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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1 23:12:25

천세봉



파일:천세봉.jpg

1. 개요2. 생애3. 장의위원회 구성4.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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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한의 작가, 정치인.

2. 생애

1915년 2월 10일에 함경남도 고원군 덕지리의 빈농가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집안사정 때문에 보통학교 졸업으로 정식교육을 끝내고 집안의 농사일을 도우며 독학, 야학을 열어 문맹퇴치 운동을 하였으며 고원읍 운송점 탁송원으로 일하기도 하였다.

해방 후 고원군 자치위원회 재정과장, 고원군 당위원회 문화부장 등으로 사업하였으나 병으로 낙향하여 창작활동에 전념하였다.북조선문학예술총련맹에 가입, 처음에는 장편희곡 <고향의 인상>을 섰으나 연출가의 거부로 인해 공연이 취소되자 희곡에서 소설로 전향하여 1946년 함남일보에 제출한 첫 작품 <철로>가 당선되었다. 이후 새로운 맥박(1947), 5월(1947), 땅의 서곡(1948), 호랑영감(1948), 소낙비(1949), 농부(1949), 푸른산맥(1949)를 연달아 발표하였다.

소련 유학을 갔다가 6.25 전쟁 발발 이후 귀국했으며 북한에선 그가 고원인민유격대 지휘관으로 활동했다고 주장한다. 전쟁 중에도 고향의 아들, 싸우는 마을 사람들 등을 발표하였다. 북한의 농업협동화를 바탕으로 <석개울의 새봄>을 집필했으며 대단한 호평을 받아 1959년 조선작가동맹중앙위원회 소설분과위원장에 임명, 1962년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장, 1964년 12월 문예총 중앙위원장에 임명된다. 참고로 북한에서는 석개울의 새봄이 김정일이 와병 중인 천세봉을 잘 지도해서 탄생한 작품이라고 이빨을 까고 있다. 1960년대에도 대하는 흐른다, 고난의 역사 등을 연달아 집필했다. 하지만 1966년, 원산 총파업부터 해방 시기를 다룬 1966년작 <안개 흐르는 새 언덕>이 평단의 호평을 받았음에도 이 시기는 김일성을 숭상하는 주체문학이 대세가 되던 시점이라서 1967년 1월 10일, 김일성은 안개 흐르는 새 언덕의 영화 시사회에 참석한 이후 등장인물인 민족주의자의 딸 순영이 토벌대 대장의 아내로 타락하는 묘사에 대해서 아주 큰 잘못이라고 비판하였으며 노동계급을 조직화된 강철대오가 아니라 깡패에 주정뱅이처럼 묘사한 것도 오류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안개 흐르는 새 언덕을 호평했던 평론가 안함광은 커리어가 끝장나기도 했다. 북한에서도 천세봉의 작가 이력을 상세히 소개하면서도 김일성에게 욕먹은 안개 흐르는 새봄은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천세봉은 숙청을 면하였고 계속하여 작품활동에 매진, 1970년 11월, 5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선출되었으며 1972년 12월, 5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및 상설회의 의원에 선출되었다. 1972년 김일성상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총서 불멸의 력사 시리즈 혁명의 려명(1973), 은하수(1982), 조선의 봄(1991) 등을 발표하고 김정숙 우상화 소설인 충성의 한길 1부 유격구의 기수(1975), 2부 사령부로 가는 길(1979) 등을 발표하면서 김일성 우상화 사업에 적극 매진하여 북한의 대표적 작가 한 사람으로 자리잡게 된다. 1976년 9월, 최용건 장의위원을 지냈다. 1977년 12월, 6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및 상설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으며 1980년 10월, 6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승진하였다. 1980년, 김일성 우상화의 절정인 소설 <축원>을 발표하였다.

1982년 2월, 7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및 상설회의 의원에 재선되었으며 1982년 3월, 전창철 장의위원, 1983년 1월, 강량욱 장의위원, 1984년 11월, 김만금 장의위원을 지냈다. 1985년 4월, '당의 로선과 정책을 옹호관철하며 전당과 온 사회에 주체의 사상체계를 철저히 세우고 사회주의 경제, 문화, 국방 건설을 힘있게 다그치며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위업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 크게 공헌한 당, 국가, 경제, 문화 기관 책임일군들과 조선인민군 지휘간부'로 선정되어 김일성훈장을 받았다.

죽을 때까지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장으로 사업하다가 1986년 4월 18일 2시에 71세를 일기로 숙환으로 사망하였다. 당중앙위원회,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회는 연명으로 부고를 발표, "천세봉동지는 우리 당과 우리 인민의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를 높이 받들고 사회주의문학예술발전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사업하였다. (...) 천세봉동지는 생명의 마지막 순간까지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확고히 세우고 당과 수령에게 무한히 충실하였다."라고 좋게 말해주었다. 후임 작가동맹 중앙위원장에는 석윤기가 임명되었다.

이후 시신은 애국렬사릉에 작가동맹 중앙위원장 직함으로 안장되었다. 사후 1986년도 로터스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2023년 8월 21일자 로동신문 충신 특집 코너에서 천세봉의 삶에 대해서 대략적으로 다뤘다.

3. 장의위원회 구성

4.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