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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9-08 16:05:10

중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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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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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0000><colcolor=#522142,#522142> 오(吳)나라 2대 국군
중옹
仲雍
성 희(姬)
씨 고발(姑發)
휘 옹(雍)
아버지 고공단보(古公亶父)
생몰 기간 음력 기원전 ???년 ~ 기원전 ???년
재위 기간 음력 기원전 ???년 ~ 기원전 ???년

1. 개요2. 생애

1. 개요

주나라 때의 오나라의 제2대 군주. 일명 오중(吳仲)·우중(虞仲)[1]. 형은 태백, 동생은 계력이다.

2. 생애

아버지 고공단보는 손자 창(昌)이 태어나는 것을 보자 그의 잠재력을 예견했는지 창의 아비인 삼남 계력을 후계자로 삼고자 했다. 그것을 눈치챈 형 태백과 중옹은 자신들이 먼저 떠나기로 결심, 남하하여 형산(衡山)에 정착해 오나라를 세웠다.[2]

형 태백을 군주로 추대했는데, 태백이 후사 없이 죽어서 그 뒤를 이었다. 중옹은 아들인 계간에게 나라를 물려주었고 중옹의 후손들이 계속 오나라를 통치하게 되며, 현존하는 모든 오씨들은 그를 시조로 인식하고 있다.
[1] 오나라뿐만 아니라 우나라 역시 중옹을 시조로 받들기 때문인데 자세한 연유는 주장(오나라) 문서를 보도록 하자.[2] 나중에 계력이 형들을 도로 불러오려 했는데, 이를 전해들은 두 사람은 온몸에 문신을 들였다. 문신은 오나라의 원주민 백월의 풍습이었으니, '우린[3] 그냥 이민족처럼 살련다'는 어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