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lbgcolor=#ddd,#000><colcolor=#000,#ddd> 존 로 John Law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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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 | 1671년 4월 21일 스코틀랜드 왕국 에든버러 |
| 사망 | 1729년 3월 21일 베네치아 공화국 베네치아 |
| 국적 | |
| 직업 | 경제학자 |
1. 개요
John Law (1671년 4월 21일 ~ 1729년 3월 21일)스코틀랜드의 경제학자. 중앙은행의 설립을 주장했으며, 화폐는 교환의 수단일 뿐이며, 스스로 부를 창출해 내지 않는다는 현대적 개념을 실증 및 실천하였다.
2. 생애
1671년 4월 21일 스코틀랜드 파이프(Fife)의 은행가[1], 금세공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23세에 런던에 정착하여 상류층과 외국인이 주고객인 살롱에 드나들며 도박을 즐긴다.1694년 4월 9일 에드워드 윌슨(Edward Wilson)과 런던 블름스베리 광장에서 결투를 벌여 윌슨을 살해한다. 체포된 뒤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벌금형으로 감형된다. 윌슨 가문의 격렬한 항의 및 로비로 다시 구금되었으나, 탈옥하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간다.
암스테르담 은행[2], 동인도회사 금융혁신의 현장 목격한 존 로는 고국으로 돌아가 1705년 스코틀랜드 의회에 "은행이 기존 금속 주화를 대체할 화폐 성격의 이자부 어음증서를 발행해야 한다"는 새로운 은행법안을 제출하였으나 기각되었다. 그러자 존 로는 프랑스 파리로 간다.
1715년 루이 16세가 사망하고 섭정 오를레앙 공작 필리프 1세가 집권하자 존 로는 국가 재정난 해결을 위해 등용되었다. 1716년 일반은행(Banque Générale)을 설립하여 지폐를 발행했고, 일반은행은 곧 왕립은행으로 승격되었다.
이어 1717년 미시시피 회사(서방회사)를 설립해 루이지애나 식민지 개발과 무역을 추진했으며, 1719년에는 여러 식민회사를 통합해 영구 인도회사를 창설하고 세금 징수권과 화폐 주조권까지 확보했다. 그는 은행과 회사를 결합한 대규모 금융체계를 구축해 국채를 회사 주식과 지폐로 전환하면서 국가 부채를 줄이고 경제를 활성화하려 했으며, 1720년에는 재무총감에 해당하는 재정 최고 책임자가 되었다.
그러나 과도한 지폐 발행과 투기 열풍으로 회사 주가는 40배 가까이 폭등했고, 귀금속으로 교환하려는 요구가 폭증하면서 은행은 지급 능력을 상실했다. 결국 1720년 '로 시스템'은 붕괴하여 역사상 최초의 대규모 금융 버블과 증권시장 붕괴 가운데 하나로 기록되었으며, 수많은 투자자가 파산하고 프랑스 사회는 종이화폐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
파산 후 존 로는 프랑스를 탈출해 베네치아로 망명했고, 섭정의 사후에는 프랑스 입국이 금지되었다. 이후 영국 총리 로버트 월폴의 비공식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말년에는 베네치아에서 도박과 임시 수입으로 생계를 이어가다 1728년 몽테스키외를 만나 교류했으며, 1729년 급성폐렴으로 사망했다.
3. 소설
존 로의 전기소설 또는 역사소설 : 클로드 쿠니에 저, 두행숙 옮김 《거대한 도박》1장 결석, 제거 수술
2장 유언장
3장 게임머니
4장 무의미하지도 사소하지도 않다
5장 천재적 사교술
6장 결투, 런던 탈출
7장 야망과 추방의 사이
8장 복권(福券)
9장 이념 낳는 남자
10장 태양왕의 비애
11장 마지막 산통(産痛)
12장 거대한 도박과 거대한 음모
13장 100만 명의 백만장자
14장 예고된 버블
15장 백만송이의 찻잔
16장 마지막, 카니발
4. 여담
영국 내에서는 이름과 성씨를 같이 부르기 쉽다는 것으로 유명세를 얻었으나 본인은 매우 싫어했으며 여러 결투들중 이런 놀림과 시비가 주요 싸움 시작의 원인이었다고 한다.로베스피에르를 존경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