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교 Jung Woo Kyo | |
출생 | 1961년 ([age(1961-12-31)]-[age(1961-01-01)]세)[1] |
복무 | 대한민국 육군 |
기간 | 1984년 ~ 2015년 |
임관 | 학사장교 6기 |
학력 | 충북대학교 (토목공학 / 학사) |
최종 계급 | 준장 |
최종 보직 | 제5공병여단장 |
주요 보직 | 제3야전군사령부 공병부장 국방시설본부 건설사업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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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육군의 전 군인.2. 생애
원주고등학교(24회), 충북대학교 토목공학과를 졸업했으며. 학사장교 6기로 공병장교로 임관했다. 국방시설 및 감사분야 전문가로 인정 받았었다. 국방부시설본부 경기남부시설단장을 역임 도중 2013년에 준장으로 임기제 진급했고 제5공병여단장으로 취임했으며, 2015년 12월 15일 전역했다.#공병이라는 군사특기에 학사장교라는 임관구분까지 고려하면 장성급 장교가 된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출세한 것이 된다. 보통 장성급 장교는 보병이 독식하고 남는 자리를 포병이 먹어치우며 그 나머지 병과는 어쩌다 1~2명 정도씩 올라가는 상황이다.
3. 여담
이렇듯 경력만 보면 평범하게 육군 장교로서 명예롭게 전역한 평범한 군인이지만 인터넷상에서 그가 유명해지게 된 계기는 바로 그가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총각, 즉물론 건군기에 소장으로 진급한 뒤에야 결혼한 이종찬 장군의 사례가 있어 역대 최초는 아니다. 참고로 이종찬 장군이 육군참모총장이 되었을 때 부통령이었던 이기붕이 이종찬 장군의 모친을 찾아가 일국의 총참모장이 미혼이면 체면이 서지 않는다고 설득하여 결혼하게 만들었고 한다.[2] 당시엔 막 국군을 창설하고 조직을 정비하는 상황이어서 이종찬처럼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젊은 나이의 장군도 수두룩했기 때문이다. 하여간 종전 이후 사회가 안정화된 이후 이런 사례는 거의 사라졌기 때문에 정우교가 돋보이게 된 것.
거기다가 학사장교 가운데는 처음으로 공병 병과 장군이다. 공병은 진급 상한선이 높지 않은 편이라 육사 출신조차 장군으로 진급하기 힘든데 학사장교 출신으로 장군진급에 성공했다. 또한 군 조직은 아직도 보수적이기 때문에 미혼자보다 기혼자가 진급에서 유리하다. 이런 수많은 난관을 뚫고 진급했기 때문에 정 준장의 장성 진급 비결이 동자공(...)이라는 둥, 진정한 솔로부대 대장이라는 둥 하는 개드립이 흥했다.[3]
조선일보 기사에 따르면 한국전쟁 이후 총각이 장성이 된 경우는 없고 준장(진)이었던 한철용 당시 대령(육사26기)의 사례가 있다. 준장 진급이 확정된 상태에서 결혼식을 올린 것. 한 장군의 경우 준장(진) 상태로 1994년에 결혼했는데 아내가 추순삼 당시 중령(여군27기)이었다. 그래서 준장 진급 때는 기혼자였다. 정우교 준장은 진급일까지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전쟁 이후 첫 총각 장군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