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루와의 형태가 명확히 드러난 시부시성(志布志城) 모형[1]. |
くるわ
1. 개요
일본식 성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 해자나 지형의 고저차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구획한 하나의 공간을 말한다. 한자로는 곡륜(曲輪) 또는 곽(郭)이라고 표현하는데, 공간 내부의 평지에 초점을 맞추면 곡륜, 가장자리의 테두리에 초점을 맞추면 곽으로 구분한다.구루와 안에는 고구치(虎口, こぐち)[2]를 막는 몬(門), 실질적인 성벽이자 우리나라의 성가퀴(女牆)와 같은 역할을 하는 헤이(塀), 망루 역할을 하는 야구라(櫓) 등 여러 시설이 들어선다. 주곽(主郭)[3]에는 성주(城主)의 거관(居館), 군량창고, 취사시설 등이 있었다. 전시에는 각 구루와에 수비병들이 주둔했다.
2. 배치 방법
일본의 성은 15세기 후반에 구루와들을 서로 잇는 구조가 발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혼마루, 니노마루, 산노마루와 같이 이름을 붙일 때 상정하는 각 구루와 간 상하관계는 옛 연곽식 산성에서는 나타나지 않은 듯하다. 치바현 요코시바 미쓰마치에 위치한 사사모토 성(篠本城)의 구루와들은 상하관계가 명확하지 않았고, 아오모리현 하치노헤시에 위치한 네 성(根城) 또한 구루와의 상하관계가 명확하지 않다. 그 후 전국시대 이후의 성곽에서는, 여러 개의 구루와를 의도적으로 배치하고, 이치노쿠루와(一郭)을 중심으로 니노쿠루와(二郭) 이하의 구루와가 종속되는 구성이 일반적이 되었다. 그리고 에도시대에 와서야 구루와의 이름에 마루(丸)란 표현이 붙었다.이러한 구루와들을 배치하기 위한 마스터플랜을 나와바리(縄張)[4]라고 한다. 에도시대의 군사학[5]은 나와바리의 기본을 성곽의 중심이 되는 혼마루의 주위에 그 혼마루를 보좌하는 니노마루, 산노마루를 효과적으로 배치하는 것으로 잡는다. 일반적으로 나와바리의 종류는 크게 다음과 같이 세 종류로 분류한다. 이외에도 원곽식(圓郭式), 병곽식(竝郭式), 와곽식(渦郭式), 계곽식(階郭式)' 등으로 분류되는 경우도 있다.
성곽을 반드시 어느 한 가지 형식으로만 세우지는 않았다. 기본적인 나와바리들을 변형시키고 발전시키거사 합친 형태도 많이 나타난다. 또한 이러한 형식만으로는 분류가 어려운 성곽도 있다.[6]. 연구자에 따라서 같은 성이라도 다른 형식으로 분류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아예 새로운 단어로 세세하게 분류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아래의 형식에 너무 얽매이지 말 것.
2.1. 윤곽식(輪郭式, りんかくしき)
혼마루를 중심으로 동심원처럼 바깥 구루와가 안쪽 구루와를 감싸는 방식이다. 사방의 방어가 똑같이 강화되지만, 구루와를 둘러싸기 위해 성곽의 규모는 커지게 된다. 주로 야마가타 성(山形城), 마츠모토 성(松本城), 오사카 성(大坂城)과 같이 평성(平城)에서 주로 나타나는 나와바리이다.슨푸 성(駿府城)의 나와바리(加藤理文 작성). |
2.2. 연곽식(連郭式, れんかくしき)
혼마루 이하의 구루와를 일렬로 늘어놓는 방식이다. 혼마루는 나와바리의 가장 뒤쪽에 위치하는 경우도 있고, 가운데에 위치하는 경우도 있다. 능선이나 곶, 설상대지(舌狀臺地) 등의 길쭉한 고지를 요코보리(横堀, よこぼり)로 구분하는 것이 대부분으로, 아무것도 없는 평지에 굳이 이 나와바리로 성을 쌓는 경우는 거의 볼 수 없다. 자연 지형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고 적은 노력으로도 방어력이 높은 성을 쌓을 수 있기 때문에 아주 옛날부터 사용된 성들이 많다. 빗추마츠야마 성(備中松山城), 이요마츠야마 성(伊予松山城), 모리오카 성(盛岡城), 미토 성(水戶城) 등이 이에 해당한다. 우리나라에 지어진 왜성 가운데도 서생포왜성 등 이 방식으로 지은 사례가 더러 있다.미토 성(水戶城)의 실측도(이바라키 현립 도서관 소장). |
2.3. 제곽식(梯郭式, ていかくしき)
혼마루를 호수나 산, 하천, 절벽 등의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가장 구석에 배치한 뒤, 혼마루의 주위의 두 방향, 혹은 세 방향을 다음 곡륜으로 둘러싸는 방식이다. 오카야마 성(岡山城), 나고야 성(名古屋城), 구마모토 성(熊本城), 우에다 성(上田城) 등이 이에 해당한다.후나이 성(府內城)의 지도(오이타 시 교육위원회 제작). |
3. 구루와의 명칭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 이후의 성에서는, 각각의 구루와를 그 용도에 따라 'XX곡륜' 또는'XX마루' 등으로 부르는데, 또 시대나 지역에 따라서도 명칭이 다르다. 혼마루, 니노마루 등 구루와를 마루(丸)라고 말하게 된 기원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마루는 아즈치 모모야마계 성곽에 속하는 성이나 에도 시대 이후 근세성곽의 주요부 명칭으로 추측된다.구루와의 이름을 붙일 때는 여러 개의 구루와를 한 데 묶어서 지칭하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꼭 혼마루, 니노마루, 산노마루가 하나씩 다 있을 필요는 없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중심부 자체를 통틀어서 혼마루로 지칭하는 경우도 있다[7].
- 우치구루와(內郭, うちぐるわ)
성의 주요부로, 우리가 흔히 성(城)이라고 부르는 부위는 대부분 이 우치구루와를 뜻한다. 의미가 상당히 모호해서 보는 사람에 따라 그 범위가 달라질 수 있는데, 이것은 소토구루와도 마찬가지이다. 일본에 여행을 갔을 때 관광하는 성들은 많은 경우가 우치구루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 소토구루와(外郭, そとぐるわ)
성의 외곽부로, 소가마에(総構え, そうがまえ)에 포함되는 부분이 대부분 소토구루와에 속한다.
- 혼마루(本丸, ほんまる)
일본의 성의 핵심이 되는 구루와의 명칭이다. 이치노쿠루와(一の曲輪)·혼쿠루와(本曲輪)·이치노마루(一の丸) 등으로도 불리고, 중세성곽에서는 혼조(本城, ほんじょう), 미조(實城, みじょう), 츠메노마루(詰丸·甲丸, つめのまる)[8] 등으로 불리며, 각 성에 따라 명칭이 다르다. 일본의 중세 고고학에서는 주곽(主郭, しゅかく)이라고 불린다.
중세 산성에서는 혼마루에 해당하는 주곽을 구릉에 만들어 성주가 거주하는 진야(陣屋, じんや)를 두고 전시에 산기슭의 거관(居館)에서 주곽의 진야에 들어가 지휘를 했다. 근세성곽으로 오면, 혼마루에는 성주와 그 가족이 사는 고텐(御殿)과 치소(治所)인 오모테고텐(表御殿)을 두고, 필요에 따라서 중층으로 지은 천수(天守)나 야구라를 세웠으며, 이는 성주의 권위의 상징이자 또 마지막 보루로서의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혼마루 안 또는 혼마루와는 별도로 천수가 올라가는 소규모의 구루와를 두는 경우도 있어, 이를 덴슈쿠루와(天守曲輪, てんしゅくるわ) 또는 덴슈마루(天守丸, てんしゅまる)라고 칭했다.
한편, 혼마루의 기능을 니노마루나 산노마루 등에 두고, 혼마루에는 야구라나 천수 등의 방어 시설만을 세워 일상생활이 가능한 저택을 두지 않고 간소화하거나, 면적을 좁혀 전시에 츠메노마루로서의 기능만을 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에도시대의 오사카 성이나 나고야 성, 요도 성(淀城), 우츠노미야 성(宇都宮城), 가와고에 성(川越城) 등과 같이 혼마루 고텐을 오나리(御成り)[9] 때 쇼군의 침소로 내주고, 성주는 다른 구루와에 별개의 고텐을 두어 그곳에서 정무를 보거나 일상생활을 하는 예도 있었다. 나고야 성이나 요도 성의 경우는 주로 쇼군이 교토에 상경하면서 거쳐가는 숙박지로서, 우츠노미야 성의 경우는 닛코의 닛코 동조궁에 참배하기 위해 쇼군이 잠시 묵는 곳으로서 기능했다.
오사카 성의 경우는 에도의 도쿠가와 쇼군 가문이 직접적인 성주였기 때문에, 평소에는 막부가 파견한 오사카 조다이(城代)[10]와 그 부하들이 니시노마루(西之丸)나 니노마루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이러한 쇼군의 오나리 전용으로 사용하는 혼마루 고텐은 오나리 고텐(御成御殿)이라고 불렸다. 현재 혼마루 고텐까지 남아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문데, 고치 성(高知城), 가와고에 성, 마츠마에 성(松前城) 등이 있다. 이 중 고치 성의 혼마루에는 천수, 고텐, 성문, 야구라, 헤이가 모두 현존한다.
- 니노마루(二之丸, にのまる)
혼마루에서 이어지는 주요부 구루와의 명칭이다. 혼마루와 같이 고텐을 세우는 경우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성의 중심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있다. 히로시마 성(広島城)에서는 다른 성에서 우마다시(馬出し)라고 부를 법한 작은 구루와를 니노마루라고 부른다. 二の丸로도 쓰고, 二ノ丸도 쓴다. 니노쿠루와(二の曲輪), 니노조(二の城)라고도 한다.
- 산노마루(三之丸, さんのまる)
니노마루 다음으로 이어지는 주요 구루와로, 가신들의 저택이 위치하는 경우도 있었다. 산노쿠루와(三の曲輪), 산노조(三の城)라고도 했다.
- 고시구루와(腰曲輪, こしぐるわ)
산의 경사면을 삭평(削平)하여 만든 소곡륜(小曲輪)으로, 적을 끌어들여 고지에 있는 구루와으로부터 사격하는 용도로 쓰이는 것이 많았다. 산허리를 따라 세로 형태로 내려가는 구루와로 주로 곡륜군(曲輪群)의 형태로 나타나며, 따로 이름을 붙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 오비쿠루와(帯曲輪, おびくるわ)
주요 구루와의 외곽에 배치되는 길고 작은 구루와. 한 단 낮게 해자를 파서 만들거나 도요토미 오사카 성처럼 2중으로 만든 것도 있었다. 주로 곡륜군(曲輪群)의 형태로 나타나며, 따로 이름을 붙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 스테구루와(捨曲輪, すてぐるわ)
주곽의 앞쪽에 설치하여 전시에 주곽보다 앞으로 치고 나오기 위한 출격용 구루와로, 궁지에 몰리면 과감히 버릴 수 있게 만들어진 구루와이다. 헤이와 같은 엄폐물을 두르지 않고, 주곽으로부터의 공격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졌다.
- 데쿠루와(出曲輪, でくるわ)
데마루(出丸)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구루와로, 수비가 취약한 부분을 보강하거나 감시하며, 최전선을 방어하기도 하는 용도로 만들어진 보조적 기능을 지니는 구루와[11]. 성의 나와바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만들거나, 성 본체에서 튀어나와 별도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사나다 노부시게(真田信繁)가 쌓았던 오사카 성의 사나다마루(真田丸)가 유명하다. 에도시대에는 무가제법도(武家諸法度)에 따라 성곽의 증축이 원칙적으로 금지되었으므로, 오카야마 성의 고라쿠엔(後楽園)처럼 데마루의 기능을 겸비한 대규모의 정원이 축조되게 되었다.
- 우마다시쿠루와(馬出曲輪, うまだしくるわ)
고구치를 방어하고 소규모의 부대가 주둔하여 출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밖에서 성 안이 보이지 않도록 쌓아올린 우마다시(馬出し)를 구루와의 규모로 확장시킨 것이다. 나고야 성, 사사야마 성, 히로시마 성에 거대한 우마다시쿠루와가 남아 있다. 오사카 성의 사나다마루는 기본적으로 데마루이지만, 우마다시의 일종이기도 하다.
- 미즈노테쿠루와(水の手曲輪, みずのてくるわ)
성의 주요한 취수시설(取水施設)이 있는 구루와. 샘이나 우물 등이 위치해 있다. 이도쿠루와(井戸曲輪, いどくるわ)라고도 한다.
- 사마자토쿠루와(山里曲輪, さまざとくるわ)
유흥을 위한 야시키(屋敷, やしき)나 정원을 조성한 것. 연못을 파거나, 츠키야마(築山, つきやま)를 쌓거나, 정자나 다실 등을 마련한 구루와. 도요토미 히데요시 시대의 오사카 성·히메지 성(姬路城)·아카시 성(明石城)·후시미 성(伏見城)·히젠나고야 성(肥前名護屋城) 등에 존재한다. 에도시대에는 다이묘의 정원으로서 성내 뿐만 아니라 성외나 신하들의 저택에도 만들어지게 되었다. 에도 성(江戶城)의 후키아게 교엔(吹上御苑)도 사마자토쿠루와의 일종으로 생각된다.
- 방위를 붙인 구루와
혼마루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의 방위를 붙여 이름을 지은 구루와도 존재한다. 각 방위를 이름으로 삼는 구루와의 대표적인 소재지는 다음과 같다.
- 히가시노마루(東之丸) : 아카시 성, 다카마츠 성(高松城), 요나고 성(米子城), 니시오 성(西尾城)
- 니시노마루(西之丸)[12] : 에도 성, 히메지 성, 오카야마 성
- 미나미노마루(南之丸) : 와카야마 성(和歌山城), 고모로 성(小諸城)
- 기타노마루(北之丸) : 히로사키 성(弘前城), 다카마츠 성, 오즈 성(大洲城)
- 소가마에(総構え, そうがまえ)
소가마에는 중세 이후에 만들어진 개념이다. 고대 일본에서는 이민족의 침입이 적었고, 산지가 국토의 대부분을 차지하므로 대륙에서 볼 수 있는 성곽 도시는 극히 일부 지역(교토, 헤이조 등)을 제외하고는 발전하지 않았다. 가마쿠라 막부 성립 이후, 야전에서 방어 시설로서 쓰기 위해 만들어진 사쿠(柵)나, 무사의 거관을 해자나 야구라를 갖추어 방비한 야카타(館)가 중세에는 산성(山城)으로 발전했다.
근세로 접어들게 되면, 성곽이 단순한 군사 거점뿐만 아니라 정치적·경제적 통치 거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조카마치와 가신단(家臣団)[13]을 방어해야 했으므로, 기존 성의 기능적인 구성부분(우치구루와)으로부터 더 바깥쪽에 방어선을 마련하였다. 이것이 소가마에(総構え)로, 성이나 채(砦)의 소토구루와, 또는 둘러싸인 내부를 아울러 일컫는다. 본성 이외에 조카마치(城下町) 일대도 포함하여 바깥 둘레를 해자로 구획한 성곽 구조인데, 한자로는 惣構라고도 쓰고, 소구루와(総曲輪·総郭, そうぐるわ)고도 한다. 보통 성(城)이라고 부를 경우에는 우치구루와만을 가리키고 소가마에는 자연 지형(산·하천)을 포함하기 때문에 그 범위가 불분명하기도 했다.
[1] 가고시마 여명관(黎明館) 소재.[2] 구루와의 가장자리에 낸 출입구. 본래 小口였으나 표기가 바뀐 것이다.[3] 중심부 구루와로, 우리가 흔히 혼마루라고 부르는 영역이다.[4] 경상도 사투리의 그 나와바리가 맞다.[5] 다만 에도시대는 전쟁이 거의 없었던 시기라, 실전적인 축성이나 전투의 경험을 거치지 못했다.[6] 하나의 구루와로만 이루어진 단곽식(單郭式), 성을 이루는 구루와들이 각기 다른 구릉 위에 거의 동일한 규모로 지어져 전시에 각각의 구루와가 별개의 성처럼 기능하는 일성별곽(一城別郭) 등.[7] 대표적인 경우가 구마모토 성.[8] 츠메노마루는 주로 최후의 결전을 위해 성의 가장 안쪽으로 뺀 구루와를 뜻할 때 주로 쓰는 말이다. 주로 강으로 둘러싸인 배수진이거나 산꼭대기에 위치한다. 이것이 독립된 성으로서 기등할 수 있으면 츠메노지로(詰城)라고도 부르는데, 이것 역시 기준이 모호하여 부르기 나름이다. 츠메노지로가 설치된 대표적인 성이 바로 돗토리 성(鳥取城)과 하기 성(萩城).[9] 황가나 다이묘의 외출을 폭넓게 일컫는 말로, 에도시대에는 주로 쇼군이 지방 다이묘의 거성에 방문하는 것을 말했다.[10] 다이묘로부터 성곽 및 주변 영토의 수비를 맡은 가신(家臣). 성주의 부재 시 대신 성을 관리하는 대리인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루스이가시라(留守居頭, るすいがしら) 또는 오루스이(大留守居, おおるすい)로도 불린다.[11] 데지로(出城, でじろ)와는 다르다. 데지로는 본성을 보조하기 위해 영지의 경계 등에 세운 독립된 성이다.[12] 성주의 은거소(隠居所)로 많이 사용된다. 니시노마루를 은거소로 삼는 전통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 성 니시노마루를 스스로의 은거 장소로 한 것에서부터 시작된다.[13] 쇼군이나 다이묘 등 무가를 섬기는 가신(家臣)의 집단이다. 특히 주군의 곁 근처를 섬기는 사람을 근신(近臣) 이라고 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