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출생 | 1890년 1월 6일 |
경상도 청송도호부 부동면 상삼의동 (현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면 상의리 888번지[1]) | |
사망 | 1968년 3월 4일[2] (향년 78세) |
경상북도 청송군 | |
본관 | 인천 채씨[3] |
창씨명 | 가메모토 쥬라쿠(龜本重洛) |
자 | 주경(周景) |
호 | 좌계(坐溪) |
상훈 | 대통령표창 추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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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2. 생애
1890년 1월 6일 경상도 청송도호부 부동면 상삼의동(현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면 상의리 888번지)에서 아버지 채진규(蔡鎭圭, 1858 ~ 1907)와 어머니 경주 이씨 이월성(李月城, 1859 ~ 1895. 5. 9) 사이에서 3남 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출생 이후 17촌 지간의 족숙(族叔) 채진원(蔡鎭元, 1849 ~ 1936. 7. 2)에 입양되었다.1920년 음력 3월 경상북도 청송군에서 조선독립단원 유연복의 서간도 귀환 자금 모집에 응하여 자금을 지원하였으나, 이후 유연복과 공모한 정황이 일본 제국 경찰에 탐지되어 곧 체포되었다. 1920년 9월 9일 이른바 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뒤 1920년 11월 3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예심이 종결되어 이른바 보안법 위반 혐의로 대구지방법원 합의부 공판에 회부되었다. 그리고 같은 날 면소 판결을 받고 곧 출옥했다.
출옥 후에는 은거하다가 1968년 3월 4일 경상북도 청송군에서 사망했다.
2020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