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라질의 前 축구 선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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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bgcolor=#eee><colcolor=#000,#e5e5e5> 이름 | 자우 Jaú | |
| 본명 | 에우클리디스 바르보자 Euclydes Barbosa | |
| 출생 | 1909년 12월 17일 | |
| 브라질 상파울루 주 상파울루 | ||
| 사망 | 1988년 2월 26일 (향년 78세) | |
| 브라질 상파울루 주 상파울루 | ||
| 국적 | | |
| 신체 | 키 174cm | |
| 직업 | 축구 선수 (수비수 / 은퇴) | |
| 소속 | <colbgcolor=#eee> 선수 | SC 코린치안스 (1934~1938) CR 바스쿠 다 가마 (1938~1942) 산토스 FC |
| 국가대표 | 10경기 (브라질 / 1936~1938) | |
1. 개요
브라질 국적의 前 축구 선수.1930년대 브라질 축구 무대에서 명성을 떨쳤던 커맨더형 센터백이다. 본명은 에우클리디스 바르보자(Euclydes Barbosa)이지만, 상파울루주의 도시 이름에서 유래한 **'자우(Jaú)'**라는 별명으로 널리 알려졌다. 당대 최고 수준의 수비 조율 능력과 강력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SC 코린치안스, CR 바스쿠 다 가마 등 명문 클럽의 전성기를 이끌었으며, 브라질 대표팀 소속으로 월드컵 무대도 밟았다.
2. 선수 생활
2.1. 클럽
1934년 브라질의 명문 SC 코린치안스에 입단하며 본격적인 프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탄탄한 대인 마크 능력과 안정적인 후방 빌드업 능력을 무기로 단숨에 수비진의 핵심 요직을 차지했으며, 팀의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상파울루 주 리그) **2연속 우승**(1937, 1938)을 견인하며 리그 정상급 수비수로 발돋움했다.코린치안스에서의 대활약을 바탕으로 1938년 CR 바스쿠 다 가마로 이적하여 1942년까지 수비진을 지휘했다. 바스쿠 다 가마 시절에도 토르네이우 이니시우 두 리우데자네이루 등 우승 컵을 들어 올리며 명성을 이어갔고, 이후 산토스 FC를 거쳐 현역에서 공식 은퇴했다.
2.2. 국가대표
1936년 브라질 성인 대표팀에 처음 발탁된 이후 통산 10경기에 출전했다.특히 프랑스에서 개최된 1938 FIFA 월드컵 프랑스 브라질 대표팀의 최종 엔트리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대회 기간 중 수비진의 한 축을 담당하며 1경기에 출전했고, 레오니다스 다 시우바, 도밍구스 다기아 등 전설적인 선수들과 함께 브라질이 역사상 최초로 월드컵 최종 3위라는 위업을 달성하는 데 일조했다.
3. 삶의 비극과 말년
선수 시절과 은퇴 이후 그의 삶은 종교적·정치적 핍박으로 점철된 비운의 연속이었다. 자우는 아프리카계 브라질인들의 전통 민간 신앙이자 종교인 움반다(Umbanda)를 독실하게 믿고 실천하는 신자였다.그러나 당시 브라질 정권을 잡고 있던 독재 정부와 가톨릭 보수 체제는 움반다 신앙을 엄격히 통제하고 탄압했다. 이로 인해 자우는 평생에 걸쳐 정부 기관과 사회로부터 무자비한 감시와 박해를 받았으며, 화려했던 스타플레이어 커리어에 걸맞지 않게 정신적·물질적으로 매우 곤궁하고 힘겨운 삶을 살아야 했다.
인간 존엄성을 위협받는 모진 핍박 속에서도 신앙과 품위를 잃지 않으려 노력했던 그는, 1988년 2월 26일 고향 상파울루에서 향년 78세의 나이로 파란만장했던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