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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5-28 19:41:49

이예린(1974)

<colbgcolor=#500020><colcolor=#fff> 이예린
Lee Ye Rin
파일:이예린1997.jpg
본명 이진숙
출생 1974년 4월 19일 ([age(1974-04-19)]세)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반포고등학교 (졸업)
명지대학교 (실용음악과 / 졸업)
데뷔 1994년 1집 'LEE YE RIN'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활동3. 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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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0년대 중반 인기를 끌었던 대한민국의 여자 가수. 대표곡은 '포플러 나무 아래', '늘 지금처럼', '용서', 'Stay', '변심' 등이 있다.

2. 활동

소속사는 한맥 엔터테인먼트로 1994년 대학 재학 중 '포플러 나무아래' 라는 곡으로 가수 데뷔하였다. 이 당시는 청순한 컨셉으로 발랄한 미드 템포의 포크 곡 '포플러 나무 아래'[1]는 가요프로그램에서 중상위권에 오르는 등 준수한 인기를 얻었고 뮤직비디오 촬영지는 어느 한 수목원이다. 당시 가요톱텐에서 노래를 부르던 중 크레인 카메라에 머리를 부딪치는 아찔한 방송 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 공교롭게도 노래에 어울리는 식목일에 노래를 불렀다가 사고를 당했다. 그러나 초인적인 프로 정신으로 아픈 티를 내지 않았고, 방송사고에 의연하게 대처한 점에 대한 감사함을 표하는 차원에서 당시 KBS에서 이예린을 자주 섭외했다.[2]




1집이 나쁘지 않은 반응이었음에도 청순한 컨셉과 거리가 멀었던 그녀는 본인 특유의 고양이상 외모를 주축으로 노선을 바꾸게 된다. 1996년 2집을 발표하면서 머리를 숏컷으로 자르고 컨셉을 섹시 노선으로 변경한 뒤 발표한 '늘 지금처럼'[3]이 가요톱10과 인기가요 베스트50에서 최고 4위까지 올랐으며 상위권 순위에서 오랫동안 머무르면서 흥행에 성공했다. 이 당시가 지금까지도 가장 가요계의 최상위권 순위 경쟁이 치열했던 시기 중 하나로 꼽히는 1996년 가요계였다는 걸 감안하면 대단한 선전이다. 한국적인 멜로디와 세련된 R&B 비트가 섞인 노래 자체도 좋았지만 그녀의 골반 댄스가 제대로 먹혔다는 점, 위 영상에서 볼수있듯이 골반과 힙라인이 예술이다. 대한민국 여가수의 섹시 컨셉 전환의 대표적 성공 사례다. 음반도 10만장~20만장 가량 팔려나갔고# 1년 뒤 공전의 히트를 쳤던 엄정화의 3집 앨범이 15만장 팔려나간걸 생각하면 댄스계열 여자 솔로 가수들중 탑티어였다. 실제로 당시 엄정화와의 대결 구도가 있었고, 강렬한 눈매와 섹시한 이미지덕에 제2의 김완선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후 발매된 3집 '용서'도 적당한 호응을 끌었고 첫 기획사와 계약 마무리 단계에서 나온 4집 'Stay'가 발매됐다. 당시 이예린은 음악적인 변신을 위해 업템포의 펑키댄스와 R&B가 섞인 세련된 느낌의 'Stay'를 내놨는데 반응이 미적지근해서 타이틀 곡으로 경합했던 라틴 댄스곡 '변심'으로 활동곡을 변경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때 급성위염으로 몸져누워서 불가피하게 행사 7개 정도를 캔슬했는데 그 시절 소속사 사장이 병문안은 커녕 "얘는 아파도 이럴때 아프다"라고 뱉은 말을 전해듣게 되고 소속사와 결별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래서 나이트 위주로 반응이 오고 있던 '변심'은 SBS 인기가요 1회 출연으로 마무리 지어야했고, 클럽가에서 상당히 히트했지만 프로모션이 없어 아쉽게 마무리 지어야했다. 약 1년뒤부터 백지영, 박미경, 홍경민 등이 라틴 붐을 일으켰던걸 생각하면 어려모로 아쉬운 타이밍이다.




이후 소속사 문제 등으로 악재가 겹치는데 대형기획사에 들어가니 상장폐지가 되었고, 작은 회사에 가니 사장이 튀는 등 8번이나 계약이 엎어졌다고.[4] 우여곡절 끝에 2003년 정규 5집 '미안해 하지 말아요'를 겨우 발표하지만 지상파 음악방송엔 전혀 나오지 못하고 엠넷 등 케이블 채널 음악방송에만 한두번 나오다 활동이 종료되었으며 이후 거의 10년여간 오랫동안 공백기를 가져야 했다. 2007년에 싱글을 발표한 뒤, 2008년에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재즈를 공부했다. 2011년에 귀국한 후에는 트로트 가수로 변신했다.

전성기 시절 그녀가 남긴 무대와 음악을 들어보면 지금봐도 세련된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섹시댄스가수라는 이미지 때문에 크게 어필되지 않았지만 가창력도 준수한 편이었고, 특히 꽤 어려운 스킬인 다운벤딩 스킬을 아주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나름대로 실력파 댄스가수였다. R&B를 기반으로 만든 히트곡이 대다수였기에 지금 들어도 이질감이 없기도 하다. 또 방송 환경이 안 좋았던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라이브를 자주 선보였고 그 실력도 상당히 안정적이다.

2집부터 4집까지의 타이틀을 최수정&Moonstone이 프로듀싱했으며 엄정화 - 주영훈, 김현정 - 최규성 콤비처럼 이예린 - 최수정 콤비는 상당한 포텐을 뿜어냈었다. 3집 앨범 수록곡들을 들어보면 TLC의 영향을 받은듯한 멜로디를 들을 수 있는데 활동 당시 인터뷰를 봐도 TLC를 상당히 좋아했던것으로 보인다.

불혹을 넘긴 41세의 꽤 늦은 나이에 2014년 9월 21일, 1세 위의 회사원과 결혼했다.



2016년 6월 14일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유재석 팀 슈가맨으로 오랜만에 방송에 출연했다. 슈가송은 핑클이 리메이크하기도 했던 히트곡인 늘 지금처럼. 늘 지금처럼 이 외에 포플러 나무 아래 변심을 추가로 불렀다. 쇼맨인 악동뮤지션이 리메이크를 했으며 승리했다.[5]

3. 그 외



[1] 배따라기의 이혜민이 작곡했으며 여담으로 이 작곡가는 김흥국의 호랑나비도 작곡했다.[2] 짠한것이 당시 신인이라 본인이 잘못한줄 알고 블랙아웃이 온 상태로 사고 직후 부조실에 올라가서 사과를 했다고 한다. 당연히 이예린이 잘못한게 아니었기에 감독이 되려 이예린에게 너 잘못이 아니니 바로 병원 가보라고 했고 병원에 도착해보니 머리는 물론, 엄지발톱까지 빠져있었다고. 이후 수술을 통해 회복했고 이예린을 응원하는 차원에서 라디오 리퀘스트도 급상승했다고 한다.[3] 2001년 핑클리메이크했다.[4] 몸담았던 기획사 중 한 곳이 한보그룹 계열의 한맥유니온이다.[5] 참고로 악동뮤지션은 yg 소속 가수 중 최초로 슈가맨 쇼맨으로 승리한 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