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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2-07-15 12:11:30

주황섭



1. 개요2. 생애3. 참고문헌

1. 개요

朱晃燮

천도교청우당 소속의 북한의 정치인.

2. 생애

1907년에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 유학하였으며 1937년 3월, 법정대학을 졸업하였다. 일본 유학 시절 천도교청년회 도쿄지회 상무로 활동하였다.

해방 후 천도교청우당 조직에 참여하였으며 북조선인민위원회가 구성되자 체신국장에 임명되었다. 건국 시점에서 체신상으로 유임이 고려되었으나 결국 같은 당의 김정주가 체신상이 되었다. 천도교청우당 정치위원에 선출되었으며 1954년 시점에서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내고 있었다. 1948년 8월, 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다. 1953년 7월 13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따라 내각 무임소상에 임명되었다. 10월 14일, 무임소상에서 해임되어 도시경영상으로 이동하였다. 조선로동당 1954년 3월 전원회의의 결과에 따라 1954년 3월 23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을 통해 도시경영상에서 해임되어 새로 수산상에 임명되었다. 1956년 4월, 남일, 박정애, 리종옥, 고준택, 최현 등과 함께 김일성을 수행하여 그의 소련, 동유럽, 몽골 순방에 동행했다.

1957년 5월 9일, 50세 생일을 기념하여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한 투쟁에서와 공화국의 민주기지를 강화하는 사업에서의 공훈'을 인정받아 로력훈장을 받았다. 1957년 8월, 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 수산상에 유임되었다. 하지만 1958년 9월 11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따라 청우당 사업에 집중해야 한다는 구실로 수산상에서 해임되었다. 1958년 9월 16일 상무위원회 회의에서 후임 수산상으로 리주연이 임명되었으며 이후 대의원에도 소환되고 완전히 숙청되어 1959년에 대의원 보궐선거가 치러졌다. 김달현과 마찬가지로 청우당 1958년 10월 전원회의에서 출당제명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비참하게 죽었을 것으로 보인다.

3.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