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후한의 연호 | ||||
→ | → | |||
후한의 연호 | ||||
→ | → |
중국 후한의 제27대 황제인 영제가 사용한 연호로 184년부터 189년까지 사용되었다. 광화(光和) 7년 황건적의 난을 진압하고 12월에 중평으로 연호를 바꿨다. 189년 영제가 사망하고 뒤를 이어 즉위한 소제 유변이 광희(光熹)로 고쳤다가 다시 소녕(昭寧)으로 고쳤고, 유협이 즉위한 뒤에 영한(永漢)으로 고쳤다. 하지만 헌제의 칙령으로 광희, 소녕, 영한 연호는 폐지되었고, 다시 중평 6년을 칭하였다.
황건적의 난을 진압하고 중평으로 연호를 고쳤지만 영제가 매관매직을 하고 이로 인해 관리들의 수탈이 더욱 가혹해지는 폐해를 보였으며, 매년 반란이 일어날 정도로 후한의 쇠퇴는 돌이킬 수 없었고, 결국 십상시의 난과 동탁의 권력 장악이 일어났다.
2. 주요 사건
- 중평 원년(184년): 광화 7년 12월에 중평으로 개원.
- 중평 2년(185년): 흑산적의 난, 대풍의 난
- 중평 3년(186년): 조자의 난
- 중평 4년(187년): 장순, 장거의 난, 관곡의 난, 우성, 주조, 곽석, 소마의 난
- 중평 4년(188년): 마상, 조지의 난
- 중평 6년(18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