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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3-18 15:15:33

정노식

<colbgcolor=#F2EDD7><colcolor=#755139> 정노식
鄭魯湜
출생 1891년
전라북도 김제군 만경면
사망 1965년
북한
직업 독립운동가, 판소리 연구가
소속
[[남조선로동당|
파일:남로당_노랑.png
]]

1. 개요2. 생애
2.1. 독립운동2.2. 광복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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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제강점기의 항일운동가, 판소리 연구가이자 북한의 정치인.

2. 생애

2.1. 독립운동

그는 1891년 전라북도 김제군 만경면에서 태어났다. 그는 김제소재 영명학교를 졸업한 뒤 조선중앙기독청년회학관에 입학했다. 이후 1915년 장덕수, 김철수 등 동지들과 함께 비밀결사를 조직했다. 1919년 1월 이광수[1]를 북경에 파견해 여러 지역에서 활동하는 독립운동가들과 연락하고 또한 3.1 운동이 일어났을 때 민족대표 48인으로 참가하기도 했다. 그는 체포되고 복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미결수로 2년 가까이 복역했다. 이후 서울에서 사회혁명당에 참여하고 중국 상해에서 열린 고려공산당 창립대회에서 간부로 선임되었다. 그는 조선청년회연합회 집행위원장이 되고 김사국, 이영, 한신교 등이 주도한 조선청년총동맹 창립 때 전형위원이 되었다.

2.2. 광복 후

광복 후, 그는 여운형, 허헌, 박헌영, 김원봉 등의 민주주의민족전선 중앙집행위원 겸 재정부장, 부의장 및 상임위원, 7월 남조선신민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고, 11월 남조선로동당 결성 때 의장단으로 참석했으며, 12월 중앙상무위원 및 협조부장에 선임되었다. 그는 월북하고 북한에서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이후 계속 공산주의 활동을 하다가 1965년 사망했다.
[1] 훗날 변절하고 일제에 협력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