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자 1453 (2012) Fetih 145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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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 <colbgcolor=#fff>액션, 어드벤처 |
감독 | 파룩 악소이[1] |
각본 | 요하네스 로버츠 그렉 루소 |
원작 | 콘스탄티노플 함락[2] |
제작 | 아이셰 게르만[3] |
출연 | 데브림 에빈 이브라힘 셀릭콜 디렉 서베스트 외 |
음악 | 벤저민 월피시 |
제작사 | 아키소이 필름 프러덕션 |
수입사 | 시네마천국 |
배급사 | 티글론 필름 토러스 엔터테인먼트 |
개봉일 | 2012년 2월 16일 2015년 4월 30일 |
상영 시간 | 162분 (2시간 42분) |
북미 박스오피스 | $35,730 |
월드 박스오피스 | $35,797,045 |
스트리밍 | |
상영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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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12년에 튀르키예에서 만들어진 1453년의 콘스탄티노플 함락에 관한 튀르키예 영화. 튀르키예에서 2012년 흥행 1위를 차지했다. 역대 튀르키예 영화 흥행 순위 4위다.#2. 시놉시스
천하를 호령한 두 제국의 불꽃 튀는 전쟁!새로운 역사의 서막이 열린다!
오스만 제국의 지도자 무라트 2세의 아들인 메흐메트 2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새로운 술탄이 된다. 메흐메트 2세는 꿈에서 세계를 정복하라는 계시를 받지만, 그를 불신하는 주위 관료들이 그를 만류한다. 그러나 콘스탄티노플의 황제가 가짜 우호정책으로 술탄을 음해하려 하고, 이에 메흐메트 2세는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기 위해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충실한 신하인 하산의 도움을 받아 원정을 준비한다. 한편 콘스탄틴은 최고의 기술자 우르반을 시켜 대포를 만들려 하지만, 우르반은 메흐메트 2세의 부름을 받고 오스만 제국으로 향한다. 메흐메트 2세는 대군을 이끌고 콘스탄티노플로 향하고, 두 거대 제국의 전쟁이 시작되는데...
좀처럼 무너지지 않는 콘스탄티노플의 3중 성벽 앞에서
술탄 메흐메트 2세가 내린 최후의 결단은...
3. 예고편
[kakaotv(67649206)] |
4. 등장인물
5. 줄거리
줄거리는 일단 거의 천년 전 예언자 무함마드(얼굴이 안 나온다)가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을 예언한다. 메흐메트 2세가 태어난 해에 오스만 제국에서는 과일나무에 과일이 무성히 열려 가지가 휘어지고, 말은 쌍둥이 망아지를 낳으며, 밭에서 이모작이 가능해지는 길조가 나타나는 반면에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선 일식이 일어난다.기술자 우르반은 똑똑한 여자를 양녀로 삼고 있는데, 이 여자는 이슬람교도로 어릴 때에 십자군의 학살로 부모를 잃고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노예로 팔리다 이를 불쌍히 여긴 우르반에게 양녀로 들어간 사정이 있다. 덕분에 기독교 국가를 매우 싫어한다. 동로마 제국의 재상 루카스 노타라스는 우르반에게 대포를 주문하지만 우르반은 무기를 만들고 싶지 않다고 거부한다. 그러자 노타라스는 밤중에 군사를 보내 우르반을 죽이려는데 오스만 제국의 군사가 이를 구출해내고 우르반은 고맙다며 양녀와 함께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시킬 대포를 만든다.
메흐메트 2세는 권력 기반이 불안정하고 적들에게 유약한 군주라며 얕보이는 상황에서 동로마와 내통하는 할릴 파샤[4]와 반기를 들었던 카라만공국을 용서해주는 대인이다. 꿈 속에서 오스만을 건국한 오스만 1세를 만나고 신이 자신에게 사명을 주었다는 생각 끝에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공격한다. 콘스탄티노폴리스가 함락되지 않고 공방전이 길어지자 좌절하여 천막에서 수일 동안 나오지 않지만, 위대한 백색의 이맘에게 격려받은뒤 배를 산으로 옮기고 대공세를 펼친 끝에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시킨다. 죽은 로마 황제 콘스탄티노스 11세를 로마인 방식대로 장례를 치를 것을 허가해주고, 하기아 소피아에 들어가 공포에 질린 동로마 민간인들에게 자유를 보장하고 활짝 웃으며 여자아이를 안는 것으로 영화가 끝난다.[5]
6. 평가
6.1. 긍정적 평가
전쟁 영화답게 전쟁 장면 묘사의 퀄리티가 매우 높다. 후술할 부정적 평가를 하는 사람들도 전쟁 장면 묘사만큼은 좋게 평가할 정도다.그리고 동로마 제국 재상 노타라스는 통찰력이 좋은 것으로 묘사되며, 콘스탄티노스 11세도 능력은 부족하지만 최후의 순간에 노타라스의 도망 권유를 받고도 명예를 지켜야 한다며 도망가지 않는 것으로 연출되는 등(죽는 순간이 나오지는 않았다) 튀르키예인 기준으론(...) 나름 공평하게 표현하려 애쓴 것으로 보인다.
6.2. 부정적 평가
튀르키예 기준에서만 만들어진 영화라 역사왜곡에 찌든 부분이 있는데 전반적으로 메흐메트 2세는 무슨 관대한 해방자로 그려지는데 비해 동로마 황제와 귀족들은 교활하게 정치공작을 일삼고, 향락에 젖어있으며, 절대 콘스탄티노폴리스가 함락되지 않는다는 오만함에 찌들었으며 동로마 민간인들은 가톨릭의 약속을 믿느니 술탄의 관용을 믿는 것으로 묘사된다.[6] 동로마 병사들은 도발하기 위해 투르크 포로들을 모욕하고 성벽에 목매달아 죽이는 등[7] 부정적으로 그려진다. 오스만군이 함락 이후 도시를 약탈하는 장면은 나오지도 않는다.또한 우르반에 대한 것도 동로마 제국도 우르반을 포섭하려고 했으나 자금 지불을 못해서 우르반이 가격을 더 부르는 오스만으로 간 것으로 영화처럼 노타라스가 동로마 병사들을 보내서 체포하려고 했다거나 우르반이 거절한 것은 아니다. 단지 동로마 제국 국고로써는 감당이 안됐을 뿐.[8] 이밖에 해군으로서 콘스탄티노플 방어에 적극 협력했던 베네치아군의 모습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거나, 일개 시파히 부대장에 불과했던 울루바틀르 하산(Ulubatlı Hasan)이 메흐메트의 절친으로 나온다거나 등등. 그러나 바실리카 대포 1문은 과한 발사로 폭발했으며 오르반은 폭사했던 것으로 역사가는 예측했다.
멸망 직전의 동로마 제국이 여는 전차 경주가 정말 웅장해 과연 이 나라가 멸망 직전의 그 나라 맞나 의심케 한다. 멸망 직전에 문화적으로 화려한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실제 역사의 동로마 제국보다는 차라리 오스만 제국의 또 다른 적국이자 제2차 빈 공방전 이전까지 오스만에 최악의 위기를 선사했던 티무르 제국의 멸망 직전에 더 가까운 모습이다.
영화 자체는 그냥 평작 킬링타임용 영화다. 같은 국가에서 제작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영화 〈오스만 제국의 꿈〉*이 더 중립적이다. 조반니 주스티니아니의 2000 용병의 활약이 나오고 기존의 로마 제국 시리즈처럼 드라마 형식으로 나온다.
6.3. 튀르키예 정부와 정치권의 밀어주기
상영 당시 에르도안과 튀르키예 정부가 이 영화를 지원을 했고 튀르키예 정치권에서는 영화를 칭찬, 두둔하는 발언을 하면서 대놓고 밀어주면서 흥행 몰이를 했는데 비슷한 시기에 민간에서 제작해 방영한 사극 드라마 위대한 세기에 대해서는 에르도안이 이슬람교와 오스만 제국 술탄의 위엄을 깎아 내린다며 비난하는 이중적 잣대를 들이대는 추한 모습을 보였다.당연히 나올 때 정복된 당사자이자 현대에 와서도 동로마 제국에 열광하는 그리스에서는 역사왜곡물이라며 당시 해당국가의 네티즌들이 치를 떨며 이 영화를 비난했다. 왜곡물로 볼 수 있는 이유는 조반니 주스티니아니의 활약이 적게 나오고, 동로마의 용병술과 성방어전을 작게 묘사한 탓이 크다. 실제로 제3국의 사람이어도 영화를 보면 튀르키예판 국뽕 영화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왜곡이 심하다.
[1] Faruk Aksoy[2] Fall of Constantinople[3] Ayşe Germen[4] 실제로는 포위를 풀고 퇴각할 것을 여러 번 주장했을 뿐 내통한 사실은 없었다. 그러나 정복 사흘 만에 이를 구실로 숙청당했다.[5] 기록에 의하면 하기아 소피아에 들어간 민간인들도 학살당하고 여성들은 강간당했으며 생존자들은 인질 또는 노예로 끌려갔다. 메흐메트 2세는 여기를 수도로서, 자신들의 종교적 건축물로 쓰기 위해 훼손될까봐 성당의 건축물에 흠집을 내지 말라는 것만 명령했다. 나중에 상황이 안정되자 메흐메트 2세는 이를 모두 금지시켰다.[6] 이건 절반은 사실이었다. 제4차 십자군 원정 이후 동로마 제국 내에서는 가톨릭에 대한 반감이 몹시 심해졌으며 실제로 교황의 관보다 술탄의 터번이 차라리 더 낫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 메흐메트를 정식으로 인정한 총대주교 옌나디오스 2세도 그런식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모두 그런건 아니고 지원군이 왔을때 민중들은 기뻐했다.[7] 실제로도 그러기는 했으나, 오스만군이 먼저 동로마군을 도발하기 위해 동로마 포로들을 공개처형한것에 대해 분노하여 그 보복으로 동로마군이 오스만 포로들을 처형했다.[8] 그 당시에 만든 우르반 거포는 현대 탱크보다 더할 정도로 엄청난 위력을 발산하는데 그만큼 주조 비용이 컸다. 한 마디로 건물 3층 높이 이상의 거포인데 그러려면 얼마나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가? 아직 신생으로 다시 세운 동로마 제국의 형편상 이걸 살 수 없으니 거절한 거다. 우르반은 그냥 돌아다니다가 메흐메트 2세에게 현란한언플로 비용을 받아 제조한 것 뿐이다.만일, 동로마 제국이 수락했다면 오스만 대군은 그야말로 대포 한 방에 부대 절반이 쓸려나가는 어마어마한 난이도가 펼쳐졌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