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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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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만민중앙교회 담임목사
이재록
李載祿 | Lee Jae-rock
파일:이재록 목사 사진.png
<colbgcolor=#5E8BC9><colcolor=#fff> 출생 1943년 5월 23일[1]
전라남도 무안군 해제면 산길2리 구등마을[2]
사망 2023년 12월 31일 (향년 80세)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 겟세마네 기도처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본관 함평 이씨 (咸平 李氏)[3]
신체 159cm, 55kg
직업 교주[4]
역임 직위 예수교대한연합성결회 (총회장)[혼동주의]
만민중앙교회 (당회장)(1982~2023)[6]
학력 성결신학교 (혁신) (졸업)
크리스찬 페이스 신학대학교 (신학 / 명예박사)
킹스웨이 신학대학교[7] 대학원 (목회학 / 박사)
호칭 대외 당회장 이재록 목사 / 이재록 담임목사
대내 당회장, 목자[8]
비공식 성령, 주[9]
가족 배우자 이복님[10]
자녀 장녀 이미영, 차녀 이미경, 삼녀 이수진
[11]
조카 주요한[12], 주XX[13], 주XX[14]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2. 생애 및 경력3. 논란 및 사건 사고4.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종교인. 수많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이비 종교 만민중앙교회의 교주였다.[15]

2. 생애 및 경력

1943년 5월 23일 전라남도 무안군 해제면 산길2리 구등마을에서 아버지 상촌(桑村) 이차범(李次範, 1902. 5. 24 ~ 1981. 5. 16)[16]과 어머니 한양 조씨 조감장[17](1903. 6. 22 ~ ?)[18] 사이에서 3남 3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968년 1월 광주 이씨 이주실(李柱實)의 딸인 이복님(李福姙, 1944. 3. 5 ~ )과 결혼했다.

1982년 만민중앙교회를 개척했고 이듬해인 1983년 성결신학교(혁신)를 졸업했으며 1993년 미국 크리스찬 훼이스 신학대학으로부터 명예신학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19] 1996년에는 미국 킹스웨이 신학대학교[20] 대학원에서 목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0년에 원 소속 교단에서 퇴출되었다.

1992년 세계 성령화 대성회 공동대회장, 1994년 서울 성령화 대성회 대회장, 1995년 광복 50주년 기념 평화통일 희년대회 실무대회장, 1997년 민족통일 성령복음화 대성회 대회장을 역임했다. 그러나 1999년에 만민중앙교회가 MBC 습격 사건을 일으켜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었고, 그 간의 발언들이 드러나면서 기성 교단과 완전히 교류가 끊어졌다.

2002년 월드컵 선교단 부총재, 한국 기독교 복음주의 총연맹 공동의장, 세계복음화 중앙협의회 공동회장, 민족복음화 운동본부 상임회장, 검찰복음화협의회 실무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기독교 세계부흥 선교협의회 상임총재, (사)국회사랑 구국기도 총연합회 공동총재, 세계 기독방송 네트워크(GCN) 이사장, 세계 기독 의사 네트워크(WCDN) 이사장, 만민 국제 신학교(MIS) 이사장, 연합성결신학교 이사장, 만민중앙성결교회 당회장, 예수교 연합성결회 총회장으로 재직하였다. 저서로는 자서전인 '나의 삶 나의 신앙', '죽음 앞에서 영생을 맛보며', '십자가의 기도', '믿음의 분량' 등 60여 권이 있다.[21]

그러나 여신도들에게 40여 차례나 성폭행 가해를 저지른 희대의 성범죄자임이 드러나 체포되었고, 조사를 받고 재판에 회부된 뒤 2019년 8월 징역 16년형과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80시간 의무 이수,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취업 제한 10년 등을 선고받고 구치소에 수감되었다.#

2023년 1월 18일 뇌종양으로 인한 위급증세가 발생해 교도소에서 나와 서울 모처의 병원에서 치료받기 시작했는데 이로 인해 건강 위기설이 제기되었다.# 2023년 3월 3개월 연장을 다시 받아 수원지검 여주지청 관할인 경기도 여주의 한 법무무 관리하 병원에서 요양을 진행했고 뇌종양 수술 경과는 좋아 사망 위기는 넘겼다고 하며 관련자 정보에 의하면 치매 상태임에도 돈에 관한 이야기는 마치 귀신같이 술술 정확히 줄줄이 이야기한다고 한다. 6월 17일 형집행정지 만기가 되었으나 후술할 대장암을 이유로 다시 연장했다. 어차피 고령의 치매 환자이고 말기 암 환자이기에 비교적 가석방이 용이했던 것으로 보인다.
'신도 성폭행' 이재록 목사 사망‥"범행은 끝내 인정 안해" (2024.01.01/뉴스데스크/MBC)
2023년 12월 31일 대장암 말기로 투병 중 사망했다. 향년 80세.# 겟세마네 기도처에서 사망하긴 했지만 형집행정지 중에 일어난 일이고, 어차피 정상적으로 회복했어도 다시 감옥으로 가서 남은 형을 집행해야 했던 상황이라 넓은 의미에서의 옥사나 다름없게 되었다. 죽을 때까지도 끝내 사과는커녕 범행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3. 논란 및 사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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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관련 문서



[1] 음력 4월 20일. 족보에는 4월 19일생으로 기재되어 있다.[2] #[3] 효우공파(孝友公派) 29세 재(載) 항렬.[4] 기성교단에서 제명당한 이재록에게 목사라는 호칭을 쓰기에 부적합하다.[혼동주의] 예수교대한성결교회와는 완전히 다른 교단이며 기성교단에서 퇴출 당한 뒤 이재록 씨가 자체적으로 세운 교단이다.[6] 2023년 12월 31일, 새해 이브에 대장암 투병끝에 사망. 이후 3녀인 이수진이 당회장 직으로 올라섰다.[7] 미국 교육부의 공인을 받지 않은 비인가 대학교다.[8] 교회 내부적으로는 이재록을 ‘목자(님)’으로 지칭하는 경우가 많으며, ‘당회장(님)’이라는 호칭 또한 자주 쓰인다. 만민중앙교회 내부에서 쓰이는 찬양집인 "만민찬양"이 있는데, 가사에 이재록을 높이는 표현(ex. 목자의 권능, 목자의 성(새예루살렘으로 돌려 부르기도 한다))이 있다. 다만, 성범죄로 인한 수감 이후에는 ‘목자님’이라는 호칭을 대외적으로는 줄이고 ‘당회장님’(이씨 사후에는 ‘원로목사님‘)으로 호칭을 통일하여 이재록에 대한 숭배의 흔적을 숨기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9] 비공식 석상에서는 이재록을 ‘성령(님)’ 내지는 ‘주(님)’으로 호칭하는 경우도 적지 않으며, 실제로 만민교회 내부에서는 이재록이 성령이라고 가르친다. 이재록의 3녀이자 훗날 만민교회 2대 교주가 되는 이수진이 이재록을 성령으로 부르자 이씨가 ‘성령은 나를 가리키는 것‘이라며 자신을 스스로 신으로 격상시키는 내용의 녹음 파일이 발견되기도 하였다.[10] 주로 교회에서는 목사님의 부인을 "사모님"이라 부르지만, 여기는 특이하게 "원장님"으로 불리운다. 이복님이 교회 부설의 만민기도원의 원장을 맡았기 때문.[11] 본부인 이복님과의 사이에 난 세 딸 외에도 1기 대언자로 세웠던 前 전도사 한 모 씨의 아들을 양자로 입적시켜 놓았으며, 족보에는 슬하에 세 딸에 대한 기록은 일절 없고 그 양자로 추정되는 이준행(李俊行, 일명 이요셉, 1982년 3월 15일 출생)만 언급되어 있다.파일:이재록 이준행 부자(父子) 족보 사진.png[12] 문경 십자가 시신 사건 주요 관계자 및 목격자.[13] 만민중앙교회 부목사[14] 만민중앙교회 원로회장[15] 자신이 속해있던 성결교단에서 파직당했기 때문에 목사의 직분은 기성 교회에서 인정되지 않는다.[16] 자는 문좌(文佐).[17] #[18] 조병혁(趙炳爀)의 딸이다.[19] 목사 안수를 받은 건 1986년 5월로 교회를 개척한 후에 자신을 신이라 칭하며 사람들을 전도했다고 한다.[20] 비인가 대학, 즉 돈만 주면 누구나 학위를 받을 수 있는 인증받지 못한 대학이다.[21] 자서전에는 이재록이 '가는 곳마다 내가 함께하며 기사와 표적으로 내가 살아있음을 만방에 알리는 내 종이 되리라'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다는 재밌는 내용이 실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