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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3-05 11:35:47

주세붕

파일:주세붕 초상.jpg
이름 주세붕(周世鵬)
생몰년도 1495년 ~ 1554년
본관 상주 주씨
경유(景遊)
신재(愼齋)·손옹(巽翁)·남고(南皐)
시호 문민(文敏)
1. 개요2. 생애3. 여담

1. 개요

주세붕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이다.

2. 생애

1522년 문과에 급제, 권지승문원 부정자로 벼슬살이를 시작하였다. 1537년 실세 김안로를 피해 곤양군수[1]으로 나갔으나 곧 파직된다. 1541년 풍기군수[2]가 된 후 안향의 옛 집터에 사당을 세우고, 유생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건물을 지으니,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백운동서원이다.[3]

1549년에는 황해도 관찰사가 되어 해주에 수양서원[4]을 건립했으며, 이후 대사성, 둥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했다.

3. 여담

사실 그의 학문 수준은 유학의 기본만 겨우 안다는 평이었다. 그러나 사람을 감화시키는 능력만큼은 매우 뛰어났으며,[5] 지극한 효행과 청빈한 생활로 칭송 받았다고 한다.

국어 교과서에 "의로운 거위 이야기"라는 지문이 등장하는데『의아기(義鵝記)』라고도 불리는 이 이야기가 바로 이 사람이 쓴 수필이다.

풍기군수 재직시절 인삼 재배를 적극 장려하여 현재의 풍기지역이 인삼 특산물로 유명하게 되었다.
[1] 사천시 곤양면[2] 영주시 풍기읍[3]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다.[4] 해동공자 최충의 배향장소로 폐허가 돼 있는 문헌서원을 보고 한탄한 후 새로 배향장소를 만들고 그를 배향시켰다.[5] 예시를 들자면 풍기군수를 지내고 임기가 다 하여 물러나게 되었을 때 고을이 교화되었다는 최상의 평을 받았고 한번은 유산상속을 두고 동생과 다투던 형이 있자 주세붕은 형에게 하루 종일 동생을 업고 동헌 뜰을 걷게 시키고 나중에 형 쪽에게 "너는 어려서 동생을 업고 다닐때도 다투어 빼앗을 생각을 했더냐?" 라는 말로 꾸짖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