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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종오/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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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선수 경력
2.1. 유년 시절 ~ 2003년2.2. 2004 아테네 올림픽2.3. 2008 베이징 올림픽2.4. 2012 런던 올림픽2.5. 2014 인천 아시안 게임2.6. 2015 창원 월드컵2.7.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2.8.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2.9. 2020 도쿄 올림픽2.10. 은퇴
3. 평가4. 수상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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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진종오사격 선수 경력을 정리한 문서.

2. 선수 경력

2.1. 유년 시절 ~ 2003년

어려서부터 을 좋아했다고 한다. 어머니 돈을 훔쳐 장난감 총을 구입한 것이 어린 시절 저지른 큰 잘못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tvN <스타특강쇼>에서 본인이 밝힌 바에 의하면, 부모님 몰래 본인 저금통을 털어서 샀던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총을 좋아한 아들 이야기를 해 준 어머니 친구의 소개로 사격에 입문했다고 한다. 사격 선수로서는 치명적인 쇄골 부상, 그것도 양쪽 어깨 전부 부상을 당한 경력[1]이 있음에도 꿋꿋이 이겨내며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대표적인 인간 승리자다.

하지만 이 부상이 그에게는 동기가 되었다고 하는데, 중학교 때까지 평범한 사격 선수였다. 그러다 고교 시절 첫 쇄골 부상을 당한 이후 부상으로 인해 훈련을 강도 있게 못하고 대신 하고 싶은 만큼만 하게 된 것이 재미를 느껴서 실력이 일취월장, 부상 후 첫 대회에서 우승했다. 그리고 경남대학교에 입학한 후 동문회 축구 대회에서 태클을 심하게 당해 다시 한 번 쇄골 부상을 당하고 볼펜조차 들어올리지 못하여 수술, 그리고 또 다시 실력이 향상되었다. 2001년 12월 24일부터 2004년 2월 9일까지 경찰종합학교 무궁화체육단에서 의무경찰전환복무하였다.

2.2. 2004 아테네 올림픽

자유권총 50m에서 결선 중반에 6.9점을 쏘는 바람에[2] 역전되어서 은메달을 받았다. 2008 베이징 올림픽 50m 개인 결승전에서도 마지막 발에 8점대를 기록해 4년 전의 악몽이 재현되는가 했지만[3] 금메달을 따는 데 성공했다. 당시 마지막 발을 크게 잘못 쏴서 본인이 금메달이 아닐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지, 금메달인걸 알게 되자 혼자 어리둥절해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2.3. 2008 베이징 올림픽

공기권총 10미터에서 아깝게 은메달을 땄지만 권총 50m에서 금메달을 획득했고 2012 런던 올림픽에서는 10m와 50m에서 금메달 2개를 획득했다.[4] 그리고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도 권총 50미터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여 올림픽과 역사를 같이하는 50미터 권총 종목 116년 역사상 3회 연속 금메달을 획득한 유일한 선수이자, 권총 종목에서 올림픽 금메달 4개를 획득한 유일한 선수가 되었다.

2.4. 2012 런던 올림픽

2012 런던 올림픽 10m에선 결선 전반에선 내내 10점대를 기록한 것과 달리 결선 후반에선 계속 9점대를 기록하면서 위험해질 뻔했다. 그런데 어째 그만이 아니라 다른 상위권 선수들도 점수대가 저조했고 앞에서 점수를 많이 벌려둔 상황이었기 때문에 역전 당하지 않았고 마지막에는 10.8[5]을 쏘면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50m에서도 금메달을 땄는데, 예선 점수는 562점으로 5위로 결선에 진출했고 결승 100점으로 총점 662점. 결승 평균 10점의 위엄 예선에서 569점으로 1위로 진출한 같은 대표팀 최영래를 0.5점 차로 따돌리고 금메달을 챙겼다.[6]

2.5.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50m 권총 본선을 1위로 통과했으나 결선에서 7위에 그쳤고[7] 남자 10m 공기권총 단체전에서는 금메달, 50m 권총 단체에서는 은메달, 10m 공기권총 개인전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개인전 동메달도 좋은 성적이긴 하지만, 아시안 게임 직전 세계 선수권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웠던 터라 본인도 많이 아쉬웠던 것으로 보인다. 권총 50m 개인전 결선을 7위로 마무리하고 이 때 했던 인터뷰가 백미인데, "은퇴하지 말라는 계시로 알겠다"며 세계 1인자다운 모습을 보여 줬다.

2.6. 2015 창원 월드컵

10m 공기권총 결선에서 206.0점으로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

2.7.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공기권총 10m에 출전하여 139.8점으로 부진하여 5위에 그쳤다. 그러나 권총 50m에서 193.7점[8]을 쏘아 금메달을 목에 걸며 사격 역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3연패의 업적을 이룩한다. 더불어 4연속 올림픽 메달(금4, 은2)의 대업적을 세웠다.[9]

또한, 신궁 김수녕이 가지고 있던 대한민국 올림픽 금메달 최다 기록(4개) 와 올림픽 메달 최다 기록(6개)과도 타이를 이뤘다. 게다가 사격은 다른 스포츠와 달리 비교적 오랜 기간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는 종목이고 실제로 진종오는 2020 도쿄 올림픽에도 출전 의지가 있기에 김수녕의 기록을 넘어설 가능성도 충분히 있는 상황이다.

현재 연금 포인트 최상한선을 아득히 초과한 상태로[10] 연금은 일시불로 수령하지 않았다면 한 달에 100만 원씩 받는다.

2.8.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시험 사격 마지막 발 결과가 표시되지 않아서 기계에 이상이 없는지 테스트하는 무제한 시험 사격을 요구했으나 심판이 영어를 못해서 항의를 받아주지 않는 정신 나간 상황까지 벌어지면서 심리상태가 흔들렸고 10m 결선에서 5위에 그쳤다.

2.9. 2020 도쿄 올림픽

주 종목인 50m 자유권총이 폐지되며 10m 공기 권총 남자부와 10m 공기 권총 혼성부에 출전했다. 10m 공기 권총 남자부에서는 예선 15위로 컷오프인 8위를 넘지 못하고 결선 진출에 실패했다. 4시리즈에서 4연속 9점으로 순위가 많이 떨어졌다가 6시리즈에서 무려 8연속 10점을 맞히며 9위까지 올라갔으나 9번째 시도에 8점을 맞힌 게 결정타가 된 것으로 보인다. 후배인 공기권총의 김모세는 남자 10m 공기 권총 남성부 결선에 진출하게 되었다. 탈락 직후 후배를 챙겨준 뒤 취재진들한테 웃으면서 인사하고 경기장을 떠났다. 10m 공기권총 혼성 단체전에서도 탈락하며 올림픽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다.

10m 공기권총 혼성 단체전에서 추가은과 함께 출전하여 합계 575점(추가은 286점+진종오 289점)을 기록하며 9위로 본선 1차전 통과에 실패했다. 본선 1차전은 30분 동안 남성 30발, 여성 30발을 각각 쏴서 합산 점수가 높은 순서로 8개 팀이 2차전에 진출하는 방식인데, 한 발당 최고 10점, 총점 만점은 600점이다. 진종오-추가은은 8위와 동점을 이뤘지만 10점 획득 수에서 밀려 아쉽게 9위로 내려갔다. 24일에 열린 남자 10m 공기권총에서도 결선 진출에 실패한 데 이어 혼성 경기에서도 본선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이번 대회를 빈손으로 마쳤다.

네 번의 올림픽에서 금메달 네 개와 은메달 두 개를 획득했는데, 메달을 일곱 개로 늘리면 김수녕(금4·은1·동1)을 넘어 한국 올림픽 최다 메달 기록을 세울 수 있었다.[11]

한편 주변에서 은퇴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는 질문에는 아직 그런 쪽에 관한 생각은 없으며, 2024 파리 올림픽 선발전 출전이 선수로서 마지막 목표라고 말했다. [12]

하지만 국민의힘 입당부터 은퇴 이야기가 나오더니, 3월 4일 공식 은퇴 선언을 하며 현역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2.10. 은퇴

파일:진종오 은퇴식.jpg
2024년 3월 4일 공식 은퇴식을 가지며, 사격 선수 생활을 종료하였다. 기사

3. 평가

올림픽 개인 사격 종목에서 유일하게 금메달을 네 개 획득했으며[13] 올림픽 50m 권총 종목에서 세 개 대회 연속으로 우승하면서 올림픽 개인 사격 역사상 유일하게 금메달을 3번 연속으로 획득한 기록도 가지고 있다. 또한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들 중 가장 많은 올림픽 메달을 보유하고 있는 선수다.[14]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까지 대한민국 올림픽 최고령 금메달리스트였으나 2020 도쿄 올림픽에서 양궁의 오진혁펜싱김정환이 금메달을 따내면서 3위로 밀렸다. 그러나 이 두 명이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땄기 때문에 대한민국 개인전 최고령 금메달의 주인공은 여전히 진종오다.

다만 그에게는 두 가지 문제가 있는데, 대학교 시절에 수술받은 오른쪽 어깨에 통증[15]을 자주 느낀다는 것과, 이 탓인지 몰라도 경기에 참가할 때 페이스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편이 아니라고 한다. 20발을 쏘는데 그중 한두 발을 삐끗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실제로 하술할 2004 아테네 올림픽 때도 6.9점을 쏴서 은메달을 땄고 상술한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때도 6.6점을 쏴서 메달권에서 멀어질 뻔하기도 했다. 대체로 10m에선 결선에서 강하고 본선에 약한 편이며, 50m에선 결선에서 약하고 본선에서 강하다는 평을 받는다고 한다.

뛰어난 선수라도 올림픽세계 선수권 둘 다 뛰어난 성적을 거두는 선수는 많지 않은 편인데[16] 진종오는 2008년 올림픽 수상 이후 몇 번을 제외하고는 국내외 대회에서 계속해서 뛰어난 기량을 보여 주었고 앞서 언급하였다시피 올림픽 사격의 권총 종목 116년 역사에서 유일한 올림픽 금메달 3회 획득자라는 점에서 큰 족적을 남겼다.

4. 수상 기록

<colbgcolor=#6c71b5><colcolor=#fff> 대회 <colcolor=#000>
올림픽 4 2 0
세계 선수권 5 2 2
아시안 게임 3 4 4
아시아 선수권 3 3 1
월드컵 파이널 3 0 1
합계 18 11 8
올림픽
금메달 2008 베이징 50m 자유권총
금메달 2012 런던 10m 공기권총
금메달 2012 런던 50m 자유권총
금메달 2016 리우데자네이루 50m 자유권총
은메달 2004 아테네 50m 자유권총
은메달 2008 베이징 10m 공기권총
세계 선수권
금메달 2010 뮌헨 50m 자유권총 단체전
금메달 2014 그라나다 10m 공기권총
금메달 2014 그라나다 50m 자유권총
금메달 2018 창원 10m 공기권총 단체전
금메달 2018 창원 10m 공기권총
은메달 2014 그라나다 10m 공기권총 단체전
은메달 2014 그라나다 50m 자유권총 단체전
동메달 2010 뮌헨 10m 공기권총
동메달 2010 뮌헨 10m 공기권총 단체전
아시안 게임
금메달 2010 광저우 10m 공기권총 단체전
금메달 2010 광저우 50m 자유권총 단체전
금메달 2014 인천 10m 공기권총 단체전
은메달 2002 부산 50m 자유권총 단체전
은메달 2006 도하 10m 공기권총 단체전
은메달 2010 광저우 50m 자유권총
은메달 2014 인천 50m 자유권총 단체전
동메달 2002 부산 10m 공기권총
동메달 2006 도하 10m 공기권총
동메달 2006 도하 50m 자유권총 단체전
동메달 2014 인천 10m 공기권총
아시아 선수권
금메달 2012 도하 10m 공기권총 단체전
금메달 2012 도하 10m 공기권총
금메달 2012 도하 50m 자유권총
은메달 2007 쿠웨이트 50m 자유권총 단체전
은메달 2007 쿠웨이트 50m 자유권총
은메달 2012 도하 50m 자유권총 단체전
동메달 2004 쿠알라룸푸르 10m 공기권총
월드컵 파이널
금메달 2008 방콕 50m 자유권총
금메달 2009 우시 10m 공기권총
금메달 2009 우시 50m 자유권총
동메달 2013 뮌헨 50m 자유권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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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등학교 2학년 시기에 하굣길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왼쪽 쇄골 한 번, 대학교 1학년 시기에 축구 시합을 하다 태클에 걸려 오른쪽 쇄골 한 번이다.[2] 영상을 보면 마지막 발이 아닌 일곱 번째 발이다.[3] 당시 막발에서 북한의 김정수가 10.5점을 쏴 진종오를 일순간 긴장시켰지만 결국 김정수를 0.2점 차로 밀어내고 진종오가 승리했다. 하지만 김정수는 도핑에 걸려 이 대회에서 따낸 메달 2개를 모두 박탈 당했다. 2등이어도 금메달은 땄을 거란 이야기다. 사실 마지막발 전까지 2위는 중국 선수였고 진종오와의 격차는 1.9점이었다. 북한의 김정수는 4위였기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던 상황인데 결과적으로 이 중국선수가 10점대 초반만 쐈어도 금메달을 놓칠 상황이었기에 진종오의 8.2점이라는 점수가 먼저 공개되자 본인은 물론 코치진, 중계진 모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던 것이다.[4] 대한민국 하계 올림픽 도전 역사상 최초의 남자 2관왕, 개인 종목 2관왕, 양궁 이외의 종목 2관왕이다. 동계 올림픽을 포함한다면 쇼트트랙의 김기훈이 최초다.[5] 만점이 10.9다.[6] 참고로 최영래는 첫 올림픽 출전이었다.[7] 2012 런던 올림픽 이후 개정된 룰이 발목을 잡았다. 개정된 룰은 본선에서 얻은 점수를 모두 리셋하고 0점에서 결선을 치르는 방식이다. 이 제로베이스 방식은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도 적용 중이다.[8] 올림픽 신기록으로 기록되었다. 다만 이번 올림픽부터 결선 때 쏘는 발수가 10발에서 20발로 바뀌었기 때문에 신기록의 의미는 좀 적다. 예선에선 10점 만점에 1점 단위로 점수가 매겨지지만 결선에선 10.9 만점에 0.1점 단위로 점수가 매겨져서 결선 발수가 늘어난 만큼 고득점이 나올 확률이 높기 때문이며,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은 바뀐 규정이 적용되는 첫 번째 올림픽이다. 그러나 50m 종목이 사라지게 되면서 이 기록이 상당히 오래 남게 되었다.[9] 두 번째는 스피드 스케이팅의 이승훈으로, 이쪽은 대한민국 최초로 동계 올림픽 4회 연속 메달리스트가 되었다.[10] 만점 110점, 올림픽 금메달 90점이고 아시안 게임은 20점이다. 현재 올림픽, 아시안 게임 금메달 4개 이상에 은메달, 동메달까지 가지고 있어서 다 합치면 500점이 초과된다. 정확한 점수는 542점이다.[11] 다만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의 이승훈이 매스스타트에서 동메달을 획득하여 김수녕과 진종오 이어 동률이 되었는데, 이쪽은 동계 올림픽 최다 메달리스트다.[12] 다만, 은퇴식 인터뷰에 따르면 사실 이때 마음을 내려 놓았다고 한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마음을 내려 놓았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스스로에게 부담을 주고, 시한부를 선언하는 느낌이라 이렇게 발언 했다고.[13] 금메달 개수만을 따지면 사실 4~5개를 보유한 선수들은 많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20세기 초에 열린 다수의 팀 종목에서 수월하게 금메달을 획득했다. 모든 선수와 경쟁해야 하는 개인전으로 올림픽 사격의 최고 수준에 오른 선수는 진종오가 유일하다고 볼 수 있다.[14] 금메달 4개, 은메달 2개로 양궁김수녕(금 4, 은 1, 동 1)과 함께 6개의 메달을 보유하고 있다.[15] 축구를 하다 부상을 당했다. 사격에 영향을 줄까 봐 철골을 제거하지 않았다고 한다.[16] 그랜드 슬램 달성이 괜히 어려운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