일 사망하였다.

2000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1] 인재공파-해평파 23세 종(鍾) 항렬. 족보명은 최종진(崔鍾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