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남의 수상 및 역임 직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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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광 (1997) | 감독 대행 강정수 (1997~1998) | 강정수 (1998~1999) | 김인건 (1999~2002) | 정덕화 (2002~200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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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광 (2004~2006) | 감독 대행 김상식 (2006~2007) | 유도훈 (2007~2008) | 감독 대행 이상범 (2008~2009) | 이상범 (2009~2014)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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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대행 이동남 (2014~2015) | 전창진 (2015) | 감독 대행 김승기 (2015) | 김승기 (2016~2022) ★ ★ ☆ | 김상식 (2022~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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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농구코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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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eee,#191919> 이동남 李東男 | ||
출생 | 1975년 6월 6일[1] ([age(1975-06-06)]세)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키 186cm|체중 90kg | |
직업 | 농구선수(파워 포워드 / 은퇴) 코치 | |
학력 |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졸업) | |
소속 | <colbgcolor=#eeeeee,#191919> 감독 | 안양 KGC인삼공사 (2014~2015 / 대행) |
코치 | 안양 KT&G-한국인삼공사-KGC인삼공사 (2009~2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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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농구 선수, 현 농구 지도자.2. 선수 시절
파워 포워드로 활약하다가 허리 부상 탓에 연세대학교 재학 시절부터 농구부 매니저로 일하며 이른 나이에 은퇴했다. 즉, 오랫동안 프런트로 일해 왔다는 것.3. 프런트 시절
연세대 농구부 매니저를 맡고 있었던 그는 1999년 김인건 감독의 부름을 받아 KGC인삼공사 농구단의 전신인 SBS 스타즈의 프런트로 입사, 선수단 매니저로 일하며 프로농구에 발을 들였다. 2008년에는 선수지원 및 경기운영 담당 프런트로 일했다.4. 지도자 시절
2009년부터 안양 KGC인삼공사의 코치로 일해 왔다. 2013-2014 시즌 후 이상범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물러나면서 KGC인삼공사의 감독 대행을 맡아 2014-2015 시즌을 치렀다. 하지만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시즌 종료 후 재계약에 실패했고, 2015년 3월, 전창진 감독의 부임에 따라 단 한 시즌만에 물러났으나... 전창진 감독의 승부조작 연루로 인하여 인삼공사는 김승기 수석코치를 감독 대행으로 임명해 2시즌 연속으로 감독 대행 체제로 나가게 됐고, 김승기 대행은 호성적 덕에 시즌 중 감독으로 승격됐다.여담으로, 작전타임 때마다 어... 어... 어... 소리를 많이 했던 경력이 있어 어감대[2]라는 별명을 얻기까지 했는데, 시즌 후반에는 그의 어록 등장이 많이 줄어들었다.
사실 한 시즌만에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실질적 이유가 있었는데, 감독 대행 재임 때 상식 밖의 선수단 운영과 전술 운용이야 구단에서 동기부여를 제대로 제공하지 못한 책임도 있기에 둘째치더라도, 선수단 케미스트리 관리에 실패한 것이 큰 문제이자 사유였다. 그 가운데에는 장민국 트레이드 미수 사건이 있었고, 그의 부친 장윤창과 구단이 대판 싸운 끝에 결국 장민국은 시즌 후 다시 트레이드되었다. 이 때문에 야구의 김용희와 동일시되었을 정도.[3]
그렇지만 본인이 제대로 힘을 못 썼던 것은 사실이던 것과는 별개로 이 한 시즌 때문에 KGC인삼공사 팬들한테는 그닥 기억이 좋지 못한 사람 가운데 하나인데, 그나마 현재는 김승기를 거쳐 김상식이 감독으로 이 시기의 암흑기를 모두 청산한 덕분에 아는 사람이 드물 정도.[4]
5. 관련 문서
[1] 뭉쳐야 쏜다 소속의 전 배구선수 방신봉과 생년월일이 일치한다.[2] 말 그대로 어 감독 대행.[3] 장민국 트레이드 미수 건은 사실은 이동남이 주도한 게 아니라 인삼 프런트 ~ 장윤창 ~ 삼성 프런트 사이에 있었던 일. 오히려 감독 대행 이동남은 이 사건에 대해 사태가 터진 뒤에서야 알았다. 원래 이동남이 추진했었던 트레이드는 박찬희를 삼성으로 보내기. 그러나 최종 단계에서 구단 윗선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두 사건으로 볼 때 이동남은 결과적으로 프런트에 휘둘린 힘없는 감독이었다. 크게는 김동광 ~ 유도훈 ~ 이상범으로 이어지는 인삼공사 프런트의 지나친 간섭에 의한 감독 잔혹사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4] 농담은 아닌 것이 그 이전에도 구단 팬북을 꾸준히 구독하던 팬들이나 알 정도의 낮은 인지도를 가진 사람이었다. 프로 경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현역 시절에 뛰어난 선수였냐면 그것도 전혀 아닐 정도로 선수 시절도 정말 별볼일 없었고, 이른 나이에 은퇴를 해서 프런트와 트레이너 생활을 더 오래 했다 보니 SBS 시절부터 꾸준히 봐 온 골수팬들조차도 겨우 알 정도의 인지도였던 수준. 인지도가 너무 낮았었던 데다가 이 시즌엔 감독이 먹을 욕까지 프런트가 다 먹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덜 까인 면도 있다. 무엇보다 이 시즌 자체가 하도 망이라 안 보는 사람도 태반이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