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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5:55:40

CCM(음악)

찬양에서 넘어옴
1. 개요2. 역사
2.1. 지저스컬쳐2.2. 한국 CCM의 역사
2.2.1. 노문환 목사와 '늘노래 선교단'의 출현2.2.2. 극동방송 복음성가 경연대회2.2.3. 각 지역 찬양선교단의 활동2.2.4. CCM의 전성기와 기획사의 출현2.2.5. 워십의 출현과 CCM의 경과
3. 기타4. 관련 인물
4.1. 국내
4.1.1. 개신교4.1.2. 가톨릭
4.2. 국외
5. 논란
5.1. 가사에 대하여5.2. 곡조에 대하여
6. 둘러보기

1. 개요

Contemporary Christian Music (현대 기독교 음악)

1960년대부터 미국에서 일어나기 시작해 1970년대 이후 세계로 확산된 기독교 음악 또는 그러한 음악 운동을 통틀어 일컫는다. 가사에 기독교 믿음을 직간접적으로 담고 있는 현대 대중음악의 한 장르. 찬송가와 혼동하는 사람이 있는데 찬송가는 예배에 사용되는 전례용 음악이고, CCM은 전례에 사용하지 않고, 종교적 메시지를 담은 대중음악이다. 더 확실하게 정의하자면 '기독교적 세계관과 가치관을 가진 국내.외 대중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빌보드지는 크리스천 앨범/크리스천 송으로 분류하며, 그리고 라디오 앤드 레코드 지는 크리스천 AC(Adult Contemporary; 성인 현대곡), 크리스천 CHR(Contemporary Hit Radio: 현대곡 히트 라디오), 크리스천 록, 영감적인 곡(INSPO, Inspirational)으로 분류, iTunes 스토어, Spotify는 크리스천과 가스펠(Christian & Gospel) 장르로 분류한다.

한국에서는 역사가 길지 않고 시장이 크지 않기 때문에 아직 명확한 정의가 없다. 이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CCM과 '찬양'을 혼용한다. 대중음악의 형식을 취하면서도 내용으로 기독교(주로 개신교 계열)의 정신을 담아내는 모든 장르를 포괄하는 기독교 음악[1]으로 CCM을 정의한다. 일부 사람들은 CCM을 '현대의 찬송가'라는 좁은 의미로만 이해하나, 음악적으로 찬송가와 CCM은 장르 자체가 다르다. 찬송가는 바흐 코랄 등을 통해 만들어진 전통적인 화성의 교회 음악이나 유럽의 전통 민요 가락을 근간에 둔다. 19-20세기의 미국의 복음 성가들도 대부분 전통 화성에 맞게 편곡된 것들이라 CCM과는 근본부터 다르다.

한국에서는, 특히 한국 천주교에서는 개신교의 것만 CCM이라고 표현하는 경향도 있다. 가령 가톨릭 생활성가 중에서도 조금만 구성이 현란하고 빠른 곡이 있으면 "아 이건 CCM스럽네. 우리가 쓰긴 좀..." 정도의 말이 나온다[2]. 분명 용어의 원뜻에는 개신교만 지칭하는 의미가 없으나, 마치 '기독교'가 일부에서 개신교와 동의어처럼 쓰이듯 CCM이라는 용어에도 그런 경향이 있다. 이런 인식이 가톨릭 계열 CCM의 대중화를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2. 역사

2.1. 지저스컬쳐

1960년대 암울했던 미국에서 청년들을 중심으로 발생한 히피문화는 자유분방한 문화와 생활방식을 추구하였다. 그 매력에 급속도로 확산되었지만 미국 사회의 변화와 히피 문화 자체의 무질서함 등 다양한 이유로 쇠퇴할 때쯤, 그 히피문화에 대한 반동으로 1960년대 말에 발생한 예수운동(Jesus Movement)은, 히피들이 내세우던 철학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에 희망이 있음을 주장하며 다양한 방법으로 그 메시지를 전하려고 했다. 히피들이 록 음악에 자신들의 메시지를 담아서 전했던 것과 같이 자신들도 록 음악이나 팝 음악에 기독교적 메시지를 담아서 전파하기 시작했고, 이런 움직임은 지저스 뮤직(Jesus Music) 혹은 지저스 록(Jesus Rock)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그 즈음, 전통적인 음악만 연주하던 교회 안에서도 현대적인 음악을 수용하려는 움직임이 조금씩 생겨났고, 전술한 지저스 뮤직 운동과 융합되며 현대의 CCM과 같은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한편 가톨릭에서는 1960년대 중반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리고, 이를 통해 전례 개혁이 이루어진다. 여기서 CCM과 관련된 중요한 변화가 있으니, 첫째는 전례 때 모국어 사용을 허가한 것이고, 둘째는 대중 성가를 장려한 것이다. 이 분위기 속에서 미국에서는 통기타로 반주하면서 성가를 부르는 이른바 포크 성가(Folk Gospel)들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이런 흐름이 이어져 오늘날 중고등부나 청년 미사에서 밴드반주하며 봉헌하는 미사가 곳곳에서 나타난다.

2.2. 한국 CCM의 역사

한국의 CCM 역사는 자생한 복음성가로부터 출발하였다. 기록상으로는 1947년 순교자 유재헌 목사가 발간한 “복음성가” 가사집으로 한국 복음성가의 시초를 확인할 수 있다. 그 당시 대부분의 곡은 기존 찬송가의 곡조에 유재헌 목사가 가사를 다시 붙여 만든 곡들이 많다. 한국 교회에서 간혹 불리기도 하는 '주님과 못 바꾸네'[3]가 대표적 곡이다. 유재헌 목사의 복음성가는 많이 잊혀진 편이라 그가 설립한 대한수도원에서나 예수교장로회한국총공회 부산공회의 찬송가로 불리고 있다.예수교장로회한국총공회에서 사용하는 자체 찬송가에는 '신유찬송'[4], '낙심마라'[5], '믿음으로 살자'[6], '아멘'[7], '예수는 내 생명'[8], '임마누엘'[9], 즐겁게 복종하여라[10] 으로 총 7곡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기록상으로는 명확하게 남지 않았으나 순교자 손양원 목사의 '주님 고대가', 주기철 목사의 '영문 밖의 길'[11]. 이명직 목사의 '허사가'[12], 이명직 제자 이성봉 목사의 '인생 모경가'[13]도 한국 교회에서 간혹 들을 수 있는 초기 복음성가라 할 수 있다.

한국에는 1960~70년대에 폭발적으로 일어난 부흥운동과 결부되어 미국으로부터 가스펠(Gospel, 복음성가)이 유입되기 시작했는데, 미국 기독교 음악의 무게 중심이 가스펠 쪽에서 점점 CCM으로 옮겨져가면서 한국에도 미국의 CCM이 번안되어 들어오게 되었다. 이와 함께 박종호(朴鍾昊, 1962 ~ ), 송정미(Song Jungmee, 1967 ~ ), 시인과 촌장하덕규 등 복음성가 가수들과, '주찬양 선교단'을 통해 한국 CCM을 선도했다고 평가 받는 최덕신 등의 활약으로 한국의 개신교 문화에 CCM이 자리를 잡아갔으며, 특히 1980년대 이후 선교 단체 등에서 본격적인 예배의 형식으로 받아들이면서 한국 개신교회 전반에서 볼 수 있는 현상으로 자리잡았다.

한편 한국 가톨릭에서도 개신교의 영향을 받아 1970년대에 통기타로 반주하며 가요처럼 부르는 소위 '생활성가' 혹은 '복음성가'가 시작됐다. 이런 성가는 젊은층을 중심으로 퍼져나가 오늘날에는 꽤 많은 생활성가 가수(혹은 찬양사도)들이 활동하게 되었다. 생활성가라는 용어로 불려온 이 성가를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소속인 성음악분과(현재 성음악소위원회로 격상)에서 「한국 천주교 성음악지침서」를 발간하면서 CCM이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했다.
흔히 CCM이라고 하면 개신교 음악으로 대부분 인식하기 때문에 '가톨릭 CCM'이라는 명칭으로 사용하기도 하며 최근 들어 개신교에서는 CCM보다는 K-Gospel이라는 명칭이 더 쓰이기 시작한 듯 하다.

2.2.1. 노문환 목사와 '늘노래 선교단'의 출현

※ 여기서부터는 개신교 중심으로 서술함.

1970년대, 당시 유명 가수였던 노문환(1951 ~ )이 목회로 방향을 틀면서, 교회 내에서 부르는 찬양들이 보급되면서 교회 청년부 내에서 조금씩 새로운 찬양에 대한 열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마침 때를 같이하여 미국의 유명 찬양단체인 '마라나타 싱어즈'의 곡들이 번안되어 보급되면서 교회 내에 찬양에 대한 분위기가 조금씩 움트기 시작했다. 당시 활동했던 아티스트들은 노문환 목사와 장욱조 목사를 비롯하여 최미 사모 등이었고, 이들이 부르는 복음성가는 곧 일반 성도들에게도 조금씩 좋은 반응을 보이며 퍼지게 되었다.

2.2.2. 극동방송 복음성가 경연대회

1980년대, 극동방송에서 복음성가 경연대회를 개최하게 되면서 CCM은 본격적으로 교회 내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 대회에서 입상한 팀들은 곧 음반을 내면서 활동을 시작했고, 교회 내에서 이들의 곡들은 상당히 빠르게 퍼져나가게 되었다. 이 대회를 통하여 CCM 아티스트로 데뷔하게 된 사람들은 박종호, 최덕신(박종호의 곡 '내가 영으로'를 작곡해주었음), 송정미, '좋은 씨앗'의 이유정(송정미의 '오직 주만이'를 작곡해 주었음) 등 실질적으로 CCM 1세대라 불릴만한 사역자들이었다. 이들의 곡은 찬송가나 성가곡 일색의 교회, 특히 청년부와 학생회를 중심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당시 청년부 집회나 학생부 주말 모임 등에서는 기타 하나를 들고 박수 치면서 찬양을 하는 것이 흔한 풍경이었다. 이 때, 대회에 입상한 곡들이 찬양집에 수록되거나, 대회 입상자들이 음반 발매와 더불어 자신들의 곡을 피아노 악보나 단선으로 실은 악보집을 함께 발매하는 방식으로 교회 내에 이들의 곡이 상당히 빨리 퍼져나가고 정착되었다. 이는 미국에서 번안된 수입 찬양들을 국산 찬양으로 대체하는 효과도 있었다.
2007 제20회 극동방송 전국복음성가경연대회 대상으로는 오장한 전도사의 성악과 CCM의 크로스오버도 주목할만하다 (토브기획사)

2.2.3. 각 지역 찬양선교단의 활동

뿐만 아니라 이 시기에는 각 지역에서 활동하는 찬양선교단이 CCM의 보급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서울에서는 예수전도단의 화요 찬양집회가 유명했는데, 특별히 예수전도단 화요모임은 찬양사역, 혹은 CCM 가수들을 많이 배출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최인혁과 박종호이며, 2000년대에는 윤주형 목사가 이름을 알렸다. 2000년대부터는 캠퍼스워십 팀의 심형진 간사, 마커스워십의 소진영, 심종호 간사가 대표적인 찬양선교단이다.

예수전도단과 함께 쌍벽을 이루던 팀은 온누리교회에서 후원하는 '올네이션스 경배와 찬양'이었는데, 이 팀의 인도자인 '하 스데반' 선교사는 형인 하용조 목사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한국교회 내에 '경배와 찬양'으로 익숙한 찬양예배를 보급하며 교회의 예배 분위기를 이끌었다. 이 팀의 주 활동지역은 서울이었으나, 전국 투어, 혹은 지방 훈련 등도 활발히 진행했다.

또한, 부산 경남 지역에서 활동하던 찬양팀 중에서 '보이시스'라는 팀을 결성하고 CCM 앨범을 발매한 케이스도 있었고, 대구 지역에서는 '찬미워십'이 유명했다. 찬미워십은 교회에서 사용하는 악보집 중 가장 인지도가 높은 '찬미예수'의 발행인인 최용덕 간사가 주축이 되었던 팀이었다. 특별히 찬미예수는 당시 교회에서 많이 부르는 곡들을 수록하여 교회에 확산, 보급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최용덕 간사 특유의 손글씨와 손으로 직접 그린 악보는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데, 디지털 조판으로 넘어와서도 이 특유의 악보와 손글씨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찬미워십 출신 사역자로는 '소망의바다'의 민호기 목사가 대표적이며, 그는 현재 찬미워십의 리더이기도 하다.

특정지역은 아니지만, 찬양선교단체의 활동을 빼놓을 수 없다. 가장 대표적인 팀이 '주찬양 선교단'과 '컨티넨탈 싱어즈'이다.

1. 주찬양 선교단은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활동하던 팀으로, 사실상 한국 CCM의 산실 역할을 했던 팀이었다. 최덕신이 팀을 이끌었으며, 자신의 자작곡을 중심으로 해외 번안곡, 혹은 단원들의 다른 곡들로 앨범을 구성하였고, 곡들의 퀄리티도 꽤 높다. 90년대 교회 청년부에서 자주 불렀던 곡들이 주찬양 앨범에 다수 수록되어 있었고, 성가대에서도 자주 주찬양의 악보로 찬양했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 석연치 않은 이유로 팀이 해체되었는데, 이는 하단 각중에서 설명된 최덕신의 스캔들과 무관하지 않다고 한다. 지금까지 활동했다 하더라도 예전처럼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음원 사이트에 주찬양의 앨범 전체가 서비스되어 있다. 지금 듣기에는 상당히 옛스러운 사운드이지만, 당시(80~90년대)에는 상당히 세련된 곡들이었다. 이곳 출신의 대표적인 사역자가 바로 강명식. 실제로도 곡을 몇 곡 쓰기도 했고, 10집과 11집에서는 듀엣, 혹은 솔로로 한 곡씩을 불렀다.

2. 한국컨티넨탈싱어즈는 미국에 본부를 두고 있다. 미국의 '국제 컨티넨탈 싱어즈'에서 곡이 나오면, 각 나라에 있는 일종의 지부에서 이 곡을 번안하고, 곡에 맞춰서 만들어진 댄스를 함께 익히면서 그 나라의 말로 활동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한국컨티넨탈싱어즈는 전국투어 등을 통하여 많은 교회에 충격을 주었다. 당시 교회에서는 보기 힘든 수준 높은 안무와 곡들로 "아! 교회 안에서도 저런 찬양이 가능하구나!"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이 팀에서도 당대 CCM계를 이끌어갔던 사역자들이 많이 배출되었는데,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김명식(단장)이다. 그 외에도 여성듀오 '창문'의 박재옥, 디사이플스의 리더였던 천관웅 목사 등이 컨티넨탈 출신이다.

이렇게 각 지역에서도 찬양집회가 활성화 되면서 CCM은 전성기를 맞게 된다. 교회에서도 90년대 중반까지 이어지던 "교회 내에 드럼과 전자악기를 놓는 것이 합당한가?"라는 논쟁은 대개 "괜찮다."라는 것으로 정리되는 분위기였다. 단, 신학교들은 예외였는데, 대표적인 보수교단 신학교인 총신대학교에서는 90년대 후반에서야 밴드에 대한 거부감이 공식적으로 사라졌으며, 부산의 고신대학교에서는 2000년대 초중반까지도 상당히 조심스러웠다고 한다.

2.2.4. CCM의 전성기와 기획사의 출현

이렇게 CCM이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이를 뒷받침할 조직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러면서 자연스럽게 기획사가 출현하게 되었고, CCM 기획사에서는 음반을 제작하고, 녹음실을 운영하며, 각종 CCM 아티스트들의 활동(주로 교회 내의 찬양집회 초청) 스케줄을 관리하고 홍보하는 등의 활동을 담당하게 되었다. 또한 지속적으로 신인을 발굴하는 작업도 이어졌는데, 대표적인 기획사가 최인혁의 다솔 기획, 김명식, 한국컨티넨탈싱어즈, 좋은씨앗 등의 소속된 푸른 사람들, 그리고 소리엘과 옹기장이,다윗과 요나단등이 주로 활동한 예문기획 등이 있었다.

CBS를 비롯한 기독교 방송에서도 CCM이 하나의 정규 컨텐츠가 되었다. 당시 CBS에서는 소리엘이 진행하는 '사랑의 노래, 평화의 노래'가 인기를 끌었고, 지금은 일반 라디오방송이지만, 한때 CCM 전문 방송으로 진행되던 꿈과 음악사이에도 유명했다. 특히 진행자인 최인혁은, 비록 특정인을 흉내내는 것은 아니지만, 혼자서 일인 다역으로 연기도 하는 등 상당히 재치있는 입담과 성대모사를 선보였다. 일요일마다 진행하던 CCM 차트 등의 코너는 꽤 인기였다. 당시 CBS는 표준FM이 없었을 때였다. FM은 93.9 하나였기에 꿈.음은 AM으로 나갔던 시절이었다. 또한 CBS FM에서는 하덕규가 진행하는 CCM 캠프를 통하여 해외 CCM이 많이 소개되던 때였다. 즉, CCM계의 음캠 역할을 하던 방송이었다는 말이다. 이렇게 CCM은 청년층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었다. 한국 CCM계의 전성기라 할 때가 바로 이 때이다.

2.2.5. 워십의 출현과 CCM의 경과

1990년대를 정점으로 전성기를 맞이하던 CCM은 2000년대에 들어서 전체 음반시장이 급속도로 냉각화되면서 동반 몰락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몇 가지 원인이 있는데, 우선 새롭게 창작된 곡으로 앨범이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컴필레이션이나 현장 실황을 담은 앨범이 출현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CCM은 교회에서 소비되는 특성상 신곡보다는 오래된 곡이 더 큰 사랑을 받는다. 마치 트로트 가수가 한 곡으로 몇 년간 행사를 뛰는 것처럼, CCM은 한 곡이 10년, 혹은 20년 이상 교회에서 불린다는 것이 특징인데, 컴필레이션 앨범이 등장한다면 신곡이 담긴 낯선 음반보다는 더 익숙한 음반을 사게 되는 것은 당연한 현상. 당시 '트리니티'라는 이름의 컴필레이션이 상당한 화제가 되었는데, 이 음반이 등장하면서 우후죽순 격으로 컴필레이션 음반이 등장했고, CCM은 서서히 몰락하기 시작했다.

또한, 당대의 트렌드가 '워십'으로 바뀌던 것도 한몫 했다. 2000년, 예수전도단 화요모임 예배실황 앨범이 발매되면서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되었는데, 비슷한 시기에 이러한 예배앨범들이 등장하면서 가요와 비슷한 느낌의 CCM보다는 예배음악이 좀 더 선호되기 시작한 것이다. 워십곡은 특성상 특정한 가수만 부를 수가 없고, 예배팀의 편곡이 가수보다 좀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이런 와중에 시장의 흐름이 워십 음악으로 넘어가게 됐다. 음악 사이트 중 멜론지니뮤직의 장르에서 CCM의 차트 100곡 중 70% 이상이 제이어스, 마커스 워십, 어노인팅, 위러브이다. 이 네 단체의 공통점은 주로 스튜디오에서 녹음하지 않고 예배실황을 앨범으로 내는 단체들이라는 것이다. 해외도 비슷하다. 미국의 유명 아티스트인 마이클 휘태커 스미스(Michael Whitaker Smith, 1957 ~ )도 2000년대 초중반부터 조금씩 예배 인도자로 포지션을 바꾸는 모습이 관찰되고 있다. 그러나 그는 CCM 아티스트답게 여전히 활발한 음반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미국은 기독교문화가 뿌리깊이 자리잡고 있기에 우리나라와는 달리 음반활동에 대한 수요도 높고, CCM 아티스트를 위한 시상식인 도브상(Dove Award)도 개최된다. 우리나라와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호주의 유명한 찬양팀인 힐송 교회(Hillsong Church)의 곡이 소개되면서 사람들의 관심 역시 이쪽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 등장했던 CCM 아티스트들의 색깔 문제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다. 1세대 사역자들과 영성, 음반의 흐름 등 여러 부분에서 특별한 차별점을 보이지 못했고, 일부 대중들은 "혹시 가수 되고 싶은데, 못해서 이쪽으로 나온거 아니야?"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대중의 오해와 편견 역시 신인들이 자리를 잡지 못하는 데 한몫 했던 것이다.

또한 한국교회 특유의 문화가 이들의 발목을 잡았다. 행사에서 제법 여유있는 페이를 받을 수 있는 가수들과 달리 CCM 아티스트들은 그들의 활동이 사역이라는 이름 하에 헌신을 강요받는다. 자연스레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어디서 감히 돈을 받아?"라는 소리를 들으며, 교회에서는 소정의 사례비를 받지 못하거나 사례를 받아도 이를 교회에 도로 헌금한다. 최근에는 조금씩 개선되는 분위기이지만, 아직도 교회에서는 CCM 아티스트들에게 인색하다. 당연히 이 활동을 생업으로 삼고 여기에 인생을 거는 사람들이 줄어들 수밖에. 최근 음반을 발매하는 CCM 아티스트들은 대개 교회에서 예배인도자로 활동하고 있거나, 혹은 부목사로 교구 등의 사역을 하고 있는 목회자들이다. 혹은 실용음악학원 강사나 혹은 음악과 전혀 상관없는 직종을 병행하는 이들도 많다. 이권희, 손경민처럼 인정받는 유명 CCM 작곡가겸 프로듀서도 있으나 이런 사람들은 많지 않다.

무엇보다 2000년대 초까지 대세였던 신사도 운동등의 각종 부흥운동에 대한 이단성 논란이 불거지면서 CCM도 교리적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아래의 '논란' 항목 참고)

이런 여러 악재들이 겹쳤고, MP3로 대표되는 디지털 음원의 출현으로 인해 CD는 더 이상 잘 팔리지 않게 되었다. 일반 가요계에서도 이러니 이보다 훨씬 시장이 적은 CCM은 더 말해 무엇하랴. 결국 200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음반시장의 불황은 CCM계에는 초대형 악재가 되었고, 위의 몇 가지 요소와 더불어 CCM 시장은 침체되었다. 이제는 MP3 음원 시장이 형성되어 있으나 판매량은 그다지 높지 않은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는 Youtube의 활성화로 인해 CCM이 인기를 다시 회복하게 되었다. 2023년 현재 CCM은 Youtube를 통해 확산되는 것으로 알려지게 될 정도다. 많은 영상들이 제작 게재되고 있으며, 수요 역시 엄청나게 늘어난 상황이다. 새로운 예배 스타일을 선호하는 교회들에서는 예배 때 찬송가 보다 CCM을 더 많이 부르게 되었다.

3. 기타

CCM은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매우 희박하다. 저작권을 무시한 악보집도 쉽게 떠돌고 그 저작권을 찾기 위해 저작권을 주장하면 '주님을 찬양하는데 개인의 이익을 취하다니!'라는 투의 비난이나 '은혜롭게 이해해주세요' 같은 발암발언도 들을수 있다. 사실 십계명을 보면 알겠지만 저작권 안 지키는 것도 이웃의 물건을 탐내지 말라고 한 성경에 어긋나는 행동이고, 실제로도 한국과 달리 미국 등 외국의 찬송가나 복음성가 책들을 보면 저작권이 만료되지 않은 곡의 악보 밑에 조그맣게 저작권이 있음을 곡마다 일일이 명시해놓았다. 한국 가톨릭의 성가는 아예 저작권 문제 때문에 수십 곡이 삭제되었다. 하지만 한국 천주교에서는 개신교의 CCM을 저작권 허가없이 생활성가 음반에 넣는 사례가 종종 지적된다. 지금 당장 자기가 알고 있는 CCM의 제목을 검색해보자. 수십 수백 개의 악보 게시물들이 화면을 채울 것이다. 거의 대부분 크리스천들이 운영하는 블로그 혹은 교회 카페다. 유튜브도 마찬가지로, 유명한 CCM이라면 영상이 백 단위로 나온다.

따라서 CCM을 전업으로 삼는 아티스트들은 이런 부실한 저작권 인식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리고 지역교회 등지에서 공연 요청을 받아도 비슷한 분위기 때문에 적정선의 페이를 받기 힘들다. 비슷한 인지도의 대중가수들이 받는 페이의 절반도 안되는 페이를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교회나 CCM 단체에서 주최하는 공연에 가보면 뒷자리에서 어김없이 CD를 판매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 CCM 아티스트들이 돈독이 올라 CD를 있는 대로 파는 것이 아니라 CCM 공연만 해서는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어서다.

악기를 연주하는 CCM밴드도 '봉사'를 강요받는 등 정당한 보수를 받기 힘들다. 그래서 부업으로 상업음악의 세션 연주를 하며 공연을 뛰거나 하는 활동을 한다. 이는 음향, 영상, 자막, 조명을 담당하는 미디어 팀도 마찬가지. 그래도 미디어팀은 교회에 따라 달라서 소정의 수고비를 정기적으로 쥐어주는곳도 있다. 근데 그 수당도 100만원을 넘기기 힘들어서 사실상 부업정도지 전업으로 하기엔 먹고 살길이 막막하다.

이러한 풍토는 2020년대 들어와서 약간은 해소됐다. 2020년 코로나 사태 이후 많은 교회들이 유튜브를 통해 비대면 예배를 진행했는데, 이로 인해 CCM의 인터넷 재송출과 관련한 저작권 분쟁 방지를 위해 CCLI 라이선스를 발급받기 시작했다. CCLI는 국내외 주요 CCM에 대한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으며, 각 교회에서 CCLI에 지불한 저작권료를 분배하는 역할을 한다. 그 결과 각 교회의 유튜브 설명란에서 교회의 CCLI 라이선스 번호를 기입한 사례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신해철015B 혹은 그들을 모창한 그룹이 90년을 전후해 초기 앨범을 그대로 써서 CCM 앨범(혹은 불법사용)을 낸 적이 있다. 분명히 그 가수/그룹 노래인데 들어보면 가사가 삼천포로 빠진다. 당시 저 가수들 인기가 좋았기 때문에, 종교노래를 틀 수 없는 일반고에서 방송부원이 스리슬쩍 끼워넣기 좋았다.

가장 최근의 흐름은 미국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CEDM (Christan Electronic Dance Music)이 유행하고 있다.

현재 외국 CCM 번역라이센스는 휫셔 뮤직휫셔 뮤직몰카피케어 코리아에서 취득 가능하다.

장르의 특성상 트로트와는 거리가 멀 수 밖에 없다. CCM이 서구 기독교 문화권에서 시작되었고, 트로트가 종교 음악의 경건한 분위기와 맞지 않게 경박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으며, 트로트 가수 중에는 (기독교 신자도 있지만) 불교 신자가 많다는 것도 한몫 한다. 그런다고 트로트 풍의 CCM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민희라 집사의 복음성가 모음도 그렇고, 복음성가 메들리 모음집도 그렇다. 또한, 일부 트로트 가수 중에도 신도가 있기 때문에(송대관, 최진희 등..) 트로트 풍의 CCM이 없어질 수가 전혀 없다. 과거 KBS에서 방영되었던 스펀지에서 트로트 복음성가가 있다는 사실이 소개됐다. 그리고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에 나왔던 뽕짝 부르는 목사 구자억의 트로트 CCM도 있다.

1990년대에는 노래방에도 CCM이 수록된 바가 있었다. 금영 뮤직파트너와 대흥 아리랑에서 선곡할 수 있었다. 다만, 금영은 코러스 시리즈로 넘어와서는 기존 뮤직파트너에 수록됐던 CCM이 전부 삭제됐고, 대흥 아리랑의 경우, 처음엔 아리랑 V까지 들어갔다가 삭제 직후엔 아리랑 7 이상 모델에서 수록되고, 수퍼아리랑 출시 이후 4자릿수 곡번호가 포화상태에 이르자, 아리랑 7에서도 CCM이 삭제되고, 수퍼아리랑 이상 모델에서만 선곡됐다. 인켈도 노래반주기를 출시했을 당시엔 엘프로부터 SR-3000 기반의 기기를 사다가 노래왕 딱지를 붙여 되팔았는데, 엘프 소리꾼 SR-3000에는 없는 CCM이 인켈 노래왕엔 수록되었다. 21세기에 들어서 ASSA는 Dream21와 DreamQ[14]에서 수록했고, TJ미디어는 질러 시리즈 출시와 함께 17000번대에 수록됐지만, 17013(낮엔해처럼 밤엔달처럼) 등의 소수만이 2시리즈까지 넘어왔고, 나머지는 SD중기형까지 지원됐다.

4. 관련 인물

4.1. 국내

4.1.1. 개신교

4.1.2. 가톨릭

4.2. 국외

5. 논란

5.1. 가사에 대하여

교회에서 찬송곡으로 사용되는 CCM 중에 신사도 운동과 같은 정통 교리와 거리가 있는 교리를 담고 있거나, 혹은 그렇게 해석될 여지가 있는 곡이 많다는 의견이 있다. 어느 것이 이단적인 CCM이라고 규정짓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지만, 일단 신사도운동에서 자주 쓰는 '기름부음', '성령의 권능' 등의 키워드가 들어간 곡들은 주의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논란을 제기한 몇 곡과 그에 대한 반박의견은 다음과 같다.

2020년대에 접어들며 위 3곡은 CCM의 고전이 되었으며, CCM에 대한 이단 교리 논란은 거의 사그라들었다. 대신 깊이가 없는 내용이 많은 게 CCM의 큰 문제점이라고 지적하는 경향이 아직 존재한다. 반복적인 가사가 많고, 성경적인 교리보다는 은혜, 자비, 기적만을 강조하거나 자기 위로를 노래하는 등의 비성경적이고 자기 고백적인 노래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윗의 시편을 생각해 보면 이러한 비판은 어패가 있다. 시편은 다윗 자신의 고백과 위로를 기반으로 쓴 내용이 상당 수다. 자기 고백과 위로가 성경적이지 못하다고 하며 자기 고백과 위로가 많은 시편은 성경이라고 말하는 것은 논리적 오류이다. 시편은 성경이기 이전에는 다윗과 많은 신앙의 선조들이 부른 '찬양 가사집'였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될 부분이다. 실제로 초기 기독교나 유대교에서는 예배 때 이 시편의 가사들로 하나님을 찬양했다. 단순히 성경의 의미 뿐만 아니라 찬양의 성격 또한 가지고 있는 것이 성경에서 '시편'이 갖는 의미이다. 애초에 만들어진 목적 또한 그랬다.

자신이 경험하고 느낀 하나님을 CCM의 방식으로 노래하는 게 옳지 않다고 보는 것은 너무나 편협한 시각으로 찬양을 바라보는 것이다. 성경의 말씀에 기반을 둔 찬양이 귀중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렇지 않은 찬양은 깊이가 없다고 하는 것 또한 옳다고 할 수 만은 없다. 실제로 대한민국에서 불리고 있는 찬송가 중에도 개인의 경험을 노래하는 예가 꽤나 많다. e.g., 통합찬송가 579장 '어머니의 넓은 사랑', 199장 '나의 사랑하는 책'. 물론 찬양의 가사를 쓰는 데는 많은 고민과 이것이 성경적으로 옳은지에 대한 고민이 많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냥 덮어놓고 "CCM은 깊이가 없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

5.2. 곡조에 대하여

한편, CCM의 곡조가 지나치게 흥과 황홀함만을 강조하거나, 또는 발라드 풍이거나 어두운 색채를 풍기는 곡들이 많기 때문에 문제라는 주장도 있다. 곡조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자면, CCM이란 기본적으로 'Contemporary Christian Music'이다. 동시대적인 음악적 색채를 띈 기독교 음악이다. 음악의 발전과 변화에 따라 CCM 또한 그 흐름이 변해가는 것이 정상적이라는 것이다. 애당초 많은 찬송가들이 각 나라의 민요나 전통가요의 곡조에 가사를 붙혀 만든 곡들이 많은 것을 생각해보자. e.g., 스코틀랜드 민요를 개사해 만든 새 찬송가 493장 '하늘 가는 밝은 길이', 280장 '천부여 의지 없어서', 미국 남부지방 민요에 존 뉴턴의 시를 가사로 붙혀 만든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스웨덴 민요에 가사를 붙힌 79장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종교개혁을 주도한 마르틴 루터가 독일 민요를 바탕으로 쓴 찬송가인 585장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에 곡을 붙힌 통합 찬송가 64장 '기뻐하며 경배하세', 605장 '오늘 모여 찬송함은'.

즉 곡조의 경건함과 세속의 기준을 너무 자의적으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에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애시당초 성경에 '찬양에 악기를 많이 넣으면 안된다.'와 같은 구절은 없다. 다윗왕도 자신의 취미가 류트를 다루는 것이 였으며, 시편에 직접 언급되어 있다. 현대로 따지면 축산업자 출신 참전용사 및 국가원수가 하이엔드 기타를 보유하면서 연주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만의 취향이 아닌 성경을 기준으로 상황을 볼 수 있어야 된다. 하나님을 흥과 황홀로, 나아가 부드러운 발라드나 어두운 풍으로 찬양하는 게 비성경적이라고 보는 것은 찬양에 대한 시각이 기존의 전통적인 시각에만 그냥 고정되어 있다는 의미에 다름 아니다.

교회음악사를 살펴볼 때 르네상스 시대 교회음악의 선구자적 역할을 했던 팔레스트리나(Palestrina)나 바로크 후기의 대표적인 양대 작곡가인 헨델바흐의 웅장한 오라토리오나 칸타타 등 교회음악 걸작들 역시 그 당시에는 상당히 센세이션한 사건들이었다. 지금 현재 '찬송가'라고 불리는 노래들도 한 때는 동시대적인 음악들 아니었겠는가. 대부분의 곡조에 대한 논란은 어느 정도는 결국 취향의 문제와 귀결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배 때 조용하고 엄숙한 곡들을 많이 부른다. 이는 북미의 장로회의 영향을 매우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교회에서 사용하는 음악은 단순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못갖춘 마디의 곡은 악마의 노래라고까지 말한 것이 장로회의 창시자인 존 칼빈이기에, 이러한 청교도적 관점이 대한민국 교회에 영향을 많이 미친 것으로 생각된다. 가톨릭이나 성공회의 성가 역시 이와 유사하다. 그러나 당장 흑인교회의 예배에만 가면 블랙가스펠이라고 불리는 매우 흥겨운 흑인 특유의 찬양들이 예배곡으로 불리워진다. 이러한 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라기 보다는 그 문화의 특성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스타일의 CCM이 아닌 자기 만족이나 위로를 위한 스타일의 CCM은 위험하다고 하며, 그래도 CCM 보다 찬송가를 선호해야 한다는 주장이 생겨났다. 그러나 찬양을 통한 하나님과의 합일(중세 시대 이래 모든 기독교인들의 소망 중 하나) 개념을 감안해 본다면, 사실 이는 불필요한 논란이라고 간주될 수 있다. 헨델과 바흐의 곡이든 찬송가든 CCM이든 하나님에 대한 노래를 통해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위안받고자 하는 것은 기독교인이라면 당연히 가지게 되는 마음가짐이다. 오히려 이러한 논란 및 주장 싸움 자체가 더 반기독교적일 수 있다. 문화가 다르면 예배의 형식이 달라지고 찬양곡의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으며, 세대간의 차이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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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사랑이 내게 들어와 · 주 품에
폭풍속의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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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Blessed Be Your Name · Holy Forever · I Speak Jesus · In Christ Alone · Sing Hallelujah To The Lord · To Be The Glory · Way Maker
CCM으로 오해받는 곡들
You Raise Me Up · Hallelujah · Let It 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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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네이버 사전의 정의[2] 아예 청년미사에서 개신교의 CCM을 빌려 쓰는 경우도 있다.[3] 새찬송가 242장 황무지가 장미꽃같이 곡.[4] 새찬송가 270장 변찮는 주님의 사랑과 곡.[5] 새찬송가 493장 하늘 가는 밝은 길이 곡.[6] 새찬송가 285장 주의 말씀 받은 그 날 곡.[7] 새찬송가 489장 저 요단강 건너편에 찬란하게 곡.[8] 새찬송가 144장 예수 나를 위하여 곡. 이 곡은 템포를 원래보다 빠른 템포로 부른다.[9] 새찬송가 266장 주의 피로 이룬 샘물 곡.[10] 절대로 순종하여라 라고도 함, 새찬송가 508장 우리가 지금은 나그네 되어도 곡.[11] 이 곡은 사의 찬미의 곡조를 사용한다. 새찬송가 158장으로 수록되었으나, 일부 가사가 수정되었고 곡은 김남수의 곡으로 변경되었다.[12] 이 곡은 '용감한 수병의 곡을 사용한다.[13] 새찬송가 266장 주의 피로 이룬 샘물 곡.[14] DreamQ는 TJ 질러 시리즈 그 자체이다.[15] 대표적으로 양옆의 사람과 손을 잡고 들어올리며 축복할 때에 하는 멘트다.[16] 히브리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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