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오의 인물에 대한 내용은 진소(손오)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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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秦邵
생몰년도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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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한 말의 인물로 조진, 조빈, 덕양향주 조씨의 아버지. 위략과 위서에 따라 기록이 약간 다른 인물로 진백남(秦伯南)이라고도 한다.2. 생애
위략에 따르면 그는 조조와 친했는데, 흥평(194 ~ 195년) 말에 원술의 패거리가 조조를 위협하면서 공격하자 도망치던 조조가 그의 집에 들어가 숨었고, 뒤쫓아온 자들이 조조가 어디있는지 묻자 진소가 자신이 조조라며 나서서 대신 죽었다고 한다.위서에 따르면 진소가 충성스럽고 독실한 성격에 재능과 지혜가 있어 조조의 신임을 받았는데, 초평(190 ~ 193년) 연간에 조조가 의병을 일으키자 무리를 모아 조조를 수행해 떠돌았다. 그런데 이 때 예주자사 황완이 조조를 해치려고 하자 조조는 피했지만 진소는 홀로 해를 입었다고 한다.
하여튼 그렇게 진소가 죽자 조조는 그의 아들 둘과 딸을 자신이 거둬들여 성을 조씨로 고치고 친자식처럼 길러줬다고 한다. 조진은 227년에 조예가 즉위하면서 소릉후(邵陵侯)라는 작위를 받았다. 그런데 원래 임금이나 조상이나 이름을 꺼려서 쓰지 않고 피휘하는데, 봉작의 이름에 친아버지의 이름의 글자(邵)가 들어갔기 때문에[1] 주석을 달은 배송지는 이 책이 전하는 바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일의 전말을 논하기 어렵다고 했다.
기록에 따른 차이가 맞지 않고 위에 설명한 것처럼 배송지도 의문점을 제기한 것 때문에, 진소와 진백남이 별개의 인물이라는 주장도 존재한다. 물론 새로운 기록이라도 나오지 않는 한은 알 수 없는 일이다.
[1] 임금의 이름이 있으면 임금이 애초에 봉지의 이름을 고쳤으며 신하 입장에서 자신의 조상의 이름이 봉지에 있으면 일부러 그 직임을 사양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