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창씨명 | 다이손 치카(乃尊致化)[1] |
초명 | 정치열(鄭致烈) |
자 | 예중(禮重) |
본관 | 연일 정씨[2] |
출생 | 1867년[3] 7월 8일 |
경상도 영천군 자양면 월연동 (현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용산리[4] 월연마을 947번지) | |
사망 | 1942년 9월 24일[5] (향년 75세) |
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보현리 기룡산 |
상훈 | 대통령표창 추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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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2016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독립유공자 정치석·정치우 형제는 8촌 삼종제(三從弟)이다.
2. 생애
1867년 7월 8일 경상도 영천군 자양면 월연동(현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용산리 월연마을 947번지)에서 아버지 정유보(鄭裕保, 1828. 10. 5 ~ 1875. 6. 21)[6]와 어머니 순천 이씨(順天 李氏, 1844. 9. 20 ~ ?)[7] 사이에서 4남 1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1905년 일제에 의해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된 후 1906년 경상북도 영천군에서 12촌 지간의 족형(族兄) 정환직(鄭煥直), 13촌 지간의 족질(族姪) 정용기(鄭鏞基) 부자가 산남의진(山南義陣)을 조직할 때 여러 차례 왕래하며 협조하였다. 정치화는 영천군 지방의 통모자(通謀者)로서 활약했으며, 특히 거사 초기에 의진과 영천군 지역을 여러 차례 왕래하면서 계획을 전달하였고, 군수물자 모집 및 모병에 공헌을 했다.
이후 산남의진이 해산되자 은거하다가 1942년 9월 24일 사망하였다.
2016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유해는 영천시 자양면 보현리 기룡산 아래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