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47a0><colcolor=#ffffff> 창씨명 | 마쓰다이라 세이이쿠(松平精育) |
본관 | 인동 장씨[1] |
출생 | 1919년 12월 30일 |
경상북도 영주군 풍기면 성내동 (현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성내리) | |
사망 | 1951년 7월 15일 |
묘소 | 국립서울현충원 |
상훈 | 건국훈장 애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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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장사건은 1919년 12월 30일 경상북도 영주군 풍기면 성내동(현 영주시 풍기읍 성내리)에서 아버지 장상문(張上紋)과 어머니 전주 최씨 최재환(崔載煥)의 딸 사이의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세조 때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 데에 공을 세워 적개공신(敵愾功臣) 2등에 녹훈되고 연복군(延福君)에 봉해진 안양공(安襄公) 장말손(張末孫)의 15대손이다.그는 1933년 3월 경성교동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성제일공립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해 1938년 3월에 졸업했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주오대학 제1예과 2학년에 편입하여 1940년 3월 예과를 수료하고, 같은 해 4월 법학부에 진학했다.
그러던 중 구호림과 교우하고 1941년 6월 구호림의 소개로 한국의 독립을 목적으로 하는 비밀결사에 참여했다. 이후 1941년 10월부터 1942년 8월까지 독립운동의 당위성 및 문화운동의 필요성 등 독립운동 방안을 모색하다가 일제 경찰에게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이후 1년 동안 미결수 상태로 옥고를 치르다가 1944년 6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8.15 해방 직후 석방되었다. 이후 영주군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1951년 7월 1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장사건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16년 국립서울현충원에 그를 기리는 위패를 세웠다.
[1] 직제학 계(桂)계 안양공파 22세 사(師) 해(海) 한(漢) 준(準) 항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