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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10-12 19:11:30

주상병

초대 진민왕 주상 ← <#bf1400> 2대 진은왕 주상병 → 3대 진희왕 주지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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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제2대 진왕
주상병 | 朱尙炳
시호 은왕(隱王)
봉호 진왕(秦王)
성 주(朱)
휘 상병(尙炳)
부왕 진민왕 주상
모친 차비 등씨
왕비 은왕비(隱王妃) 유씨
생몰 1380년 11월 25일 ~ 1412년 4월 21일
재위 명 진왕세자
1395년 이전 ~ 1395년 6월 21일
명 진왕
1395년 6월 21일 ~ 1412년 4월 21일

1. 개요2. 생애3. 가족4. 둘러보기

1. 개요

명나라의 황족으로 봉국 진(秦)의 제2대 왕이다. 초대 왕인 주상의 장자이자, 홍무제의 손자, 영락제의 조카, 건문제와 홍희제의 사촌 동생이다.

2. 생애

언제 세자에 책봉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1395년에 아버지 진왕 주상이 사망하자 세자로서 진왕에 올랐다는 명실록의 기록이 있어서 그 이전에 진왕세자에 책봉된 것으로 보인다. 홍무제의 손주들 중 가장 빨리 번왕에 오른 인물이다.

정난의 변 때는 따로 어느 쪽을 들지 않았고 숙부인 연왕 주체가 영락제로 즉위하자 곧바로 축하하러 알현을 올렸다. 그러나 영지 내에서는 죽은 부모인 진민왕 주상과 차비 등씨에게 황고(皇考), 황비(皇妣)같은 표현으로 부른 것이 발각되어 조정의 의심을 받았고 또한 어머니 차비 등씨를 아버지의 정실로 인정받으려고 조정에 추봉도 요청하였으나 이 역시 영락제가 거절함으로 인해 무산되었다.

1411년 2월에 영락제가 사자를 진왕 주상병의 임지인 서안으로 보냈으나 성문 밖에서 사자를 정중히 맞아야 함에도 주상병은 병을 핑계로 나오지 않았다. 사자가 보기에 매우 오만하게 보였는지 이를 영락제에게 상세히 고하였는데, 영락제가 훈계의 조서를 내려 엄히 꾸짖었다.

내용은 제환공은 주나라 임금이 제사에 쓸 고기를 내릴 때 굳이 예를 차릴 필요가 없다고 하였으나 제후로서 마땅히 천자가 내리는 은전에 감사해야 한다 하였고, 또한 진(晉)의 제후에게도 옥을 내렸으나 이를 불손하게 받아 뒷날 후사가 없었다라는 고사를 들며 주상병의 무례함을 질타하였고 또한 주상병을 모시는 진왕부의 관리들을 추포하였다.

이에 놀란 주상병이 곧바로 남경의 조정으로 가 영락제에게 사죄 올렸으나, 얼마 되지 않아 1412년 4월에 31세라는 젊은 나이로 사망하였다.

조정에서는 은(隱)이라는 시호를 내렸는데 좋지 않은 시호에 해당한다. 적자인 차남 주지긍이 다음 진왕 자리를 이었다.

3. 가족

4. 둘러보기

파일:명나라 황제 용보_02.png
명의 진왕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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