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SBS 뉴스에 나온 시민 이재열씨의 인터뷰[1] 윤 일병 사건과 임병장 사건의 심각성과 국민이 군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확히 꼬집은 인터뷰[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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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28보병사단 의무병 살인사건의 2014년 8월 5일 제 1심 공개재판 당시 재판을 참관한 시민들 중 한 명인 이재열 씨가 SBS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발언에서 유래한 표현.[3]2. 설명
물론 뉴스 외에도 비슷한 논조의 발언은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나왔으며 사실 시기상으로 보면 이쪽이 먼저다.자식들을 군대로 보낸 부모들이 가지는 대한민국 국군에 강한 불신을 단적으로 나타내며 병영부조리를 한마디로 가장 잘 비판한 표현 중 하나이다.
제28보병사단 의무병 살인사건의 심각성과 대한민국 국민이 군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확히 꼬집은 표현으로, 이후 군대에서 여러 사건 사고들이 발생할 때마다 여러 곳에서 인용되어 많이 쓰이는 표현이 되었다.
인터뷰한 이씨 본인도 당시 나이가 40~50대로 추정되는데 소위 '쌍팔년도 시절의 군대'를 경험해 병영부조리에 익숙할 세대조차 꼬집은 문제라 더더욱 주목받았다. 이 즈음부터 전역 후 세대들의 '남자라면 그래도 군대는 한 번 가야지'라는 말이 사석에서 말을 꺼내기 힘들 정도로 사라졌으며 '합법적으로 보내지 않는 방법이 있다면 보내지 않겠다'라는 여론으로 바뀌었다.
같은 년도에 이렇게 큰 사고가 두개나 터지면서 이후로는 군 내에 환경을 어떻게든 개선하기 시작하게 된 원인이 되었고 현재는 어느 정도 잊어진 말이 되었으나 그렇게 개선을 해나감에도 여전히 좋지 않은 처우로 각종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이 이야기가 잊을 만하면 나오기도 한다.
2023년에 다른 원인으로 터진 해병대 제1사단 일병 사망 사고로 인하여 "열심히 하면 채상병"이라는 말이 추가되었고, 2024년에는 제12보병사단 훈련병 사망 사건이 발생하여 전국민이 분노했는데, 이 때 일부 네티즌들이 중대장 야전삽 폭행사건을 재발굴해 "참으면 박 훈련병, 못 참으면 정 상병"이라는 말도 나왔다.
3. 병영부조리 문제와 국방부·국가보훈부의 책임
"참으면 윤 일병, 못 참으면 임 병장"은 병영부조리로 인해 피해를 입은 군 장병들이 선택의 기로에 놓이는 상황을 풍자적으로 표현한 문구이다. 이는 병영부조리 문제를 방치하거나 적절히 해결하지 못하는 국방부와 국가보훈부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며, 군 내 부조리가 피해자들에게 강요된 침묵과 폭발적인 결과를 야기한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3.1. 국방부의 병영부조리 방치
- 국방부는 지속적으로 병영 내 가혹행위와 부조리를 근절하겠다고 공언했으나, 현장에서의 실질적인 변화는 미미하다.
- 피해를 입은 군 장병들이 제보를 하더라도 보복이나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으로 침묵을 강요받는 구조가 여전히 존재한다.
3.2. 국가보훈부의 사후 지원 미흡
- 국가보훈부는 병영부조리로 인해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입은 군인들에게 적절한 지원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 피해를 증명해야 하는 까다로운 절차와 소극적인 사후 관리는 피해자들이 공적 지원을 포기하게 만드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4. 관련 문서
- 국가보훈부
- 국가보훈부/문제점 및 논란
- 국방부 4행시 이벤트
- 대한민국 국군/문제점
- 대한민국 국군/사건 사고
- 대한민국 국방부/문제점
- 제28보병사단 의무병 살인사건
- 제22보병사단 총기난사 사건
- 대한민국의 병역의무/문제점
- 병영부조리/사례
- 부를 땐 국가의 아들, 다치면 느그 아들, 죽으면 누구세요?
[1] 조한진씨 뒤에 나오는 이씨는 되레 조씨의 거주지 경상남도 진주시의 동남 방언을 구사하고 조한진씨가 되려 이씨의 거주지 충청북도 충주시의 충청 방언을 구사하는데 방송국에서 실수로 바꿔 내보낸 것. 사진 속 인물은 충북 충주 거주하는 이씨가 맞고, 뒤에 나오는 인물이 경남 진주시에 거주하는 조씨이다.[2] 언론에서 인터뷰를 해서 유명해졌고 지금도 그의 발언이 캡쳐본으로 나돌고 있지만 발언 자체는 사건 발생 직후 네이버 뉴스 등에서 베스트 댓글로 이미 유명해진 말이었다.[3] 자막 오류로 다음 순서에 인터뷰를 한 시민과 이름이 바뀌었다. 이 발언을 한 당사자는 이재열 씨이고 다음 인터뷰한 사람의 이름이 조한진 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