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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6-28 13:02:29

제5회 (신)명인전

1. 개요2. 최종 예선3. 출전 기사 명단4. 본선 리그
4.1. 도전자 결정전 플레이오프
5. 도전 7번기

1. 개요

1979년 12월부터 1980년 11월까지 진행됐던 명인전.

파일:조치훈과오타케.jpg[1]

2. 최종 예선

1조 우시노하마 사쓰오 하네 하네 하네 야스마사
하네 야스마사
미야모토 요시히사 아베
아베 요시테루
우시쿠보 요시타카 우시쿠보 후지사와
미야자와 고로 하시모토
하시모토 요시미
후지사와 히데유키 후지사와
히사이 게이시
2조 야마시로 히로시 야마시로 야마시로 야마시로 히로시
나가하라 요시아키 나가하라
스기우치 마사오
도키모토 하지메 소노다
소노다 유이치
다카기 쇼이치 다카기 다카기
이시이 마모루 가타오카
가타오카 사토시
이시다 요시오 기요나리
기요나리 데쓰야
3조 이와타 다쓰아키 구도 이시이 고바야시 고이치
구도 노리오 구도
사토 마사하루
이시이 구니오 이시이
호시가와 노부아키
이케도 가즈미 고바야시 고바야시
고바야시 고이치
나카무라 히데히토 도노
도노 히로아키

3. 출전 기사 명단

타이틀 보유자 출생 년도 출생지 리그 출전 횟수 우승 경력 도전기 패배 경력
오타케 히데오 九단 1942년 5월 12일 후쿠오카현 12회 연속, 총 12회 출전 4회 1회
이름 출생 년도 출생지 리그 출전 횟수 우승 경력 도전기 패배 경력
사카다 에이오 九단 1920년 2월 16일[2] 도쿄도 6회 연속, 총 15회 출전 2회 4회
가토 마사오 九단 1947년 3월 15일[3] 후쿠오카현 4회 연속, 총 4회 출전
다케미야 마사키 九단 1951년 1월 1일 도쿄도 2회 연속, 총 2회 출전
린하이펑 九단 1942년 5월 6일 대만 17회 연속, 총 17회 출전 8회 4회
조치훈 八단 1956년 6월 20일 한국 4회 연속, 총 4회 출전
하시모토 우타로 九단 1907년 2월 27일[4] 오사카부 7회 연속, 총 8회 출전
고바야시 고이치 九단 1952년 9월 10일 홋카이도 첫 출전
하네 야스마사 八단 1944년 6월 25일 미에현 첫 출전
야마시로 히로시 六단 1958년 8월 12일 야마구치현 2회 연속, 총 2회 출전

4. 본선 리그

서열 이름 사카다 가토 다케미야 하시모토 고바야시 하네 야마시로 결과
1 사카다 에이오 九단 X O X X O X X O 3 5 6위
2 가토 마사오 九단 O X O X O O O O 6 2 [A]
3 다케미야 마사키 九단 X O X X O O O O 5 3 3위
4 린하이펑 九단 O X O O O X X O 5 3 4위
5 조치훈 八단 O O O X O X O O 6 2 [A]
6 하시모토 우타로 九단 X X X X X O O X 2 6 탈락
7 고바야시 고이치 九단 O X X O O X O O 5 3 5위
7 하네 야스마사 八단 O X X O X X X X 2 6 탈락
7 야마시로 히로시 六단 X X X X X O X O 2 6 탈락

4.1. 도전자 결정전 플레이오프

일정 승자 패자 결과
8월 21일 목요일 조치훈 가토 마사오 흑 4집반승

5. 도전 7번기

대국 구분 일정 승자 패자 장소 결과
1국 9월 10, 11일 수, 목요일 조치훈 오타케 히데오 도쿄도 시부야구 백 불계승
2국 9월 17, 18일 수, 목요일 조치훈 오타케 히데오 효고현 다카라즈카시 흑 불계승
3국 10월 1, 2일 수, 목요일 오타케 히데오 조치훈 시즈오카현 이즈나가오카정[7] 흑 불계승
4국 10월 8, 9일 수, 목요일 무승부 아이치현 나고야시 [8][9]
5국 10월 22, 23일 수, 목요일 조치훈 오타케 히데오 시즈오카현 이즈시 흑 불계승
6국 11월 5, 6일 수, 목요일 조치훈 오타케 히데오 시즈오카현 아타미시 백 1집반승
7국 11월 19, 20일 수, 목요일 - 가나가와현 유가와라마치 -

조치훈, 첫 명인 등극!


[1] 우측 도전자 조치훈이 명인 타이틀을 획득하는 순간이다. 좌측은 오타케 히데오.[2] 2010년 10월 22일 타계[3] 2004년 12월 30일 타계[4] 1994년 7월 24일 타계[A] 도전자 결정전[A] 도전자 결정전[7] 현재는 이즈노쿠니시[8] 원래 규정대로라면 2대1로 앞선 4국에서 흑을 잡은 조치훈의 반칙패가 돼야 하는 게 맞지만, 무난하게 두던 와중 갑자기 팻감을 써야 할 차례라는 걸 잊어버려 기록자에게 지금 패를 두어도 되냐고 질문해버린다. 그런데 이걸 또 기록자였던 히코사카 나오토 (당시)四단 두어도 된다고 답하는 바람에 조치훈이 정말로 팻감을 안 쓰고 패를 되따내 버렸다. 원래대로면 조치훈에게 반칙패가 선언되어야 할 상황이었지만 사태를 만들어낸 심판에게도 책임이 컸기 때문에 갑론을박 끝에 대국은 무승부로 결론지어진다.[9] 당시는 이를 제재하는 규정도 없었을 뿐더러 기록자도 어느 정도 용인해주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해당 사건이 터진 이후 착수와 관련된 질문은 금지하는 조항이 추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