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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07 22:47:10

지부티/역사

소말리아와 지부티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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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대2. 이슬람 도래 이후3. 프랑스의 지배4. 독립 이후

1. 고대

고대에는 이집트인들에게 에리트레아,수단의 홍해 인근,소말리아와 묶여 신의 땅이라는 이름의 펀트(punt)지역으로 불리었으며 그 기록은 기원전 2500년경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펀트 지역은 이집트 8왕조시대에 지배를 받기도 하였으며 고대 이집트와 교역하며 성장하였다.

이후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등장하는 아프리카 뿔 지역의 국가인 마크로비안(microbians)이 이 지역에 존재했다고 하며 헤로도토스는 이 지역 사람들이 120살까지 장수하고 모든 남자들이 잘생겼으며 키가 컸다고 기록하였다. 이후 지부티 지역에는 악숨 왕국이 들어서게 되었다.

2. 이슬람 도래 이후

중세시대에 들어서 지부티에도 이슬람이 전파되었고 이팟(Ifat)술탄국이 지금의 소말릴란드,지부티 지역에 등장했으며 이후 이웃 국가들과에 전쟁으로 성장한 아달 술탄국이 지금의 지부티,소말릴란드등을 포함한 영토를 지배하고 오스만 제국이 팽창함에따라 지부티도 오스만의 영향하에 들어서게 되었다.

3. 프랑스의 지배

오늘날 지부티의 국경선은 아프리카 식민지배시기에 설립되었다.19세기 중반 프랑스는 이 지역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1862년 프랑스는 오복에서 라히이타, 타주라, 고바드 지역의 술탄들과 조약을 맺으며 교류 관계를 구축하고 프랑스는 1883부터 1887년까지 여러 조약들을 지부티와 맺으며 지부티는 프랑스의 보호령이 되었다 이후 지부티 지역에 러시아 선교사들이 들어오나 프랑스에 의해 추방되었으며 1897년 프랑스는 에티오피아 중심과 지부티를 연결하는 도로 공사를 시작해 1917년 완공하였다.

이후 2차세계대전을 거쳐 1960년 프랑스에 남을것인지 아님,독립할것인지 한차례 투표가 있었으나 지부티 현지 유럽인,아파르족이 프랑스 잔존을 지지했고 프랑스가 부정 선거도 저질렀기 때문에 지부티의 독립은 무산되었다. 이후 지부티 현지의회의 부총재(vice president)인 마흐무드 하비는 소말리아 연합에 들어가 프랑스에게 독립할것을 주장하나 2년후 의문의 비행기 사고로 죽었고 1967년 2번째 독립 투표가 열렸고 소말리아인들은 소말리아와에 통일을 아파르족들은 프랑스에 잔존할것을 택했다. 당시 소말리아인은 5.8만명이고 아파르족은 4.8만명이었기에 원래대로라면 독립이 확정됬어야 하나 프랑스 정부는 또 다시 부정 선거를 저질렀고 독립 투표는 부결되었으며 이에 대한 소말리안인들의 반발로 시위가 발생하였고 소말리아 해방 전선이라는 독립 단체가 창설되었다. 이후 1977년전 전세계적인 식민지 해방 움직임속에서 3번째 독립투표가 열렸고 지부티는 독립하게 되었다.

4. 독립 이후

지부티는 독립 이후 RPP정당의 일당 독주 상태가 되었고 정치적 불안이 계속되었다.결국 1991년 아파르족의 불만이 터져 내전이 발발하였고 1997년까지 계속되었다. 당시 지부티는 독립 이후 RPP당의 암티움이 1999년까지 지부티의 총리직을 지냈으며 그의 퇴임 이후 그의 조카인 이스마일 구엘레가 총리직을 계속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