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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22 20:44:11

이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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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이인희
(1994~2002)
제2대
조동길
(2002~ )
}}}}}}}}} ||

<colbgcolor=#585858><colcolor=#fff> 한솔그룹 초대 총수
이인희
李仁熙|Lee In-hee
파일:한솔_이인희_고문.jpg
출생 1929년 1월 30일[1]
경상남도 의령군
사망 2019년 1월 30일[2] (향년 90세)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본관 경주 이씨 (慶州 李氏)[3]
청조(淸照)
부모 아버지 이병철 어머니 박두을
형제자매 남동생 이맹희, 이창희, 이건희
여동생 이숙희, 이순희, 이명희
이복남동생 이태휘
이복여동생 이덕희, 이혜자
배우자 조운해
자녀 장남 조동혁
차남 조동만
삼남 조동길
장녀 조옥형
차녀 조자형
학력 대구여자중학교 (졸업)
경북여자고등학교 (졸업)
이화여자대학교 (가정학 / 중퇴)

1. 개요2. 생애3. 여담4. 가족관계

[clearfix]

1. 개요

파일:15436_17201_1941 (1).jpg
1981년 이병철, 이인희.
파일:2014040402781_0.jpg
2006년 5월 29일 한솔제지 장항공장.
왼쪽부터 이인희, 조동길, 조동혁.
파일:20210629_102724.jpg
2015년 8월 27일 이맹희 빈소.
이인희의 마지막 대외활동이었다.

대한민국기업인. 생전 한솔그룹 초대 총수 겸 고문을 역임했다.

2. 생애

1929년 1월 30일(1928년 음력 12월 20일) 이병철박두을의 장녀이자 맏이로 경상남도 의령군에서 태어났다(이병철의 자서전인 호암자전에서는 1929년 12월 2일에 태어났다고 기술 돼있다). 이후 대구에서 대구여자중학교[4], 1948년 경북여자고등학교 졸업 후 1949년 이화여자대학교 가정학과를 다니다가 중퇴했다. 이후 조운해와 결혼해 슬하에 3남 2녀를 두었다.

1979년 호텔신라 상임이사로 선임돼 경영 일선에 뛰어들어 1983년에 전주제지 고문으로 추대됐고, 1991년 삼성그룹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후 이듬해에 '한솔제지'로 사명을 갈아 1993년에 공정거래법상 계열분리되어 독자경영의 닻을 올렸다. 1994년에 그룹체제로 출범시켰음에도 한동안 그룹회장 직함을 안 쓰고 한솔그룹 고문자리에서 실제 경영을 주도했다. 2001년 말에 막내아들 조동길 부회장을 회장으로 승진시켜 그룹 운영에 대한 전권을 승계했다. 2005년부터 그룹 구조조정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2019년 1월 30일[5]에 향년 90세로 유명을 달리했는데, 4살 연상인 남편 조운해보다 먼저 운명을 달리했다.[6] 장지는 한솔오크벨리 근처이다.

3. 여담

아버지인 이병철 회장은 자서전(호암자전)에서 이 고문을 가리켜 “사내로 태어났으면 그룹을 맡겼을 큰 재목인데…”라고 했을 정도로 이인희를 높게 평가했다.[7] 그래서인지 이병철 회장의 딸들 중 막내 여동생인 이명희 회장과 함께 이병철이 굉장히 예뻐했다고 한다. 반면 아들들에게는 굉장히 엄하게 대했다고 한다.[8]

여동생인 이명희신세계가 오늘날 재계서열 9위에 이르는 대기업으로 성장한데 비해, 이인희가 물려받은 한솔그룹은 그다지 성장하지 못했다. 주력이 제지업이다보니 디지털 시대인 21세기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사양산업이었던 탓이 크다.

4. 가족관계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범삼성가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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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음력 1928년 12월 20일[2] 자신의 90번째 양력 생일 당일날 사망했다[3] 판전공파(判典公派)-사정공파(司正公派) 중시조 40세 ○희(○熙) 항렬.(족보)[4] 현재는 남녀공학으로 전환되어 대구일중학교로 교명이 바뀌었다.[5] 본인의 90번째 양력 생일이었다.[6] 남편인 조운해도 부인 이인희가 별세하고 난 뒤 1달여 후인 같은 해 3월 1일 유명을 달리했다. 향년 94세.[7] 참고로 신세계그룹을 맡게 된 막내딸 이명희 역시 이병철 회장이 '사내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말을 했었다. 이맹희는 장남임에도 무능 그 자체였다. 차남 이창희는 이맹희보다는 훨씬 덜 무능하긴 하지만 어쨋든 무능한 축에 속했고, 결정적으로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었기 때문에 싫어했다. 이건희는 아들들 중 경영능력이 가장 좋아서 후계자가 되었지만, 이병철의 눈에는 마음에 안 들었던 거거나, 이인희나 이명희를 세 아들들보다 훨씬 더 높게 평가해서 두 딸이 아들이었으면 삼성에서 더 큰 일을 맡기고 싶었던 듯 하다.[8] 이 때문인지 이병철은 딸들인 이인희 고문, 이명희 회장과는 훈훈한 일화들이 넘쳐나나, 아들들인 이맹희, 이창희와는 사이가 매우 안 좋았다. 결국엔 이건희에게 물려주긴 했으나, 이건희 역시 아버지가 건재했을 적엔 아버지 눈치를 심하게 봤다고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