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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수 李甲秀 | Lee Kapsoo | |
<colbgcolor=#000><colcolor=#ffffff> 출생 | 1899년 4월 23일 |
대한제국 황해도 금천군 | |
사망 | 1973년 12월 5일 (향년 74세)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누상동 | |
직업 | 의사, 교육자, 우생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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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의사, 교육자, 우생학자. 일제강점기에 조선우생협회라는 우생학 단체의 창립, 운영의 핵심인물이기도 하다. 호는 미수(麋壽) 1970년대까지 한센병 환자들이 1970년대까지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게 된 직접적인 원인제공자이다.2. 생애
대한의사학회에서 발행한 이갑수의 생애와 사상1899년, 황해도 금천군에서 13대를 이어온 1만석거리 대지주였던 이택기와 경주 김씨 사이의 차남으로 태어났으며, 앙녕대군의 16대손의 양자로 입양되었다. 1920년 경성의학전문학교[1]를 졸업 후 독일 유학으로 1924년 베를린 대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귀국 후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교수와 부속병원 내과 과장을 역임하는 등 일제강점기 의학분야의 저명한 학자이자 교육자였다.
1933년 9월, 윤치호, 권동진 외의 40명 이상이 조선우생협회를 창립했는데, 이갑수는 이 단체의 총무이사로 협회의 창립 과정과 이후 강연회 개최 등 협회 운영과 관련된 핵심인물이었다.[2]
광복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인 1949년부터 1950년까지 초대 보건부차관으로 역임하였으며, 이후 YMCA 후원회 이사, 제2대 서울여자의과대학 학장 등을 역임하였다.