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3월 25일자로 창간되어 1993년 12월 1일자(통권 339호)까지 발행되었던 한국의 주간 야구전문 잡지. 1982년 프로야구 출범 당시에 홍보 담당으로 재직했던 김창웅 씨가 창간했다. 여기서 활동했던 기자들의 상당수는 이후 타 언론사에서도 활동했다.(대표적으로 이태일 NC 다이노스 사장.)
인터넷이나 위성방송이 없었던 시절, 야구팬들이 국내 리그뿐만 아니라 미국/일본 야구 소식까지 전문적으로 접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해주었다. 시기가 시기였던 만큼, 해태의 전성기와 이에 도전하는 삼성, 빙그레 등의 기사가 주로 다루어졌다. 또한 1990년대 이후 한국 야구를 주도했던 김기태, 정민태, 박찬호, 이종범, 이상훈, 양준혁, 구대성 등의 아마추어 및 프로데뷔 초기 시절 모습도 접할 수 있었다.
1993년 신인왕 경쟁을 다룬 기사
1991년 공주고 시절의 박찬호를 다룬 주간야구의 박스기사 "야구=박찬호라는 말을 듣고싶다"는 그의 꿈은 이후 현실이 되었다!
만화가 허영만이 만평을 연재하기도 했다.
풍한방직이 청보 핀토스를 태평양그룹에 매각하면서도 주간야구에게만은 계속 자금 지원을 하였지만 이후 기업 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지원이 끊겼고 그대로 잡지의 발행은 중단되었는데 스포츠신문들의 증면경쟁에 따른 기자스카웃이 이어지면서[1] 93년 12월 1일자를 끝으로(통권 339호) 폐간됐다.
한편, 주간야구 폐간 과정에서 자매지이자 88년 7월 21일자로 창간된 주간 성인만화잡지 <매주만화>는 주간야구의 종간 때문에 93년 11월 폐간 후[2] 다른 회사에서 96년 7월 6일자부터 격주간 형식[3] 으로 재창간(매월 1.3주 토요일)됐다.
하지만, 메이저 성인잡지이자 인기 작가들이 포진한 <빅점프> <투엔티세븐> <Mr.블루>의 벽을 넘지 못했으며[4] 다음 해 4호(5월 15일 발간.통권 284호) 이후 발행이 중단되었으나 다음 해 1월 말 발간을 재개(30일자인데 발행일은 15일.통권 285호)했지만[5] 97년 7월 시행된 청소년보호법 때문에 된서리를 맞게 되자 98년 3호(3월 15일자인데 발행일은 1일.통권 287호)를 끝으로 폐간됐고 그 이후 Mr.블루 투엔티세븐(98년 여름) 빅점프(2000년 여름)가 연달아 폐간되었다.[6]
이후 2006년 3월 7일자부터[7] 복간했고, 같은 시기의 제1회 WBC 대회에서 거둔 대표팀의 4강 진출로 활기를 띄기도 했다. 하지만 여러 문제가 겹치면서[8] 복간 6주만에 다시 폐간(4월 11일자. 창간 6호-통권 345호)되었다. 복간판은 매주 화요일에 나왔고 값은 3000원이었다. 여기서도 허영만 화백이 만평을 연재했었다.
아울러, 복간판 1호부터 윤태호 작가의 '발칙한 인생'이 연재됐는데 허름한 동네에 30대 백수 박태화를 비롯하여 이발소 서점 세탁소 정육점 등의 가게 주인과 동네 이장, 지역 유지 등이 참여하여 야구단이 만들어지는 것이 주요 내용인 이 작품은 당초 격주간 성인 <Mr.블루>에 처음 연재했지만 잡지 폐간[9]으로 1차 연재 중단됐으며 2002년 3월 창간된 월간 성인 <웁스>에 재연재했으나 불과 5회 만에 잡지가 고별호를 내어 2차 연재중단됐다.[10]
이후, 앞서 본 것처럼 1987년 3월 25일자로 창간되어 매주 수요일 발행했는데 스포츠신문들의 증면경쟁에 따른 기자스카웃이 이어지면서 1993년 12월 1일자(통권 339호)를 끝으로 폐간된 해당 잡지에 재창간호(2006년 3월 7일자)(창간 1호-통권 340호)부터 재연재했으며 이미 게재된 원고를 재활용했음에도 올컬러로 새단장했다
그러나, 애초 성인용으로 기획된 탓인지 백수들의 퇴폐적인 일상 뿐 아니라 섹스 장면까지 지나치게 노출되어 학생야구 선수 자녀를 둔 학부모들 사이에 물의를 일으켰고 급기야 해당 잡지가 광고수주 실패 등의 사전준비 부족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여 6호(2006년 4월 11일자)(창간 6호-통권 345호)만에 재폐간되면서 또다시 연재 중단(3차)되었다.[11]
[1] 93년부터 연예 기사를 없앴다.[2] 같은 달 21일 통권 269호.[3] 창간 1호와 통권 270호가 함께 표기됨.[4] 다른 점이 있다면 'Mr.블루'가 '매주만화' 처럼 국산만화를 표방한 데 비해 '빅점프' '투엔티세븐'은 국산-일본만화를 동시에 실었다[5] 이 과정에서 매월 1.15일 발행하는 형식으로 변경[6] 96년 7월 격주간 형식으로 재창간할 때부터 <매주만화>를 발행해 온(당시 상호명은 미디어유니버스) 트루패밀리는 이 잡지 재폐간 후 미국 성인만화잡지인 월간 헤비메탈을 그 해 4월 수입하여 창간했는데 회사가 그 해 말 문을 닫으면서 1년을 넘기지 못한 채 폐간됐다.[7] 창간 1호-통권 340호란 제호가 붙었다.[8] 광고수주 실패 등 사전준비 부족으로 고전을 면치 못함.[9] 모체인 <주간야구>가 93년 11월 말 부도로 없어지면서 같은 시기 페간됐다가 96년 7월 트루패밀리(당시 상호명은 미디어유니버스)에서 격주간 형식으로 재창간된 <매주만화>(98년 봄 <Mr.블루>와 같은 시기), <Mr.블루> <매주만화>와는 달리 국산-일본만화를 동시에 실었던 <투엔티세븐>(98년 여름) <빅점프>(2000년 여름)가 그랬던 것처럼 97년 7월 시행된 청소년보호법으로 인한 것이었음[10] 그 탓인지 단행본이 출간되지 못했다.[11] 윤태호 작가의 스승 중 하나인 허영만 작가의 작품에 속했던 '들개 이빨'은 96년 8월 영현에서 전 7권으로 단행본이 완결되었는데 연재지 <매주만화>의 모체 <주간야구>가 스포츠신문들의 증면경쟁에 따른 기자스카웃이 이어지면서 1993년 12월 1일자(통권 339호)를 끝으로 폐간(1차)되어 <매주만화>가 폐간(1차)된 데다가 스토리 작가와의 불화 탓인지 4권까지는 허 작가가 직접 그림 담당을 했으나 5권부터는 문하생들에게 그림을 맡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