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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06 17:41:20

정덕성(통일신라)

<colbgcolor=#4a2d5b><colcolor=#fbe673> 압해 정씨 도시조
당나라 대양군
정덕성
丁德盛
출생 800년
당나라 등주 남양
(현 중화인민공화국 허난성 난양시)
사망 893년
전라남도 신안군 압해도
본관 압해 정씨
출신 승상(丞相)
관력 당나라
진사과(進士科) 명경과(明經科)합격
태자궁 설서(說書)
현백(縣伯)
승상(丞相)
대양군

1. 개요2. 상세

1. 개요

당나라 출신의 문인이자 압해 정씨의 시조로 나주 정씨, 영광 정씨, 창원 정씨 등 한국 모든 丁씨의 시조이다.

2. 상세

대양군 휘 덕성(德盛)은 서기 800년에 당나라 등주(鄧州) 남양(南陽) 대천리 (大川里:지금 중국 하남성 남양시 당하현 대하둔) 정영(丁營)마을에서 태어나 최연소의 나이로 대과(大科)인 진사과(進士科) 명경과(明經科에 합격하고 장상(將相)의 재목을 뽑는 과거시험) 삼십명중 십구번째로 합격하여 태자궁 설서(說書)를 지내던 중 회서(淮西) 오원제(吳元濟)의 반란을 태자궁 첨사(詹事) 이소와 더불어 평정한 공으로 현백(縣伯)의 작위와 식읍 700호를 받고 승상(丞相)벼슬을 하다가, 당(唐) 선종시 국가의 중대사에 바른 말로 직언 상소한 것이 당시 조정의 노여움을 사서 853년 찬류(竄流), 아들 열도(烈道) 응도(應道) 손자 필랑(必琅) 필진(必珍)등 온 가족을 황하강에서 배에 싣고 황해바다를 건너, 압해도에 배를 맨 후 이곳에 정착하니, 당시 신라 조정에서 신라 서울에 들어와 살기를 권하였으나 본국의 죄인이라 자처하며 굳이 사양하고, 또 본국에서도 입조(入朝) 권고의 칙서가 왔으나 "노약한 몸으로 배를 탈 수 없고, 이 나라도 예의 바른 나라이오니 이곳에 그대로 머무르게 하소서" 하며 893년 94세의 천수(天壽)를 누리고 생을 마치어 압해도 정승동에 안장하니 이로부터 시조묘를 이곳에 모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