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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18 03:16:01

장 6세 다르쿠르

이름 장 6세 다르쿠르
Jean VI d'Harcourt
출생 1342년 12월 1일
프랑스 왕국 아르쿠르
사망 1389년 2월 28일
프랑스 왕국 아르쿠르
아버지 장 5세 다르쿠르
어머니 블랑슈 도말레
형제자매 자크 1세, 필리프, 잔
아내 카트린 드 부르봉
자녀 샤를, 장 7세, 루이, 블랑슈, 이자벨, 잔, 마리, 마르그리트, 잔(사생아), 데니스(사생아)
직위 아르쿠르 백작, 오말레 백작
1. 개요2. 행적3.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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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 왕국의 귀족, 군인. 백년전쟁에서 잉글랜드군에 맞섰다.

2. 행적

1342년 12월 1일 프랑스 왕국 아르쿠르에서 2대 아르쿠르 백작 장 5세 다르쿠르와 오말레 백작 장 2세 도말레의 딸인 블랑슈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형제로 자크 1세[1], 필리프[2], 잔[3]이 있었다.

1356년 4월 5일, 아버지 장 5세 다르쿠르가 루앙에서 연회를 베푼 도팽 샤를의 초대를 받아들여 루앙으로 갔다가 연회장에 난입한 프랑스 국왕 장 2세에게 체포된 뒤, 나바라 왕국의 국왕이자 에브뢰 백작 카를로스 2세와 손잡고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3세와 내통하고 있다는 혐의를 뒤집어쓰고 재판도 받지 못한 채 처형되었다. 이후 아르쿠르 영지를 물려받았고, 어머니 블랑슈가 섭정했다.

1357년 12월 3일, 잉글랜드로 끌려간 장 2세를 대신해 왕국을 다스리던 도팽 샤를은 장 5세 다르쿠르를 사면했다. 이후 1359년 10월에 장 5세 다르쿠르의 장남인 그와 자신의 처제인 카트린 드 부르봉의 결혼을 주선해, 발루아 왕조와 아르쿠르 가문의 화해를 이끌어냈다. 1360년 브레티니 조약이 성립되면서 프랑스와 잉글랜드간의 평화 협약이 체결되었다. 이때 그는 잉글랜드로 끌려갔던 장 2세를 대신해 인질로 보내진 귀족 중 한 사람이었다.

몇년 후 조국으로 돌아온 그는 1375년 기사 장 4세 말레 드 그라빌과 함께 잉글랜드군에 장악되었던 코냑을 포위 공격해 함락했다. 1382년 프랑스군의 플란데런 원정에 참가해 11월 27일 프란데런 반란군을 상대로 프랑스군이 승리를 거둔 루즈베케 전투와 1382 ~ 1383년 플란데런 반란군을 돕기 위해 건너온 헨리 르 디스펜서의 잉글랜드군을 포위 공격하여 항복을 받아낸 부르부르 공방전에 참여했다. 이후 루앙과 코의 베일리윅의 보안관으로 선임되었다. 1389년 2월 28일에 4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3. 가족



[1] 1350 ~ 1405, 몽고메리와 노이엘 남작. 프랑스 국왕 샤를 6세의 고문이자 시종.[2] 1354 ~ 1426, 본따블르 자작, 샤를 6세의 시종[3] 1356 ~ 1413년 이후, 엥크레, 몽미레일, 라페르테고쉐, 오르노이, 바이을, 아랭쿠르의 영주인 라울 3세 드 쿠시의 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