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6-01-20 18:34:59

중옹

파일:오 전서체.png
오 국군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오 국군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제5대
태백 중옹 계간 숙달 주장
제6대 제7대 제8대 제9대 제10대
웅수 가상 강구이 여교의오 가로
제11대 제12대 제13대 제14대 제15대
주요 굴우 이오 금처
제16대 제17대 제18대
파고 구비 거제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오 국왕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수몽 제번 여제 여매
제5대 제6대 제7대
합려 부차
삼황오제 · · · · 춘추시대 · 전국시대 · 진(秦) ·
삼국시대 · 진(晉) · 오호십육국 · 북조 · 남조 · ·
오대십국 · · 서하 · · · · ·
중화민국 국가원수 · 중화민국 총통 · 중화인민공화국
}}}}}}}}}
<colbgcolor=#FF0000><colcolor=#522142,#522142> 오(吳)나라 2대 국군
중옹
仲雍
희(姬)
고발(姑發)
옹(雍)
아버지 고공단보(古公亶父)
생몰 기간 음력 기원전 ???년 ~ 기원전 ???년
재위 기간 음력 기원전 ???년 ~ 기원전 ???년

1. 개요2. 생애

1. 개요

주나라 때의 오나라의 제2대 군주. 일명 오중(吳仲)·우중(虞仲)[1]. 형은 태백, 동생은 계력이다.

2. 생애

아버지 고공단보손자 창(昌)이 태어나는 것을 보자 그의 잠재력을 예견했는지 창의 아비인 삼남 계력을 후계자로 삼고자 했다. 그것을 눈치챈 형 태백과 중옹은 자신들이 먼저 떠나기로 결심, 남하하여 형산(衡山)에 정착해 오나라를 세웠다.[2] 형 태백을 군주로 추대했는데, 태백이 후사 없이 죽어서 그 뒤를 대신 이었다. 중옹은 아들인 계간에게 나라를 물려주었고 중옹의 후손들이 계속 오나라를 통치하게 되며, 현존하는 모든 오씨들은 그를 시조로 인식하고 있다.


[1] 오나라뿐만 아니라 우나라 역시 중옹을 시조로 받들기 때문인데 자세한 연유는 주장(오나라) 문서를 보도록 하자.[2] 나중에 계력이 형들을 도로 불러오려 했는데, 이를 전해들은 두 사람은 온몸에 문신을 들였다. 문신은 오나라의 원주민 백월의 풍습이었으니, '우린 (네게 방해 안 되게) 그냥 이민족처럼 살련다'는 어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