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씨
Johnston. 영미권의 성씨. 유래는 스코틀랜드의 지명이라고 한다.- 조 존스턴 - 미국의 영화감독
- 조셉 E. 존스턴 - 미국 남북전쟁 당시 남부연합군 장성
- 앨버트 시드니 존스턴 - 미국 남북전쟁 당시 남부연합군 장성
- 레지널드 존스턴(Reginald F. Johnston, 중국명 장사돈莊士敦) - 대영제국의 관료이자 청나라 마지막 황제인 선통제의 영어교사(제사)
2. 미국 해군의 함선
이름은 남북 전쟁 당시 활약한 미국 해군의 수병 존 V. 존스턴(John V. Johnston)에서 따온 것이다.2.1. 플레처급 구축함 DD-557 존스턴
1943년에 취역했다. 1944년에 클리프턴 스프레이그 소장이 지휘하는 태피3에 소속되어 레이테 만 해전에 참전했다가 격침당했는데 이 때의 영웅적 일화로 유명하다.
태피 3는 야마토와 나가토를 위시한 일본의 주력 함대(구리다 함대)에 맞서야 했다. 본래 이 임무는 윌리엄 홀시의 3 함대 소관이었으나 홀시는 일본군에게 낚여 즈이카쿠의 목을 따러 북쪽으로 저 멀리 떠나있었다.
당시 상황은 미국은 전함 0척, 주력항모 0척, 순양함 0척. 구축함 3척, 호위구축함 4척, 지상 공격용 호위항모라고 해봐야 고작 여섯척뿐이었으며, 일본은 야마토급 전함 1척, 나가토급 전함 1척, 공고급 순양전함 2척, 모가미급 중순양함 2척, 그외 구축함, 경순양함 등등으로 이루어진 27척의 연합함대로 전투에 참전한 모든 미국 함선의 배수량을 전부 합쳐야 야마토 하나와 비등비등했다. 화력도 열세에 포탄까지 부족해 포격전에서 이길 가능성이 없었는데 철수 허가마저 거부당해 그들의 운명은 바람 앞의 촛불과도 같았다.
그나마 일본 함대에는 항모가 한 대도 없어 항공전력에서는 우세했다고도 볼 수 있으나[1], 상륙부대 및 전함의 항공엄호가 주 임무였던 태피 3의 함재기는 함선에 유효한 타격을 줄 수 있는 철갑탄이나 어뢰가 아니라 지상공격용 폭탄과 대잠폭뢰(…)를 탑재하고 있었다. 호위항모에도 앞서 말한 어뢰와 같은 대함 무장이 없진 않았지만, 갑작스러운 적과의 조우로 긴급발진하면서 무장 전환은 커녕 아예 무장 자체를 탑재하지 못한 채로 이함한 기체가 상당수였고 그나마 있던 무장들도 유폭을 방지하기 위해 바다에 폐기하던 상황이었다. 킨케이드가 립서비스로 항공지원을 약속했지만 제 코가 석자인 상황에서 다른 호위항공모함 함대가 항공지원을 보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2].
전투 시작 20분 뒤, 존스턴의 어니스트 에반스 함장은 기함에게서 명령도 받지 않았지만 자발적으로 고작 2700톤짜리 플레처급 구축함 하나를 이끌고 어뢰의 사정거리까지 적함을 향해 홀로 돌진했다.
연막을 흩뿌리며 돌진하는 존스턴을 목표로 포격이 쏟아졌지만 존스턴은 피격되지 않았다. 에반스 함장은 적 포탄이 떨어져 물기둥이 솟구쳐 오르는 방향으로 침로를 변경하면서 적의 사격을 교란하는 동시에 포탄을 피하며 돌진했다. 성공적으로 일본 함대로부터 18,000야드 (약 16 km) 지점까지 접근한 존스턴은 이 시점부터 약 5분 간 주무장이던 5인치 함포 5문을 이용해 모가미급 중순양함 쿠마노를 노려 약 200여 발을 쏘았고, 이 중 최소 45발 이상이 명중하면서 쿠마노에 화재가 발생한다. 이후로도 계속 전진해 10,000야드 (약 9.1 km) 거리에 도달한 존스턴이 10발의 어뢰를 동시에 투발했다. 화재로 인해 어뢰 공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쿠마노의 함수가 어뢰를 맞고 완전히 파괴되면서 쿠마노는 결국 전선에서 이탈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던 모가미급 중순양함 스즈야도 쿠마노를 호위하기 위해 역시 전선에서 이탈했다. 구축함 1척의 뇌격으로 중순양함 2척이 전선에서 이탈한 것이다.
하지만 그 직후 일본군 전함의 포탄 3발이 명중했다. 이 포탄이 야마토급 전함의 18.1인치 철갑탄 3발이라는 설도 있고 중순양함의 8인치 포탄이라는 설도 있지만[3] 큰 타격을 받았다는 사실은 분명했다[4]. 직후 야마토의 6인치 포탄들이 함교에 명중해 추가 피해를 입었다. 이 과정에 에반스 함장이 손가락 두 개를 잃었다. 엔진 두 개가 꺼지고 포탑이 멈췄으며, 조준에 필요한 컴퍼스까지 문제가 생긴 상태였다. 이 시점에서 존스턴은 연막을 살포했고, 때마침 스콜까지 시작되어 일본 함대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렇게 그 분처럼 정비할 시간을 번 존스턴은 약 10여 분간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1번, 2번 포탑의 동력을 복구할 수 있었다. 3번 포탑은 동력을 복구할 수 없어 수동조작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후 함대로 복귀하던 에반스 함장과 존스턴의 옆으로 뇌격을 위해 일본 함대로 향하던 USS 호엘과 USS 히어만, 그리고 호위구축함인 USS 사무엘 B. 로버츠가 지나갔다. 존스턴은 이들을 따라 다시 일본 함대를 공격하기 위해 침로를 변경했다. 묘코급 중순양함 하구로와 포화를 주고받으며 일본 함대에 접근한 네 척의 미군 구축함은 모두 어뢰를 투발한 후 연막을 살포하고 계속 포격을 주고받으며 남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연막 속에서 히어만과 존스턴이 서로 위험한 거리까지 근접했으나 충돌은 간신히 면했다.
직후 7,000야드 (6.4 km) 거리에 있던 공고급 순양전함 공고를 포착한 존스턴은 약 30여 발을 발포해 공고를 공격했고, 공고의 응사를 모두 회피했다. 다음으로 존스턴이 포착한 것은 기동력을 상실하고 좌현 현측 방향으로 기울어진 채 일본 함대의 집중공격을 받고 있던 갬비어 베이였다. 존스턴을 포함한 미군 구축함들은 갬비어 베이를 보호하기 위해 다시 일본 함대를 공격했다. 존스턴은 가장 먼저 치쿠마를 공격해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호엘은 공고의 주포와 야마토의 부포 사격으로 격침당하고, 히어만과 사무엘 B. 로버츠가 치쿠마와 지근거리에서 치열하게 치고받느라 다른 곳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는 상황이었는데, 아가노급 경순양함 야하기가 이끄는 6척의 구축함으로 이루어진 뇌격전대가 존스턴에 접근하면서 존스턴도 이들을 지원할 수 없게 되었다.
존스턴은 해당 뇌격전대의 전면을 가로질러 이동하면서 뇌격전대 함선들이 전방 함포만 사용할 수 있게 유도하려 했으나 의도를 인지한 일본군 뇌격전대가 변침하면서 시도가 무위로 돌아갔다. 이 과정에 존스턴이 야하기를 상대로 명중탄을 냈지만 뒤따른 야하기의 응사에 심각한 피해를 입어 포탑 동력을 상실했고, 화재로 인해 에반스 함장을 비롯한 함교 요원들이 함교에서 탈출해야 했다.
이 시점에도 존스턴은 포기하지 않았다. 야하기의 관심이 미군 함재기들에 쏠린 상태에서 뒤따르던 일본군 구축함들을 상대로 공격을 시도한 것이다. 물론 숫적 열세로 인해 존스턴은 곧 완전히 무력화되었고, 결국 9시 45분 에반스 함장이 함을 포기하기로 결정하고 이함 명령을 내렸다. 10시 10분부터는 존스턴이 침몰하기 시작했는데 일본군 구축함이 접근해 발포하여 완전히 격침시켰다. 에반스 함장은 이함 과정에 실종되었다.
이 전투에서 이런 활약을 보여준 것은 존스턴뿐만이 아니었다. 태피 3 전체가 필사적으로 일본 함대를 저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 했고, 결국 일본군은 레이테 만으로 진입하지 못했다. 호위항공모함들은 도망가면서도 모든 화력을 구리다 함대에 퍼부었고, USS 호엘은 용감하게 싸우다가 일본군에 포위당해 40발 이상의 포탄을 맞아 침몰했고, 사무엘 B. 로버츠는 포탄이 떨어지자 조명탄까지 쏴대면서 최후까지 분전하다가 격침되었다. 특히 USS 히어만은 세계 최강의 전함 야마토와 일본의 자랑 나가토를 어뢰로 쫓아냈다![5] 구축함은 대낮에 전함을 이길 수 없다는 상식을 뒤엎은 것이다. 이후 히어만은 일본군 중순양함 치쿠마와 토네와 교전했고, 일본 함대의 집중포화를 맞으면서도 끝까지 버틴 끝에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에반스 함장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후 수십년이 지난 2021년, 빅터 베스코보라는 탐험가에 의해 심해 6500m에서 발견됐다. 그는 "배가 너무 깊은 곳에 있어 찾기가 쉽지는 않았다"면서 "당시 격렬했전 전투의 흔적이 남아있었으며 해양생물로 인한 약간의 오염도 보였다"고 밝혔다. 이어 "뱃머리 양쪽에서 선체번호 557이 선명히 보였으며 탐사 과정에서 유골이나 의복 등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다. # 유골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소식에 인터넷에서는 어니스트 에반스 함장이 함체에서 기어나와 지옥의 악마와 싸우러 갔다고 말하면서 그의 용맹을 기렸다.
하지만 이후 2022년 6월 22일에는 같은 해전에서 격침당한 새뮤얼 B. 로버츠(DE-413)가 수심 6,895m에서 발견되어서 존스턴의 기록은 깨졌다.#
2.1.1. 전함소녀의 캐릭터
DD-557 존스턴이 의인화되었다. 존스턴(전함소녀) 참조.2.1.2. 함대 컬렉션의 캐릭터
DD-557 존스턴이 의인화되었다. 존스턴(함대 컬렉션) 참조.2.2. 기어링급 구축함 DD-821 존스턴
1945년에 취역하여 대서양 함대에 소속되어 있었다.1981년에 중화민국 해군에 매각되어 정양(正陽)이라는 이름으로 재취역했으며, 2003년에 퇴역해 2006년에 표적함으로 침몰되었다.
[1] 카사블랑카급 호위항공모함은 한 척당 최대 28기의 함재기를 탑재한다. 물론 최대로 꽉 채우고 다니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약 120~130기 정도의 항공전력을 보유했다고 보면 된다.[2] 결국 전투 중반이 지나서야 태피 2의 항공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3] 흔히 공고의 14인치 주포라 알려졌으나 이는 사학계에서 사장되었다. 미 측에서 일본측 자료와 교차검증해보니 공고는 당시에 아무 함선에도 발포하고 있지 않았으며, 사마르에서 그나마 잘 싸운 일본 전함이기는 커녕 미 측에서 다른 함선들을 공고로 오인해 전과가 잘못 기여되었음이 밝혀졌다.[4] 영문 위키피디아에서는 야마토가 존스턴을 순양함으로 착각해 철갑탄을 전포문 일제사로 발포했는데 이 중 세 발을 맞은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5] 히어만의 뇌격이 야마토와 나가토를 향해 달려들었고 이 둘은 이 어뢰를 회피하기위해 변침하였으나 그대로 진행하는 어뢰 사이에 침로가 끼어버리는 바람에 어뢰를 따라 전장을 이탈하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