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1972년부터 1998년 사이에 존재했던 북한의 '최고주권기관의 행정적 집행기관'인 정무원의 책임자.2. 법적근거
2.1. 1972년 헌법
사회주의 헌법 제5장 최고인민회의 제103조 최고인민회의는 다음과 같은 권한을 가진다. 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석의 제의에 의하여 정무원 총리흘 선거 및 소환한다. 제7장 중앙인민위원회 제76조 중앙인민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임무와 권한을 가진다. ⑦ 정무원총리의 제의에 의하여 부총리, 각 부장, 그 밖의 정무원 성원들을 임명 및 해임한다. 제8장 정무원 제76조 정무원은 총리, 부총리, 부장들과 그밖에 필요한 성원들로 구성된다. 제110조 정무원은 전원회의와 상무회의를 가진다. 정무원 전원회의는 정무원 성원 전원으로 구성하며 정무원 상무회의는 총리, 부총리와 그밖에 총리가 임명하는 정무원성원들로 구성된다. 제113조 정무원은 자기 사업에 대하여 최고인민회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석, 중앙인민위원회 앞에 책임진다. |
2.2. 1992년 헌법
사회주의 헌법 제6장 국가기구 제1절 최고인민회의 제91조 최고인민회의는 다음과 같은 권한을 가진다. ⑭ 내각총리의 제의에 의하여 내각 부총리, 위원장, 상 그 밖의 내각성원들을 임명한다. ⑮ 정무원총리의 제의에 의하여 정무원 부총리, 위원장, 부장 그밖의 정무원성원들을 임명한다. 제4절 중앙인민위원회 제125조 중앙인민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임무와 권한을 가진다. ⑦ 최고인민회의 휴회중에 정무원총리의 제의에 의하여 부총리, 위원장, 부장, 그밖의 정무원성원들을 임명 또는 해임한다. 제5절 정무원 제125조 정무원은 총리, 부총리, 위원장, 부장들과 그밖에 필요한 성원들로 구성한다. 정무원의 임기는 최고인민회의 임기와 같다. 제127조 정무원은 전원회의와 상무회의를 가진다. 정무원 전원회의는 정무원성원 전원으로 구성하며 정무원상무회의는 총리, 부총리와 그밖에 총리가 임명하는 정무원성원들로 구성한다. 제130조 정무원은 자기 사업에 대하여 최고인민회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석, 중앙인민위원회 앞에 책임진다. 제131조 새로 선거된 정무원총리는 정무원성원들을 대표하여 최고인민회의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석앞에 선서를 한다. |
3. 연혁
1972년 12월 27일, 최고인민회의 5기 1차회의에서 사회주의헌법이 채택되면서 기존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수상 직함을 대신하게 되었으나, 김일성이 수상으로 재임하던 시기에 명실상부한 정부수반에 사실상의 국가원수로 기능하던 내각수상과는 달리 주석의 밑에서 행정업무를 대행하는 따까리에 가까웠다. 김일성이 이 자리를 만든 것은 자신이 당과 국가의 일을 동시에 하다보니까 당사업에 소홀해져서 당내 장악력이 약해져 갑산파의 등장을 허용하게 되었고 따라서 자신은 총비서에 집중하고 더 권위가 약한 행정부 수반에게 경제사업을 맡길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김일성이 80년대 내내 불평한 것처럼 국가주석이 계속해서 경제에 개입하여 중앙인민위원회가 사실상의 경제기구처럼 기능하게 되었다.그래도 사실상의 정부수반이고 할일이 많긴 했으므로 역대 정무원총리들은 모두 현역 정치국 위원들이었으며 리종옥의 경우에는 정치국 상무위원까지 달성하였다. 김일은 정무원총리 임명 이전인 1966년 10월, 2차 당대표자회에서 정치위원회 상무위원을 지냈으며 정무원총리 퇴임 후인 1980년 10월, 6차 당대회에서 다시 정치국 상무위원에 선출되었다.
김일, 박성철, 리종옥, 강성산, 리근모, 연형묵 등 총 여섯명의 정무원총리가 존재하였으며 정무원 제1부총리 홍성남은 1997년 2월, 정무원총리 권한대행을 한 바가 있다. 이중에서 강성산만이 유일하게 두차례에 걸쳐서 총리 직무를 수행하였다. 1998년 9월 5일, 최고인민회의 10기 1차회의에서 사회주의헌법이 수정보충되어 김일성헌법으로 거듭나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총리 직함이 규정되면서 폐지되었다.
역대 정무원 총리를 지낸 여섯명 중 김일, 박성철, 리종옥은 모두 부주석에 선출되어 말년까지 좋은 대접을 받다가 갔고, 연형묵은 자강도 책임비서로 강등당하긴 했어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에 선출되고 2005년에 사망했을때 국장이 열리는 등 역시 좋은 대접을 받았다. 권한대행까지 확대하자면 홍성남도 퇴임 이후 함경남도 책임비서를 지내다가 2009년 사망 이후 국장이 열렸다. 하지만 강성산과 리근모는 소리소문도 없이 실종되어버렸으나 2021년 9월에 강성산이 복권되면서 현재는 리근모 혼자만 실종 상태다.
4. 이야깃거리
- 역대 여섯 정무원총리 중에서 김일, 박성철, 리종옥 세 사람이 부주석으로 영전했다. 그리고 박성철, 리종옥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예부위원장으로 유임된다.
- 역대 여섯 정무원총리 전원이 부수상 혹은 부총리를 역임했다. 그중에서 김일, 강성산, 연형묵, 홍성남은 제1부수상, 제1부총리 출신이다. 박성철은 유일하게 제2부수상을 역임했다.
- 역대 여섯 정무원총리 전원이 장관 재직 경험이 있다. 김일은 농업상, 박성철은 외무상 및 인민봉사위원장, 리종옥은 국가계획위원장, 중공업위원장, 금속화학공업상, 광업상, 강성산은 교통체신위원장, 리근모는 기계공업상, 채취공업부장, 연형묵은 금속 및 기계공업위원장을 역임했다. 이중에서 리종옥, 리근모, 연형묵 세 사람이 중공업 분야의 테크노크라트 출신이며 강성산도 중공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수송 문제의 전문가였다는 점에서 북한 정권의 경제적 초점이 어디에 맞춰져 있는지를 알 수 있다.
- 역대 여섯 정무원총리 중 두명(김일, 박성철)이 빨치산 출신이며, 두명(강성산, 연형묵)은 빨치산 2세대이다. 리종옥은 빨치산은 아니지만 북한 건국에 참여한 1세대 엘리트이다.
- 역대 정무원총리 중 최연소 총리는 만 52세 10개월로 총리가 된 강성산이다. 최고령 총리는 만 63세 1개월로 총리가 된 박성철이다.
- 역대 최장기 재임 총리는 3161일, 8년 8개월 간 총리로 재임한 강성산이다. 다만 강성산은 후반기 임기 때 몸이 아파서 제대로 근무를 하지 못했다. 최단기 재임은 1년 8개월 만에 짤린 박성철이다.
- 정무원총리 중 박성철, 연형묵 두 사람이 남한을 방문한 경험이 있다. 박성철은 제2부수상 재임 시절 이후락의 방북에 대한 답방으로 서울을 다녀갔고, 연형묵은 총리 시절에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을 위해 서울에 왔다. 따라서 총리 재임 중 방문한 것은 연형묵이 유일하다. 내각총리 중에서는 김영일이 남북총리회담을 위해서 방남한 적이 있으며, 그외에 박봉주가 남한에 다녀온 적이 있으나 총리 시절이 아닌 화학공업상 재임 시절에 다녀갔다.
- 역대 정무원총리 중 상당수가 함경북도 출신이었다. 김일, 리종옥, 강성산, 연형묵은 함경북도, 리근모와 총리 대리를 지낸 홍성남은 평안북도 출신이었다. 박성철 혼자서 경상도 출신으로, 역대 북한 모든 총리를 다 합쳐서 유일한 남한 출신이다.
5. 역대 정무원총리
성명 | 임기시작 | 임기종료 | 비고 |
최고인민회의 5기 1차 회의 (1972년 12월 28일) | |||
김일 | 1972년 12월 28일 | 1976년 4월 29일 | 내각 제1부수상에서 승진 제1부주석으로 조동 |
최고인민회의 5기 6차 회의 (1976년 4월 29일) | |||
박성철 | 1976년 4월 29일 | 1977년 12월 15일 | 정무원 부총리에서 승진 부주석으로 조동 |
최고인민회의 6기 1차 회의 (1977년 12월 15일) | |||
리종옥 | 1977년 12월 15일 | 1982년 4월 5일 | 정무원 부총리에서 승진 |
최고인민회의 7기 1차 회의 (1982년 4월 5일) | |||
리종옥 | 1982년 4월 5일 | 1984년 1월 27일 | 부주석으로 조동 |
최고인민회의 7기 3차 회의 (1982년 4월 5일) | |||
강성산 | 1984년 1월 27일 | 1986년 12월 29일 | 정무원 제1부총리에서 승진 함경북도 책임비서로 조동 |
최고인민회의 8기 1차 회의 (1986년 12월 29일) | |||
리근모 | 1986년 12월 29일 | 1988년 12월 12일 | 비서국 비서에서 조동 숙청 |
최고인민회의 8기 4차 회의 (1988년 12월 12일) | |||
연형묵 | 1988년 12월 12일 | 1990년 5월 24일 | 비서국 비서에서 조동 |
최고인민회의 9기 1차 회의 (1990년 5월 24일) | |||
연형묵 | 1990년 5월 24일 | 1992년 12월 11일 | 자강도 책임비서로 조동 |
최고인민회의 9기 4차 회의 (1990년 5월 24일) | |||
강성산 | 1992년 12월 11일 | 1998년 9월 5일 | 함경북도 책임비서에서 조동 최고인민회의 10기 1차 회의에서 직함 폐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