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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03 12:28:59

향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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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장로회
향린교회
香隣敎會 | Hyangrin Church (PROK)
파일:향린교회_로고.png
파일:향린교회.jpg
[ ▼ 명동 시절 사진 ]
파일:향린교회 설경.jpg
<colbgcolor=#b4d457><colcolor=#ffffff> 설립일 1953년 5월 17일
소속국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소속교단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노회 서울노회
담임목사 공석[1]
표어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경희궁2길 11 (내수동)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2. 민주화 운동의 성지3. 논란
3.1. 친북반미 논란
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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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울 종로구 내수동에 위치한 개신교 장로회 교회. 소속 교단은 한국기독교장로회이다. 향린(香隣)이라는 이름은 '향기로운(香) 이웃(隣)'이라는 뜻이다.

1953년 안병무를 비롯한 12명의 소장파 개신교인(평신도)들이 한국 개신교의 개혁과 한국 사회의 위기 극복을 과제로 삼고 창립하였다. 교파 분열과 교권 싸움이 없는, 초기 기독교 정신에 충실한 교회를 지향하였다. 처음에는 특정 교파에 속하지 않고 목회자도 두지 않는 평신도 중심의 초교파 독립교회의 형태를 취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교인이 점차 증가하고 창립자 중 몇 사람이 외국 유학을 떠나자 교회의 성격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결국 1959년 한국기독교장로회[2]에 가입하였고, 1974년에 김호식 목사를 초대 목회자로 청빙하면서 일반 교회 체제로 전환하였다.

태생도 태생이고 기장 소속인지라, 예장(합동) 등으로 대표되는 일반적인 인식의 보수적인 개신교와는 달리 성소수자 인권, 노동자 인권, 민주화, 남북관계, 신자유주의 저지 운동 등 진보, 좌파 성향의 사회운동을 펼치고 있다. 교회 건물 앞에 국가보안법 폐지, 자유무역협정 반대 등 기독교 좌파 진영에서 주장하는 구호가 걸려있었던 것이 이를 잘 말해준다. 그러한 구호를 가진 집회에 가면 향린교회 깃발을 들고 참가한 청년들을 매우 높은 확률로 볼 수 있다.

투명한 재정 및 운영 방식을 채택하고 있으며, 분립 개척[3]한 교회로 강남향린교회[4], 들꽃향린교회[5], 섬돌향린교회[6]가 있다. 향린교회와 이 세 교회는 교회법상으로 별개의 교회지만 '향린공동체'라는 이름으로 주기적으로 같이 예배를 드리고, 상당수의 집회에 함께 참여한다. 한국 개신교의 보수적인 면이나, 불투명한 재정과 운영에 불만을 가진 개신교인들에게 추천할 만하다.

또한 이 교회는 다른 쪽으로도 진보적이다. 전통문화 계승의 일환으로 찬송가 및 예배를 전통 국악으로 바꿔서 행하는가 하면[7], 다른 보수 개신교와는 달리 '음주가무'에 관대해서 교인들과 목사가 술자리를 가지는 일도 있다. 대체로 집회 끝나고 밥 먹으러 가서 막걸리 한 잔. 교회에서 '인문학 마시기 - 스피릿으로 끓어 올린 인문학'이라 하여 을 주제로 한 인문학 강의를 하면서 술 시음회를 연 적도 있다. 酒님

예장(합동) 소속의 내수동교회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2. 민주화 운동의 성지

파일:external/www.newsmission.com/18077_2465_36_50.jpg

향린교회가 과거 명동(서울 중구 명동13길 27-5)에 있던 시절에는 명동성당에서 매우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그 가까움만큼이나 명동성당과 향린교회는 아주 밀접한 관계였다.

1987년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의 발기인 대회가 명동성당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어떻게든 이를 막고 재야인사들을 검거하기 위해 명동성당에 엄청난 병력의 전의경을 집결시켰다. 1987년 5월 27일, 경찰의 감시를 따돌린 재야인사 150여 명이 대담하게도 명동성당 바로 코앞에 있는 향린교회 3층 예배실에 모여 대회를 열었다. 이후 이 조직이 6월 항쟁의 중심적 역할을 하게 된다. 하여 향린교회는 명동성당,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과 함께 6월 항쟁의 3대 성지로 꼽힌다.

향린교회는 60여 년의 한국 현대사 격동의 현장 속에 있었던 교회이자 민중신학의 상징과도 같은 교회이고, 반독재 민주화 운동과 인권운동, 노동운동 등 여러 재야운동과 민중운동의 중심지 역할을 하며 독재정권의 온갖 핍박과 수난, 감시를 당해온 교회이다.

향린교회 민주화 운동 관련 사진

3. 논란

3.1. 친북반미 논란

1987년부터 2003년까지 향린교회 담임목사를 역임했던 故 홍근수 목사는 대법원에서 이적단체로 판결받은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 준비위원회 집행위원을 역임하였고, KBS 심야토론 중 '공산주의는 인도주의'라고 발언하기도 하였다.

범민련 남측본부 준비위원회가 1991년 향린교회에서 결성되었다. 범민련 초대 의장이었던 故 강희남 목사가 '살인마 명박을 내치자' 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을 하여 논란이 있었는데, 향린교회에서 영결식을 가졌다.

마크 리퍼트 주한미국대사 피습 사건의 가해자 김기종이 이 교회에서 열리는 평화 소모임에 자주 참석한 것도 논란이 되었다.

'김정은 위원장은 위인이다', '나는 공산당이 좋아요' 등 발언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위인맞이 환영단이 2018년 12월 8일 향린교회에서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김원웅 광복회장이 이 세미나에 참석해 축사를 했는데, 해당 축사에서 '박정희 대통령 집안에서 큰 박근혜보다는 일제강점기 항일무장 투쟁한 독립운동가 가문에서 자란 김정은이 낫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조헌정 전 향린교회 담임목사는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행사에서 "하루속히 남북의 대결 상황을 끝내고 미국의 조종으로부터 벗어나서 평화적 통일을 이룩해야 한다"고 발언하였다.

천안함 피격 사건 발생 이후인 2010년 5월 25일에 향린교회에서 '천안함 침몰사건 관련 사회단체 비상시국회의 및 기자회견'을 개최해, 북한이 아닌 대한민국 정부와 당시 여당을 비판하였다.
조헌정 목사는 2018년 '북한 어뢰 공격이라는 정부의 천안함 사건 조사결과에 대한 의구심이 해소되지 않았다'며 재조사를 요구하는 등 천안함 음모론에 불을 지폈다.

4. 관련 문서



[1] 직전 담임목사는 김희헌 목사이다.[2]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는 한국의 장로회 교단 중 상당히 진보적인 교단이다. 이 교단의 대표적인 목회자가 바로 문익환 목사다.[3] 향린교회는 대교회주의를 지양하는 안병무 선생의 정신을 계승하여, 교인 수가 일정 이상으로 많아지면 교회를 분립하여 개척하는 '분가 선교'를 지향한다.[4] 서울 송파구 동남로24길 37 (오금동 158-14) 소재.[5] 서울 강동구 천호대로 991 (천호동 456-9) 소재.[6] 서울 은평구 증산로17가길 15-7 (신사동 349-1) 소재. '스테이션 사람(인권재단)' 건물에 입주해 있다.[7] 국악 찬송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곡이 '어허라디야 상사디야'라는 노래다. 이 노래는 비단 향린교회뿐 아니라 다른 교회에서도 자주 부르며, 우리 전통 노동요와 같은 메기고 받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노래를 만든 이건용 교수는 사실 성공회 신자다. 그래서 이 노래는 성공회 성가에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