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장 드 클레르몽 Jean de Clermont | |
생몰년도 | 미상 ~ 1356년 9월 19일 | |
출생지 | 프랑스 왕국 푸아티에 | |
사망지 | 프랑스 왕국 푸아티에 | |
아버지 | 라울 4세 드 클레르몽 | |
어머니 | 잔 드 샹블리 | |
배우자 | 마르그리트 드 모르타뉴 | |
자녀 | 장 2세 드 클레르몽 | |
직위 | 보몽과 샹티이 영주, 프랑스 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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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 왕국의 육군 원수. 백년전쟁 시기 잉글랜드군에 맞서 싸웠으나 푸아티에 전투에서 전사했다.2. 생애
프랑스 왕국 푸아티에에서 에르블랑쿠르의 영주인 라울 4세 드 클레르몽과 잔 드 샹블리의 아들로 출생했다. 출생년도는 알려지지 않았다. 1340년 플란데런 백국과 에노 백국에서 외 백작 밑에서 복무하면서 잉글랜드군과 플란데런 반란군에 맞섰다. 이듬해에는 노르망디, 아비뇽, 랑그독 등지에서 벌어진 전투에 참여했다. 1346년 11월 3일 프랑스 국왕 필리프 6세로부터 보몽을 수여받았고, 1347년 4월 노르망디 공작이자 왕위 후계자 장으로부터 샹티이를 수여받았다. 이후 그로스몬트의 헨리를 막으려는 노르망디 공작 장을 따라 아비뇽과 랑그독으로 남하했다.1352년 11월 로구스 드 앵게스트가 사망한 뒤 프랑스 원수에 선임되었다. 1354년 피카르디와 플란데런 국경으로 파견되어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3세와 평화 협상을 벌였다. 그 결과 휴전 협약이 성립되었고, 프랑스 국왕 장 2세로부터 푸아투, 생통주, 앙구무아, 페리고르, 리무쟁 및 오베르뉴 일부 지역의 보안관에 선임되었다. 13355년 10~12월 흑태자의 슈보시를 막는 임무를 프랑스 무관장 자크 1세 드 부르봉, 아르마냐크 백작 장 1세와 함께 맡았으나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세간의 비난을 받았다.
1356년 9월 19일, 푸아티에 전투에 참전해 선봉대를 이끌고 잉글랜드군 대열을 향해 돌격하다가 말이 총에 맞는 바람에 말에서 떨어진 뒤 말의 시신에 깔려 옴짝달싹도 못하다가 전사했다. 일설에 따르면, 그는 전투 직전의 회담에서 잉글랜드군 지휘관 존 챈더스의 문장이 자신의 것과 비슷한 걸 보고, 잉글랜드인은 독창성이 없어서 남들이 발명한 좋은 것을 훔치는 것밖에 못한다고 비웃었다. 이에 원한을 품은 존 챈더스는 그를 생포하지 않고 사살했다고 한다.
그는 올네 여자작인 마르그리트 드 모르타뉴와 결혼해 아들 장 2세 드 클레르몽을 낳았다. 장 2세는 아버지 사후 영지를 상속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