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방어사령부 후신(後身)에 대한 내용은 해병대 제9여단 문서
, 제주 해군기지에 대한 내용은 제주 해군기지 문서
참고하십시오. 제주방어사령부 濟州防禦司令部 Jeju Defense Command | ||||||
도민과 함께하는 제주방어사령부 | ||||||
창설일 | 1947년 6월 21일(조선해양경비대 제주수영) 1962년 10월 15일(해군통합사령부) 1974년 1월 28일(제6해역사령부) 1986년 2월 1일(제주방어사령부) | |||||
해체일 | 2015년 11월 30일 | |||||
상징명칭 | 해군 제주기지 | |||||
약칭 | 제방사 | |||||
소속 | 대한민국 해군 | |||||
상급부대 | 제3함대 | |||||
역할 | 제주도 방어 | |||||
초대 사령관 | ||||||
해체 전 사령관 | 해병 준장 김승호(해사 41기) | |||||
위치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
[clearfix]
1. 개요
2015년 12월 1일부로 해체된 대한민국 해군 제3함대 소속 부대. 제주도를 방어하는 해역사령부였다. 제주 지역에 거주하는 보충역(사회복무요원 등)이나 대체복무자 등의 기초군사훈련 4주도 여기서 진행했었다. 현재는 제9해병여단에서 진행한다.[1]
2. 상세
제주도에 육군과 공군은, 한 달씩 전지훈련 하러 대대마다 돌아가면서 오는 특전사와 공군 관제부대만 있기 때문에, 제주 방어를 책임지고 있는건 이 제방사와 제주특별자치도경찰청(의경들)이다. 육군이 없는 이유는 1982년 도서방어를 육군에서 해군으로 이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찰과 제방사가 해안 경계를 전담한다.[2] 정확히는 제3공화국에서 전투경찰을 대간첩 작전 목적으로 창설 후 간첩 침투가 쉬운 외딴 섬과 같은 해안선에 전투경찰을 배치했다. 이후 전투경찰의 목적이 유신 말년에 시위 진압으로 바뀌면서 육군이 해안선에 들어가고 제주도, 울릉도, 독도만 해안선에 전투경찰이 남았다가 다시 1982년 도서 경계가 대한민국 해군으로 이관된다. 그래서 제주도 전경대는 울릉도.독도와 함께 여전히 해안경비단을 두며 이는 전경 유일의 대대급 부대이다. 본토의 해안경계 역시 해군.해경력의 강화와 북 해군의 연료 문제로 인한 후방침투 불가 그리고 중국 및 러시아와의 수교로 조선족, 고려인으로 우회 침투가 가능해지면서 위조여권을 중국, 일본 등에서 대량으로 만들어 뿌려 우회 침투하는 것을 택하면서 제2작전사령부는 전남 및 경남 남해안만 좀 제대로 경계하고 해운대나 광안리 등 부산은 철수하고 3함대와 해양경찰에 해안경계를 넘긴다. 더구나 해병 신속대응부대가 해병대 제9여단이 생기면서 전남 남해안의 유.무인도서 및 해안선 순찰도 해병대가 단계적으로 넘겨 받는 중이다. 즉 도서 경계는 전경-육군-해군 순으로 소관이 이관되었고, 그 과정에서 잔류한 제주 전경대가 해안경계 주 전력이었던 셈. 이 부대도 해병대 제9여단 창설 이후 해안경계를 대한민국 해병대에 넘기고 전경 폐지로 단계적 해체가 예정되어 있었다.사령부는 제주시에 위치하며 예하에 해군 301방어전대와 해병 91, 92, 93대대가 있다. 해군항공사령부 산하 615비행대대와 비행대소속 P-3CK가 상시 주둔하는데, 별도의 군용비행장이 없어 제주공항을 빌려 쓰고 있으며, 병 생활관은 제방사가 지원한다. 가끔 제주도 민항 구석에 3함대 FF나 PCC 한 두 척이 들어와 있기도 한다. 특별히 상부에서 제방사령관에게 이들 함정이나 항공기를 예하로 쓰게 해주지 않는 한, 이들은 제방사가 아닌 소속 전단/함대의 지휘를 받으며 제방사의 지휘 계통에선 빠져있다.
3. 상징
3.1. 부대가
한라산 높이 솟은 영봉의 산하
조국의 부름받고 모여든 우리
충무공 호국 정신 가슴에 안고
자유와 평화위해 맺어진 전우
우리는 자랑스런 탐라의 방패
이 한 몸 바치리라 제방사 건아들
조국의 부름받고 모여든 우리
충무공 호국 정신 가슴에 안고
자유와 평화위해 맺어진 전우
우리는 자랑스런 탐라의 방패
이 한 몸 바치리라 제방사 건아들
4. 역사
- 1947년 6월 21일 - 조선해안경비대 제주수영 창설
- 1950년 12월 11일 - 해군본부 직할 해군제주기지 창설
- 1962년 10월 15일 - 통합사령부 창설(육·해·공군)
- 1972년 3월 27일 - 현 위치로 이전
- 1974년 1월 28일 - 제6해역사령부 창설, 육·공군부대 해체
- 1986년 2월 1일 - 제3함대사령부 예하 제주방어사령부로 개편
- 2015년 11월 30일 - 제주방어사령부 해체, 제주기지전대 및 해병대 제9여단 창설
5. 출신 인물
5.1. 병
- 고창섭 - 충북대학교 총장
1988년 8월 1일 독자 방위병 입대, 기본보병으로 복무, 1989년 1월 31일 일병 소집해제.
- 부준혁 - 서울특별시 노원구의회 의원
1997년 2월 3일 해군 이병으로 입대하여 이곳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하였다. 이후 1999년 6월 2일 소집해제.
- 송재호(제6해역사령부) - 제21대 국회의원
1982년 11월 10일 방위병 입대, 소총병으로 복무, 1984년 2월 18일 일병 소집해제.
- 오영훈 - 민선 8기 제주특별자치도지사, 제20·21대 국회의원
1990년 1월 15일 방위병 입대, 소총병으로 복무, 1991년 6월 25일 상병 소집해제.
- 이상봉 -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의원
1992년 7월 6일 방위병 입대, 소총병으로 복무, 1993년 12월 17일 상병 소집해제.
- 현길호 -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의원
1987년 3월 16일 독자 방위병 입대, 소총수로 복무, 1987년 9월 16일 이병 소집해제.
6. 역할 및 전력
해상전력이 거의 없고, 북한과 가장 먼곳이다보니 최전방의 제2함대와는 정반대의 근무여건을 가지고 있다. 정말 아무 일 없이 지나가는 날도 많고, 가끔 걸리는 상황이란 것도 해안가에 전마선이 떠밀려와서 대공 용의점 등이 없는지 조사하거나(거의 대부분 중국어선이 작업용으로 끌고다니다 떠내려온 거다.), 산불같은 재해상황에 지원나가거나, 한밤중에 선외기 같은 소형 어선을 미확인 선박으로 오인하거나 아니면 해난사고 수습하는 해양경찰 지원해 주는 것 같은 자잘한 일이 절대다수다. 애초에 사령부에는 R/D가 없이 해상상황을 실시간으로 감시하는게 불가능해 해상 감시/작전 업무는 사실상 예하 301 방어전대가 담당하고 제방사 지통실은 그냥 보고받고 결정내리는게 다다. 해상세력이 없어 해경과의 협조가 굉장히 중요한데 제주, 서귀포 해경서는 해군 세력 약하다고 무시하기 일쑤라 작전을 담당하는 제방사 지통실이나 301전대 전탐 간부들은 해경 욕하는게 일상이다.그러다 보니 간부들 마인드부터 조금이라도 수상하면 무조건 확인하는 전방하곤 다르고, 훈련도 반쯤은 가라로 떼우는[3] 경우가 많아 작전관련 부서에서 근무하는 수병들 사이에선 진짜 북한 특작부대가 침투해도 모를거라는 자조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이 때문에 해병대 제1해병사단의 1개 중대가 로테이션으로 제주도에 와서 해병대 기동타격대(이하, 기타대)에 주둔하며 비상 상황에 대비한 신속대응부대의 역할을 맡고, 주 전투경찰대와 협조하여 해안선 방어도 한다.
이렇게 지상작전은 해병대가 주로 담당하나 예하 3개 대대와 사령부 인원까지 합쳐도 넒은 제주도 땅을 커버하기엔 어림도 없기 때문에 전시 주 지상전력은 전투경찰과 향방예비군이었다. 때문에 제주도 해병들의 실제 주업무는 예비군들을 소집하고 훈련, 지휘하는 일이었다. 실제로 울릉도나 영종도, 가덕도 등 국내 도서 대다수는 전시 소집될 예비군을 주축으로 방어작전을 계획한다. 해병대 제6여단만 해도 주 전력 중에 엄연히 백령도 향방예비군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제방사 해체 및 해병대 제9여단 창설로 지상작전은 100% 대한민국 해병대가 넘겨 받았으며 신속대응부대도 창설해서 제주는 물론 전남 서남해안 전체에 대한 방어력을 제공한다. 육군의 부담이 줄어든 건 덤.
제주기지전대 공사가 시작되고 나선 홍보와 행사, 강정마을 대민지원도 많이 했다.[4] 이 시절 제방사 외 해군 부대 장병들은 강정마을 감귤을 열심히 소모해 줬다.[5]
7. 근무 여건
가장 큰 특징은 해군과 해병대가 함께 근무한다는 점. 사령관은 해병 준장이 부임하며 참모장과 예하 제301방어전대장에는 해군 대령이 부임한다. 정문 위병소에선 해군 헌병과 해병 헌병이 나란히 근무를 한다. 덕분에 해군과 해병대 사이가 전국에서 가장 친밀한 편이고 양군 우호증진 행사도 자주 한다. 물론 돌아서서 뒷담화하는건 변함없지만 친밀한 편이다. 특히 아예 같은 예하부대원들로 섞여 지내는 헌병들은 서로 체육복 섞어입고[6] 생활반서 함께 뒹굴거리기도 한다.[7]
물론 젊은 청년들끼리 부대끼고 살다 보면 트러블이 없을 순 없어서, 제방사 소속 해병이 해군에게 가혹행위와 구타를 심하게 당해 그 충격으로 피해 해병이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사건이 벌어져서 뉴스에 보도되기도 했다.기사
해군에게는 천국 같은 곳이었지만 해병에게는 지옥 1번지의 꽤 빡센 부대였다. 해상세력이 없다시피한 해군 땜에 해병대가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해병대 제9여단으로 확대된 현재는 인원 및 장비라 증원되었고, 해군도 주력부대를 제주도로 이전시켜서 부담이 적어졌다.
2011년 새로 부임한 사령관이 한라전투원이란걸 만들었는데 이른바 전투형 군대에 맞추어 체력검정(종목은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3km달리기. 모두 3급 이상이면 합격[8])과 소병기 분해결합, 응급처치, 화생방복 착용, 정훈 등의 과목을 교육시켜(상술한 과목은 해군 기준이고 해병은 여러가지로 과목이 훨씬 많았다.) 숙달된 전투원을 육성한다는 것인데 간부부터 말단 수병까지 해군중에 이거 좋아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합격 하지 않으면 외박을 못나가게 막아버리는 탓에 모두 속으로 투덜거리며 합격했다. 평가 자체는 어려운게 아니었지만 합격한다고 끝나는게 아니라 1년마다 시험을 다시 보게하고 평가하기 한참 전부터 외박을 통제해서 휴가 계획을 다 꼬아버리는 탓에 수병들은 사령관 욕을 엄청했다. 물론 해병대원들은 어차피 익숙했던 거라 잘만 했다. 아무래도 수병들보단 해병들이 더 육상전투에 익숙해서 일어난 현상 같다. 수병들은 헌병 등을 제외하면 전역피복으로 받는 얼룩무늬 전투복도 군인은 모두 얼룩무늬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이 사령관의 지론으로 전입하는 수병들 모두에게 보급되었다. 이전부터 해군 수병은 해상병전투복(샘브레이/덩거리)만 지급받되 도서 지역 전입자는 육전시 얼룩무늬 전투복과 전투모, 전투화를 받아왔으나, 제방사는 후방 부대로 분류돼 도서 방어가 아니라 일반 해역사령부와 동급으로 치고 있어 지급이 안 됐었다.
물론 이런 거 감안해도 근무여건은 편한축에 든다. 후방을 담당한 3함대에서도 최후방에 있는 특성상 매우 널널한 분위기를 자랑하며 해군에선 대표적인 꿀부대, 상병장의 천국이라 불린다. 간부들에겐 장기 안할 간부들 말년 때우거나, 함정에서 고생하다 1~2년 정도 좌천 걱정 없이 쉬어가는 곳으로 최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9] 물론 부대 분위기는 상당히 안 좋았던 것으로 악명높아 멋모르고 여기 인사타서 온 해병장교들이 멘붕하기도 했다.
참고하면 좋을 글: http://demaclub.tistory.com/814 / http://kookbang.dema.mil.kr/kookbangWeb/m/view.do?ntt_writ_date=20140711&parent_no=1&bbs_id=BBSMSTR_000000000005
8. 해체 및 부대개편
2015년 11월에 제주해군기지 건설 1단계가 완료되어 11월 30일부로 부대를 해체 하고 해병대 제9여단으로 재편성되었다.해안경계 및 제주해군기지 방어, 내륙작전 등 지상 방위는 해병대사령부 예하 해병대 제9여단이 창설되었으며, 예하에 91, 92, 93 해병대대를 편성할 예정이다. 제9해병여단은 제방사 시절보다 인원만 늘어나는게 아니라 포병 부대까지 보유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리고 해군 인원들은 역시 새로 창설된 제3함대사령부 예하 제주기지전대에 배속되어, 제주기지 건설이 끝나면 각각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와 부산광역시 해군작전사령부에서 부분적으로 건너올 해군 잠수함사령부와 제7기동전단 예하 함정들의 주둔과 함께 해상 방위 임무를 맡게 된다.
9. 기타
2014년 4월 22일,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의 구난을 위해 출동했던 대조영함의 승조원으로 근무하다 출동 중 사고로 순직한 윤대호 수병의 영결식이 이 곳에서 치러졌다.[1] 보충역, 대체복무자들을 대상으로 하지만 나름 빡세게 진행된다. 상근예비역은 아예 포항가서 해병대교육훈련단에서 똑같이 일반해병이랑 같은 중대에서 동일하게 구르고 빨간명찰 달고 온다.[2] 해군기지가 건설되기 전까진 제주도에 배치된 해군 함정 전력이 굉장히 부실해서 경찰과 대한민국 해양경찰청 및 해병대 제1사단 지원부대의 역할이 상당히 크다. 이곳 전의경들 주업무는 시위진압이 아니라 해안경계이다. 물론 해병대 제1사단 보병 및 포병연대에서 전지훈련 명목으로 경계증원 나오는 해병대원들과 사실상 이 곳에서 해안경계 주력인 대한민국 해양경찰청도 해안경계를 돕는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이 끝나면 해안경계는 완전히 해군 및 해병대로 이관될 예정이다.[3] 애초에 함정이 없으니 제대로 된 해상작전이 불가능하다.[4] 12년까지만해도 반대쪽과 찬성쪽 주민들이 갈라져 대립하고 수병들과 해병들 외출/박시 강정 근처에는 가지 말라고 당부하고(갈만한 곳도 없었지만.) 강정 부근에 집이 있는 수병/해병들은 휴가 나갈때 친척집등에 들러 사복으로 갈아입고 갈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했다. 때문에 해군측에선 주민들의 지지를 늘리고자 수병들과 해병들을 대거 투입해 대민지원을 강화했다. 좀 너그러운 농장주 만난 병들은 일이 힘들어도 늬덜이 뭔죄냐 어느 정도 편의를 봐줘서 그러려니 했지만, 난색한 농장주를 만난 장병들은 물도 제대로 못 마시고 고생만 잔뜩했다.[5] 감귤농장에 대민지원 나갈 경우 판매용 말고 왕이라고 부르는 주스 만들때 쓰는 싸구려 제품을 한박스 정도 담아서 나눠주곤 했다.[6] 이 때문에, 해병 체육복 입고 이발소 갔다가 의자에서 졸고 깨보니, 이발병이 자기 머리를 해병대 돌격머리로 깎아버렸더라는 일화가 모 TV 프로그램에 소개된 적 있다.[7] 다만 해병대와 함께 있다보니 다른 육상 해군 부대들은 신경 쓸 필요없는 훈련이나 점검 같은게 몇개 있어서 해군 수병들이 귀찮아지는 경우가 왕왕 있다.[8] 이게 참 귀찮았던게 본래 1년마다 하는 정기 체력검정이 있는데 이걸 또 만들어서 체력검정을 2번 받아야 했다. 게다가 다른 시험인 소병기 분해결합, 구급법, 화생방, 정훈은 같은 날 치르고 체력검정은 다른 날 치르는데 이 텀이 꽤 길었다. 이 모든 시험을 다 통과해야 외박을 보내주고 실시 한참 전부터 통제해서 수병들은 피같은 연가를 깨거나 외박을 미뤄야 했다.(이 시기 제주도 해군부대는 12주에 5박 6일 외박이 나왔다.)[9] 보통 해군 간부, 특히 전투병과의 장교들에게 후방 기행부대 가라는 얘기는 소수의 정기적인 순환 TO가 아니면 좌천이나 전역 준비하라고 쫓아낸다는 뜻이다. 제방사와 진해기지사령부 정도가 그나마 후방이면서도 진급에 문제없는 자원들이 좀 덜 힘든 일로 쉴 수 있는 곳이다. 물론 해사 출신이 아닌 단기복무하는 사관후보생이나 ROTC 등의 경우는 당연히 좌천이 아니라 오히려 전역 준비하라는 목적에서 보내 준다. 해군 소속 해병대도 전역할 예정인 OCS 출신 단/중기복무 장교들은 해병대교육훈련단이나 해군사관학교, 해병대사령부, 진해기지사령부등에 인사 신청을 근거로 보내며 장기복무 희망자는 사단에서 섬으로 보내는 경우도 있다. 물론 강제로 단기장교를 기행부대로 끌고 가는 경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