囀花鶯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고려의 기녀. 동경(고려) 출신으로 사후 열박령(悅朴嶺)에 묻혔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이 고려 중기에 활동한 문인 김극기(1150? - 1209?)의 시를 인용한 것으로 보아 늦어도 고려 중기에 활동한 인물이었던 걸로 추정된다.2. 기타
울산광역시에서는 전화앵을 신라 말 충절지사로 각색해 띄워주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2011년 울산제일일보 기사2014년 김종경 대기자의 전화앵 선양 사업에 대한 비판 의견, 2015년 울산문화 칼럼2009년 울주군은 전화앵의 묘로 비정된 고무덤을 발굴조사한 적이 있는데 7세기 말 횡혈식 석실분으로 밝혀져서 해당 무덤이 전화앵의 무덤일 가능성은 없다.#
3. 기록
전화앵은 고려명기(高麗名妓)다.
최남선, 동경통지(東京通志, 1933)[2]
최남선, 동경통지(東京通志, 193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