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사건 사고 요약표 | ||
발생일 | <colbgcolor=#fff,#191919>1988년 1월 19일 17시 50분경 | |
유형 | 추돌 사고 | |
원인 | 전차 조종수 과실 | |
발생 위치 | 동독 지나 숲 | |
탑승인원 | 450명 | |
피해 | 인명 | 사망 6명[1] 부상 33명 |
차량 | 13량중 기관차 1대, 객차 6대, 식사칸 1대 손실 | |
기타 | T-64A 전차 반파 | |
운영기관 | 독일국영철도 | |
사고열차 | 열차번호 | D 716 |
열차종별 | 독일국영철도 E11형 전기 기관차 | |
출발역 | 라이프치히-슈트랄준트선 라이프치히역 | |
종착역 | 라이프치히-슈트랄준트선 슈트랄준트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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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Forst Zinna rail disaster/Eisenbahnunfall von Forst Zinna1988년 1월 19일에 동독의 지나 숲 부근 철로에서 독일국영철도 열차와 동독 주둔 소련군 소속 T-64A 전차가 추돌하여 6명이 사망하고 33명이 부상을 입은 사고. 동독 최악의 열차사고로도 손꼽힌다.
2. 배경
독일의 베를린에서 1시간 가량 떨어진 위터보그(Jüterbog)에 위치한 지나 숲(포스트 지나)은 1934년에 독일 재무장이 시작되면서 독일 국방군 부대 캠프가 들어왔던 지역으로, 1945년까지 SS 기지, 기갑 학교, 독일 국방군 막사로 사용되었다.소련군이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이곳을 점령한 후에는 잠시 소련군 수용소로 사용되었다. 냉전 초기인 1953년부터 소련군이 이곳을 정식으로 차지하였고 이후 400,000명에 가까운 병력이 주둔한 주동독 소련군의 막사와 훈련장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는 신규 시설물들을 추가하는 대공사가 진행되었다.
소련군이 차지한 이 지역으로부터 남동쪽에는 베를린-할레선 선로가 위치했다. 철도 종사자들은 인근에 있는 소련 기갑 훈련부대와 주변을 다니는 소련군 기갑차량들 때문에 이곳을 사격무대라고 부르며 경계했다.
3. 사고 진행
사고 당시는 해가 져서 어두워진 시간대였고 소련군 T-64A는 카자흐스탄계 19세 초보 조종수의 교육에 사용되고 있었다. 함께 탑승한 20세 러시아인 교관은 인터콤을 통해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교관은 다리를 건너 인근 훈련장으로 향하기 위해 훈련생에게 변속기를 1단으로 하고 오른쪽으로 선회하라고 지시했지만 러시아어에 능숙하지 않은 훈련생과 교관 사이에 의사소통 문제가 생겨서[2] 훈련생은 기어를 2단으로 올리고 계속 전진했다.
교관은 전차가 인근의 운행중인 선로로 향하는 것을 알아서 비상 정지 스위치로 엔진을 중단했지만 이미 전차가 선로에 침범한 상태였다. 그때 450명을 태운 13량 편성 민간 열차가 시속 110km로 달려오고 있었고, 그대로 36톤 나가는 T-64를 들이받았다.
사고의 충격으로 T-64는 130m 가량 뒤로 밀려났고 펜더와 궤도 같은 외장 부품들이 심하게 손상되었지만 탑승원 2명은 무사했고 수리가 가능했다. 하지만 열차는 기관차와 객차 6칸, 식사칸 1대가 대파되었고 즉사한 기관사 2명을 포함해 탑승자 6명이 사망했고 33명이 크게 다쳤다.
사고 발생 직후 동독 의용소방대와 소련군이 출동하여 부상자 응급처치를 시작했고 사고 현장 수습을 진행했다.
4. 조사
사고 발생 직후 소련군 2명은 동독 경찰에 체포되어 심문을 받았다. 동독측에서는 기관사가 당시 전차를 피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며 사건의 책임이 소련군에 전적으로 있다고 주장했으나 이후 동독 정부와 소련 정부의 합의로 사고를 일으킨 2명은 48시간 내로 소련으로 송환되어 현지에서 재판을 받았다. 재판에 대한 내용은 밝혀진 게 없어서 이후 둘의 행방은 묘연하다.[3]이 사고가 소련군 전차에 의한 것이었다고 밝혀지자 당시 껄끄러워지던 동독과 소련의 외교에 이어 동독의 여론은 싸늘해졌고, 동독 국영 방송국에서는 소련군이 연관된 사건이면 크게 보도하지 않았던 이전과 달리 대대적으로 보도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