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의 일월산기도원 내부 및 외부 모습. 현재는 철거되었다.
日月山祈禱院
1. 개요
1966년부터 1971년까지 경상북도 영양군 청기면 당동(현재의 청기면 당리)에 있었던 기독교 신비주의 계통의 신흥종교.이 사건은 비뚤어진 기독교관을 가진 자들이 기독교를 이용한 사이비단체를 구성하여 기독교를 넘어 사회에 많은 피해를 준 대한민국 기독교 역사상 첫 사례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얼마 뒤 서울에서 일어난 대연각호텔 화재로 인해 사람들의 기억에서 금세 잊혀졌다.
2. 상세
교주 김성복(1934년생)은 1966년 8월 경상북도 영양군 청기면 당동에 위의 사진과 동일한 기도원을 건립하여 "세상은 말세인데 이 기도원에 들어와야 영생을 누린다"라고 주민들을 현혹, 전 재산을 팔아 입산케 해 단속 당시까지 전국 각지에서 모인 남녀신도는 5백 명에 이른 때도 있었으며 성금만 7백만 원에 다다랐다.교주 김성복은 "영생을 얻으려면 몸과 마음을 바쳐야 한다"고 속여 17∼45세까지의 여신도 20여명에 대해 성폭행도 저질렀다.
결국 1971년 12월 8일[1] 말세심판이 빗나가면서 피해 신도의 진정으로 실체가 드러나 원장 추병길(1937년생), 재생원장 이복임 씨(1911년생), 서무부장 전윤갑(1938년생), 환자지도부장 하상수(1944년생) 등 간부 수명이 구속되면서 조직이 와해되었다. 1971년 12월 7일자 중앙일보 기사
교주 김성복과 교주의 동생 김명복은 도주하여 이후 종적을 감추었다.
3. 실상
그 외에도 일월산기도원의 화려한 이력은 또 있는데, 재생원(환자수용소)에선 병을 고친다는 명목으로 정신병환자 10여명에게 몽둥이로 폭행해 상처를 입히거나 사망케 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병을 고친다고 이곳에 온 환자들 가운데 10여명이 사망했는데 이들의 개별적인 사인은 병사와 영양실조 등으로 조작되었다.또한 일월산기도원은 일월산 정상 일대 3천여 평에 자리잡고있는데 6년간 건축 및 화목용으로 10만여 재의 10∼30년 생 참나무·소나무 등을 도벌하기도 했다.
신도들은 1일 1인당 3∼5홉씩 보리쌀 배급 밖에 받지 못 하고 이것마저 없으면 금식을 시켜 모두 영양실조에 걸렸으며 이 일로 인해 신도 대부분이 삶은 무와 도토리로 연명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와해 당시 신도들도 먹을 것이 없어 뿔뿔이 흩어지고 7가구만이 오갈데 없이 남았고, 10여 명의 어린이들은 아사 직전에 놓여있었기도 했다.
일월산기도원은 1972년 1월 8일 영양군청에 의해 강제로 철거되었으며, 교주가 거주하던 호화 주택 역시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