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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3-12 15:16:49

최병익

<colbgcolor=#000><colcolor=#fff> 최병익
崔柄益
출생 1930년 10월 3일
충청북도 청주시
사망 1952년 9월 21일
강원도 인제군 705고지
복무 대한민국 육군
최종 계급 중위
복무 기간 1952
학력 한영상업학교

1. 개요2. 생애 및 군 경력 3. 공훈4.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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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최병익(崔柄益, 1930년 10월 3일 ~ 1952년 9월 21일)은 대한민국의 6.25전쟁 참전 군인이다.

2. 생애 및 군 경력

1930년 10월 3일 충청북도 청주에서 출생하였다.한영상업학교를 졸업한 후 1952년 5월 24일 갑종간부후보생 제19기를 거쳐 육군 소위로 임관하였다. 이후 국군 제8사단 제10연대 소대장으로 부임하여, 동부전선의 최전방 방어 임무를 수행하였다.

당시 국군 제8사단은 미 제1해병사단이 담당하던 '미네소타(Minnesota)선'을 인수하여 동부전선 좌익 방어를 맡고 있었다. 이곳은 아군의 주요 보급로를 엄호하는 전략적 요충지였으며, 북한군의 강력한 공세가 예상되는 지역이었다.

1952년 9월 중순, 국군 제8사단은 북한군이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의 854고지와 812고지 일대에서 대규모 공세를 준비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방어 태세를 강화하였다. 그러나 미 제10군단은 국군 제8사단에 9월 24일까지 미 제45사단과 임무 교대를 명령하였고, 9월 22일부터 854고지를 맡고 있던 제10연대 제3대대가 철수할 예정이었다.

그러던 중 1952년 9월 21일 18시경, 북한군은 3시간에 걸쳐 854고지와 812고지를 향해 포격을 가했다. 21시부터는 2개 대대가 812고지를, 22시 40분에는 1개 연대가 854고지를 공격하면서 약 5시간 동안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705고지는 854고지에서 약 1km 떨어진 곳으로, 최병익이 이끄는 제3소대는 854고지와 705고지 사이의 계곡을 바라보는 위치를 맡고 있었다. 북한군 2개 중대가 공격을 개시하면서 중과부적에 몰린 최병익 중위와 소대원들은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전투가 격화되면서 밤 12시경 제2분대가 위기에 처하자, 최병익은 소대원 3명을 이끌고 제2분대 진지로 달려가 "소대장이 여기 왔다!"라고 외치며 소대원들을 독려하며 싸웠다. 그러나 적이 진지 우측으로 침투했고, 최병익은 적이 던진 수류탄에 맞아 전사하였다. 소대장의 희생을 목격한 소대원들은 "소대장님의 원수를 갚자!"라며 결연한 의지를 다졌고, 끝까지 싸워 북한군을 705고지에서 완전히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그의 희생과 공적을 기리기 위해 중위로 1계급 특진과 함께 충무무공훈장(1952년 11월 15일)을 추서하였다. 2010년 갑종장교전우회는 육군보병학교 동춘관에 최병익 중위를 포함한 갑종장교 출신 전쟁영웅 9인의 흉상과 소개비를 세웠으며, 2020년 10월 교내 호국공원으로 이전하여 그의 공적을 기리고 있다. 또한 2024년, 대한민국 국가보훈부는 그를 "9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하였다.

3. 공훈

충무무공훈장(1952년 11월 15일, 사후 추서)
국가보훈부 이달의 6.25전쟁영웅(2024년 9월)

4. 참고 자료

《한국의 전쟁영웅들》, 군사연구실(1992)
대한민국 국가보훈부, "6.25 전쟁영웅 최병익 육군 중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