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년? ~ 1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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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한 말의 군벌로 자는 건양(建陽). 연의에서는 형주자사로 되어 있지만, 정사에서의 직위는 병주자사였다.2. 정사 삼국지
사람됨이 거칠고 치밀하지 않았지만 무용을 갖추어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했으며, 병주의 소리 출신으로 남현(南縣)의 현리(縣吏)가 되어 명을 받으면 어려운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급박한 일이 생겨 도적들을 추격할 때는 늘 선두에 섰다.일찍이 여포, 장료 등을 천거했고 북방 일대의 노략질하는 마적들을 토벌해 무공으로 명성을 떨쳤으며, 하진이 환관에게 암살되기 전에 소집을 받은 군벌 중 한 명으로 하진의 부름을 받을 때에는 무맹도위로 지냈고 하진의 지시로 흑산적으로 변장한 군사들을 이끌고 맹진에서 인가와 관청을 불태워 낙양 안을 비추게 했다. 이때에 휘하에 가사마(假司馬)를 부렸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집금오[1]가 되었고, 동탁에게 부추겨진[2] 여포에게 참수당하고 군세도 빼앗겼다.
3. 삼국지연의
소설가 나관중의 착오로 형주자사였다고 언급된다.[3] 하지만 병주와 형주는 매우 멀리 떨어진 곳으로 병주는 후한 최북단에 해당되는 반면 형주는 후한 최남단인 교주의 북쪽에 맞닿아 있다.[4]소제를 폐위하려는 동탁에게 대항해 승리하였으나 동탁에 의해 부추겨진 여포에게 죽고, 군세를 빼앗기고 만다.
원래 여포의 상관이었으나 여포의 양아버지로 각색되었다. 정사에서 여포가 양아버지로 섬긴 건 동탁 뿐인데 여포의 의리 없음을 강조하기 위해서 정원도 양아버지로 설정된 것으로 여겨진다.
4. 미디어 믹스
자세한 내용은 정원(삼국지)/기타 창작물 문서 참고하십시오.[1] 집금오는 왕궁 숙위의 우두머리이니 하남윤과 집금오는 낙양 일대의 병마절도사 급이다.[2]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이때 동탁이 여포를 꼬드기기 위해 자신의 명마인 적토마를 보내주었다고 나오는데 정사에서는 적토마를 보내주었다는 기록이 없다. 또한 정원군 소속의 여포를 동탁군으로 빼내는 역할은 이숙이 담당하였다.[3] 병주와 형주를 헷갈리는 건 한참 후에 사마의가 고평릉 사변을 일으키기 직전에 이승이 형주자사로 부임한다고 말하는 것을 병주자사가 되었다는 것으로 잘못 들은 것처럼 꾸며 노망 연기를 할 때 다시 언급된다. 병주(Bīngzhōu)와 형주(Jīngzhōu)가 중국인 입장에서 대충 들으면 어지간히 헷갈리는 모양이다.[4] 다만 형주는 후한의 수도 낙양의 바로 남쪽이기도 하다. 그냥 형주가 오지게 컸던 것이다. 실제로 형주는 후한 13주 중 가장 큰 익주 다음인 두번째로 넓은 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