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벌에 풍년이 왔네 Rich Harvest Come to the Chŏngsan Plain | |
창작 시기 | 1973년 |
작곡 | 김옥성 (1910~1956) |
작사 | 김상호 |
편곡 | 김영규 (1927~1989) |
편제 | 부분 배합관현악 (저대, 꽹과리, 단소, 개량 새납[1], 징 포함) |
1. 개요
1960년대에 만들어진 집단 창작 음악극인 '청산리[2] 사람들'에서 1960년에 북한 인민예술가 김옥성이 작곡한 『관현악과 합창 - “청산리 벌에 풍년이 왔네”』[3]를 북한 공훈예술가 김영규가 합창 대목을 민요 풍년가를 기반으로 하여 관현악으로 형상화한 작품.2. 상세
이 곡의 원곡은 풍년이 수령님, 조선로동당 은덕[4] 이라는 가사 때문에 한국에서는 공연과 음반 발매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외국 공연에서는 조선로동당 대신 조상님의 은덕이라는 내용으로 바꾸어서 부른다. 그리고 관현악 편곡의 경우 순수 기악 작품이여서 2000년에 있었던 조선국립교향악단 서울 단독공연에서 연주되었다.3. 창작 과정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의 오케스트라 판 창작 과정은 당시 문학예술 부분을 지도하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아이디어 였다고 한다.하지만 당시 창작가들은 이 곡의 관현악 형상을 어려워 했다고 한다.
초기에는 원곡에서 합창만 빼놓고 반주만 가지고 관현악을 하는 것과 같았다고 하며,악단의 악사와 지휘자들은 원곡에서 가사의 도움도 없이 순수 기악적인 수단으로 원래 작품이 가지고 있던 음악적 표현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들로 당시 창작가들도 처음에는 주저 하였다고 한다. 사실 곡은 성악적인 수단으로서 효과를 낼 수 있어도 관현악 편곡 연주로서는 승산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고 한다.
이 관현악 판의 창작 과정에서 여러번 악기를 바꾸기도 했었고, 여러 시행 착오가 있었기 때문에, 당시의 주민들, 악단 악사들 등의 여러 의견을 수렴한 결과 현재의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가 탄생한 것이다.
4. 특징
이 곡의 특징으로는 휘모리 장단의 경쾌하고 역동적인 선율과 함께 변화무쌍한 전조가 돋보이는 곡이며, 청산리 농민들의 생활 모습과 풍작을 향한 농민들의 분주한 모습을 약동적인 휘모리장단으로 전개하고 있으며 풍년을 이룩한 청산리 사람들의 기쁨과 환희의 감정을 약동적이며 경축적인 민족적 선율에 담아 부각 시키고 확대,발전 시킴으로서 현 시대 사람들의 전투적인 기상과 혁명적 낙관주의를 훌륭히 형상하고 있다.원곡의 특성을 관현악적으로 훌륭하게 재현함으로서 북한 관현악 발전에 커다란 기여를 한 작품으로, 남한에서도 훌륭한 곡으로 인정받은 관현악 작품이다.
4.1. 악기 편성
꽹과리와 징, 장새납이 같이 편성된 죽관악기,민속 타악기의 추가 편성의 부분 배합관현악 편제의 곡으로,중간부에서 농악 풍으로 솔로 연주를 펼치는 장새납 주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4.2. 한국에서는?
남한에서는 조선국립교향악단 서울 공연에서 최초로 신민요 풍년이 왔네 주제곡으로 선 보여 졌으며, 이후 통일부와 국가정보원의 자문을 통해 2000년도에 당시 조선국립교향악단 수석 지휘자이자 현재 창작 창조부장으로 은퇴 후 사망한 지휘자인 김병화에게 지휘를 배운 서울특별시 청소년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 박태영(현 수원대학교 교수)이 김병화에게 받아 소장한 악보에 따라서 서울시 유스 오케스트라[5]를 이끌고 직접 지휘를 하였으며,처음 연주시 개량된 새납을 구할 수가 없기때문에 서울시 국악관현악단 단원이 연주하는 개량 새납과 비슷한 개량하기 전의 국악기인 태평소로 연주했었다.[6] 이후 한국의 여러 관현악단들도 자주 무대에 올리고 있으며 역대 한국에서 합법적으로 공연이 가능한 북한 창작 관현악곡 중에서 가장 히트를 친 관현악 곡에 속한다.이후 북한 장새납[7] 주자인 최영덕이 한국을 방문하여, 통일부의 허가를 받아서, 장새납 독주곡집 열풍 정발 CD를 발매하였으며, 해당 음반에 이 곡이 수록이 되어있다.
4.3. 그 외의 경우
이 곡은 취주악으로도 편곡되어 재일 조선인 취주악단에서도 연주하는데, 개량 새납 부분을 색소폰이나 클라리넷이 대신 연주하기도 한다.4.4. 곡 구성
이 곡의 구성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하자면 두개의 주제에 기초한 3부분 형식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4.4.1. 시작부
처음에 현악기의 조용한 떨림소리(Tremor)와 하프의 부드러운 분산화(arpeggio)음을 타고 흘러 나오는 호른소리는 이른 아침의 농촌의 풍경을 하나의 화폭같이 그려내고 있다. 이슬채이는 논둑길을 나서서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는 농촌의 풍경을 묘사를 하였다.4.4.2. 서주부
풀룻 독주의 낭랑하고 유창한 선율로 된 서주부에서는 농민들이, 풍년을 이룩한 넓은 전야에서 벼 이삭이 바람결에 춤추는 평야를 가슴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는 듯한 정서를 표현한다.4.4.3. 제시부
풍년을 이룩한 농민들의 긍지와 환희를 폭발과도 같이 격조 높이 올려주는것과 함께 흥겨운 농악 가락에 기초하여 천리마시대 사람들의 열정과 창조적인 노동의 기쁨을 담아낸다. 또 민요 풍년가의 선율을 차용하여 발전시킴으로서 풍년의 기쁨으로 들끓는 농민들의 격동적인 생활 감정을 더욱 생동하게 보여주고 있다.4.4.4. 발전부
제시부에 비해서 크지 않고 간결하게 구성이 되어있다. 선율 진행은 청산리 정신과 청산리 방법이 구현되어 이루는 곳마다 풍년이 이룩된 북한의 농촌의 현실을 보여주며, 또 수확의 기쁨을 표현한 개량 새납을 비롯한 독주 악기[8]의 힘찬 솔로 독주로 농악을 본색대로 올려 줌으로서 흥겹고 낙천적인 정서를 더욱 돋구어 주어 농악무를 추면서 수확물을 분배하는 분배장의 전경을 연상하게 한다.4.4.5. 재현부
우리 후손들이 풍년을 이룩하게 해준 조상님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을 보여주고 있다.4.4.6. 총결부
주제의 모든 선율이 전 악기들이 가세하여 힘차고 웅장하게 웅장하게 끝마친다.5. 기타
- 북한에서 실력있고 유능한 명 지휘자를 찾으려면 이 곡을 지휘한 지휘자를 찾는것이 가장 빠르다고 여겨진다고 한다. 2000년대 이후에 이 곡을 지휘한 북한의 지휘자는 조선국립교향악단 차석 지휘자인 방철진, 부수석 지휘자인 채주혁, 수석 지휘자이자 조선인민군공훈국가합창단 수석 지휘자인 장룡식, 전임 수석 지휘자이자 창작 창조부장 김병화 및 은하수관현악단 리명일, 전 윤이상관현악단 수석 지휘자인 김호윤이 이 곡을 지휘하였다.
- 조선국립교향악단 전직 창작 창조부장인 김병화는“‘청산벌’을 맡는다는 것은 북한 음악계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을만큼 주목을 받는다”고 큰 의미를 부여한다. 아울러 김병화는 “젊은 지휘자들의 새로운 시도도 시대감각의 변화로 좋게 받아들여야 한드다”면서 “낡은 음색에 고집하는 것을 전통이라고 하지 않는다”고 유연한 태도를 보여준다.
- 윤이상관현악단 전임 수석 지휘자인 김호윤 지휘자는 “앞선 지휘자들이 완벽하게 만들어 놓았지만 개인적으로 속도에서 발전 여지가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속도를 당기니까 더욱 흥취가 돋구어 졌다”라고 자신의 관점을 밝혔다.
6. 관련 곡 영상
- 가사가 없는 기악 작품(경음악.관현악 등)의 경우에만 추가 할 것.
6.1. 조선국립교향악단
1 - 북한 조선국립교향악단 수석 지휘자 겸 조선인민군공훈국가합창단 단장 겸 수석 지휘자 장룡식 지휘2 - 북한 조선국립교향악단 부수석 지휘자 채주혁 지휘
3 -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베르디 극장 오케스트라 지휘자 마르코 보에미 지휘[9]
4 - 러시아인 지휘자 지휘. 봄 친선예술축전이라는 행사에서 지휘. 공연했다.
5 - 북한 조선국립교향악단 전임 수석 지휘자 겸 전직 창작 창조부장 김병화 지휘, 조선국립교향악단 창립 70주년 기념음악회 중에서.
6.2. 한국 악단
6 - 국립국악관현악단 상임지휘자 조정수 지휘, 국립국악관현악단 연주[10]7 - 평송 청소년 오케스트라 지휘자 홍순구 지휘, 평송 청소년 오케스트라 연주.[11]
8 - 서울 홍익대학교 오케스트라 지휘자 정정훈 지휘. 홍익대학교 오케스트라 연주. 태평소 독주[12]
9 -경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 수원대 교수 박태영 지휘. 고령우 꽹과리 & 태평소 독주.
6.3. 재일 악단
10 - 재일 조선인 취주악단의 취주악 버전 영상 이외에도 타 취주악 버전은 유튜브 찾으면 나오니까 그쪽을 참조할 것. 개량 새납의 독주는 색소폰으로 독주를 하는 경우가 많다.11 - 오사카 조선초급학교(초등학교) 학예회 장면 영상. 이쪽은 악기 구성이 아코디언 리코더 등으로 일반적인 오케스트라가 아닌 전혀 다른 구성을 취하고 있으며 장새납 독주부분은 다른 악기로 대신한다.
6.4. 은하수관현악단
12 - 북한 은하수관현악단 수석 지휘자 리명일 지휘, 은하수관현악단 연주.[13]6.5. 뉴욕 우륵 교향악단[14]
13 - 뉴욕 우륵 교향악단 지휘자 리준무 지휘. 이쪽은 새납 부분을 트럼펫으로 대신했다.6.6. 모란봉악단
14 - 모란봉악단 경음악 방식대로 편곡.6.7. 조선인민군협주단
15 - 기존의 관현악을 관현악 경주곡 버전으로 편곡했다. 기존 개량 새납을 장새납으로 바꾸었다. 지휘는 조선국립교향악단 & 조선인민군공훈국가합창단 수석 지휘자이자 조선인민군공훈국가합창단 단장인 장룡식이 지휘했다.7. 관련 문서
[1] 한국은 태평소로 대신한다.[2] “청산리”는 평안남도 강서군에 있는 마을이며, 1960년대에 북한의 농업 부흥 정책 운동에 있어 이곳이 가장 모범지역으로 선정되면서 유명해진 곳이다. 김일성이 청산리 방법을 제시한 곳으로도 유명하다.[3] 원곡은 혼성합창과 아동합창, 2관 편성 관현악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작품이라고 한다.[4] 북한 조선중앙TV의 문예 상식에 따르면 실제 원곡 3절 마지막 부분에 나와있다고 한다.[5] 2000년 당시에는 서울시 청소년 교향악단 이였다.[6] 관련 기사가 여기 있다.[7] 원래 새납을 길게 늘려 개량한 악기[8] 한국에서는 거의 불확실하다고 봐야한다. 사실상 개량 새납을 구할 수가 없고, 이를 구할 방법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 곡을 연주할 시에는 모양과 소리가 비슷한 국악기인 태평소가 새납을 대신하여 연주한다. 그러나 간혹 드물게 성남시향처럼 장새납을 구해서 연주하는 악단도 있다. 취주악 버전의 경우에는 색소폰이나 다른 악기 구성을 통해 연주하기도 하며 악단마다 차이가 있다. 뉴욕 우륵 교향악단의 경우 트럼펫으로 연주하는 등의 행보를 보여준다.[9] 이쪽은 최초로 외국인 지휘자가 이 곡을 조선국립교향악단을 지휘.공연한 첫 사례이다.[10] 한국 국악기 편성으로 이루어진 국악관현악으로 연주가 가능하게 편곡하였다.[11] 이쪽은 새납(태평소) 독주가 빠져있다.[12] 장새납 연주자를 구할 수 없어 태평소 연주자가 대신 연주했다.[13] 이쪽은 3분 이내로 단축한 축약버전이다.[14] 친북(親北) 성향의 교향악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